요즘 들어 부쩍 일이 재미가 없어졌다. 갑자기 재미가 없어졌다. 재미만 누리려고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재미가 있어야 일을 지속할 수 있는데 나도 모르게 알 수 없는 슬럼프에 빠져 버렸다. 얼마 전부터 왼쪽 눈이 아팠는데 그때부터인가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자꾸 들었었다. 앞이 안 보이게 되면 이게 다 무슨 소용 일지 지금 내가 포기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조금씩 싹이 튼 것 같다. 그러고 나서 꽤나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파란 하늘 같던 맑은 바다를 보고 온 뒤부터 모든 일이 재미가 없다. 그저 동물가족들과 한 순간 한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는 게 좋다. 물론 이런 곳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건 나쁜 게 아니다. 그런데 자영업자의 길을 선택한 뒤로는 이런 생각은 아주 위험하다 큰일이다. 내가 하는 일이 별로 재미가 없다. 왜일까.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해봐야 하나. 내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와 지금까지 일을 해온 방식들 끊이질 않았던 의심들. 내가 뭔가 잘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지난주 늘어지게 쉬는 때에 ‘바쿠만’이라는 만화책을 봤다. 주인공들은 소년잡지 ‘점프’에 연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만화가인데 중학교 때부터 그 꿈을 꾸며 이런저런 시련을 겪어내며 자신들의 꿈을 이뤄내는 내용이다. 주인공들은 ‘재미’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만화책이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재미있으면 된다라는 큰 철학을 가지고 그들이 잘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어필하려고 머리를 쥐어짠다. 머리를 쥐어짜더라도 ‘재미’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만화책이라 종이에 그려진 주인공들이지만 꿈을 이뤄내려는 눈빛이 아주 인상 깊었는데 그 눈빛에 자꾸 나를 비춰보게 되었다. 내가 처음에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으며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나 스스로를 향한 물음이 끊이질 않는다. 이 물음에 얼른 답을 내려야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정말 큰일이다. 위험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는 왜 꽃과 식물을 팔아보려고 한 걸까.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지금까지 어떤 생각으로 결정을 내려왔던 걸까. 내가 했던 일들이 쌓여서 꽤 많은 이야기가 되었음에도 내게는 기록이 없다. 내가 했던 결정들은 과연 잘한 일들이었는지 잘못했다면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고민을 혼자 하려니까 하기도 싫고 쉽지도 않다. 내가 되고 싶었던 나는 대체 누구였을까.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기보다는 내 일을 재미있게 하고 싶다. 열정 있게 즐겁게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선택보다는 내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마 만화 주인공들처럼 모든 걸 다 내걸고 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모든 걸 내건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 이럴 바엔, 이렇게 애매할 바에는 그냥 다 내려놓고 어딘가로 가버리고 싶다. 결국 도망치는 것이겠지만 지금은 그래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서 다시 재미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잠시 쉬어보고 싶다. 다만 쉬는 것에도 부담을 느낄 게 뻔하기 때문에 그 방법이라도 알아보고 싶다. 편하게 쉴 수 있는 방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