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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Aug 12. 2024

프롤로그

길지 않은 인생이었다.

길지 않은 인생이었다. 세상에서는 그랬을 것이다. 열아홉. 한국에서 열아홉이면 민증이 이미 있는 나이다. 주민등록증. 성인을 의미하는 처음 단계. 민증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주민센터에 직접 방문해야 한다. 주민센터에 방문해서 지문 열 개를 찍는 그 일. 그것을 해내기가 힘들었던 영욱에게 열아홉이라는 숫자는 세상에 나아가기 위한 첫 단계로서의 성인이 되어가는 것을 의미하지 못했다.      


철이 들었을 때엔 이미 열 몇 살이었다. 언젠가 나이의 앞자리가 2가 될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의 앞자리가 2가 되는 것을 이렇게 갈망하게 될 줄은 몰랐다. 작년의 영욱까지는 말이다.       

 “나는 이 벽을 지나가지 못해 여기서 멈춰.

  너는 내가 지나가지 못한 모든 벽을 다 지나갔으면 좋겠어.”          


영욱은 지금 하는 이 말이 정은에게 얼마나 강렬히 새겨질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떠나가는 이의 입장에서 남겨질 이에게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무엇하나 남겨지지 않은 채 이 세상을 떠나는 것 또한 이 세상을 살았던 자로써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무엇보다 정은은 영욱의 앞에 서서 커다란 눈으로 영욱의 말을 당기고 있었다. 부디 이 말들이 정은의 앞길에 저주처럼 휘감기지 않고, 정은의 생의 모든 부분에서 또다른 소리가 되기를 바라며, 영욱은 자신의 남은 조금의 생의 나머지를 모두 긁어 내 넘겨주는 마음으로 말을 마무리했다.  


시절은 모두 영욱에게 친절했고, 하얬던 벽들은 영욱의 감옥이 아니었다. 정은이 하나씩 고쳐써 준 그 벽들의 전부는 무너지지 않도록 영욱을 지탱하던 하나들의 지탱들이었다. 모든 말을 다 하고 난 영욱은, 지금 이 순간, 이제 숨을 멈춰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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