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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Aug 19. 2024

약들이 켜켜이 1

아침 햇살이 병실을 비추면서 하루가 시작됐다. 조금 더 게으름 피우고 싶은데. 감은 눈꺼풀 너머로도 햇살이 환하다는 것이 잘 느껴졌다. 특히 내가 누워 있는 곳은 창가 쪽 병상이라 햇빛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처럼 간호사가 커튼을 걷어버린 경우엔 더욱 더. “일어나세요. 다들 일어나요. 오늘을 대청소합니다. 다들 아시죠?”

 

아니, 이게 무슨 말이래. 나는 눈을 비비다 말고 들어가지 않는 힘을 눈에 몰아보았다. 창가에는 들어오는 햇살을 등지고 커튼을 걷은 채 환자들을 보며 서 있는 간호사가 있었다. 병상들을 살피던 박 간호사의 눈이 나의 눈과 마주쳤다. 아마 나는 박 간호사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못알아듣는다는 것을 얼굴 한 짝으로 충분히 전달했었나 보다. 안타까운 듯이 나를 쳐다보던 박 간호사는 창가 쪽에 얹혀 있는 공용 티브이의 밑에 붙어 있는 종이를 가리켰다. ‘이번 주말 대청소. 침구 교체 예정.’ 아... 맞다. 그랬지.      

짝, 짝. “자, 다들 일어나세요. 벌써 날이 다 밝아 버렸어요. 일어나세요. 일어나요.” 누군가 병상이 삐걱거린다고 간호사 스테이션에 가서 불만을 토로하는 것에 귀찮아져서 오늘 드디어 소원이 수리되는 군. 음? 근데 침구만 교체인가?

 

이 병동은 외과 환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나와 같이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입원해 있다. 병원에서의 아침은 아침 식사와 함께 시작된다. “밥 왔어요.” 간호사들이 환자들의 기색을 살피고 약을 챙기고 나면 맞추어 근무교대를 하듯이 곧이어 바로 밥차가 들어온다.

 

“남영욱 님.” 탁. “홍정혁 님.” “여기요, 여기. 아줌마, 여기요!.” “아줌마 아닌데...” 나는 뭐에 체크했더라? 병원에서의 식사는 두 종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가 있다고 한다. 한식과 양식. 대단한 한식도 아니고 엄청난 양식도 아니다. 그저 한식 분위기가 나는 병원식과 양식이라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 싶은 병원식일 뿐이다. 아 참. 번외로 매점식, 배달식, 병문안식 등이 있지만 해당이 되지 않는 사람이 많다. 나 또한 선택권이 두 개 밖에 없는 무리에 속해 있다. 그리고 그 선택권을 대부분을 양식에 행사했던 것 같다. “탁기준 님.” “여기요.”


“어?” 생선구이와 무채국. 이건 아무리 봐도 양식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저기, 이모!” 나 말고도 여기저기 식사를 나눠주는 이모는 내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나 보다. 바쁜데 귀찮게 불러대서 일부러 못 들은 체 하는 건 아닐 테니까. (그렇겠지?) 나는 아주 점잖게, 하지만 배식 이모를 부르려는 나의 절실함이 충분히 전달될 수 있게 다시 외쳤다. "이모!!" “네, 네에?” "켁." 나의 발성에 감동한 듯한 소리가 옆 병상에서 들려온 것 같지만 무시하기로 하자.

 

“저는 양식에 체크한 것 같은데, 잘못 온 것 같아요.” “그럴 리가 없는데.” “저는 한식에 체크했을 리가 없어요.” 뭐, 가끔 하기도 하지만. “그럴 리가 없는데...” 이모. 그럴 리도 있어요. 나야 말로 이럴 리가 없ㄱ든요. 보건용 복장을 단단히 갖춘 배식 이모는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며 병실을 나가 사라졌다. 뭐지? 그냥 간 건가? 당황한 나는 이대로 그냥 한식 같은 느낌의 병원식을 먹어야 하는지 아니면 기다려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젓가락을 들려다 놓고 들려다 놓자. 건너편 병상에서 투정인지 핀자인지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여어, 기준아. 그냥 먹어. 너 생선 못 먹냐?” 건너편 병상에 앉은 정혁이 생선구이를 손으로 들고 뜯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먹든지 말을 하든지 하나만 하면 좋겠구만. “아, 뭐. 그렇긴 한데.” “그냥 먹어, 이거 맛있어.” “맞습니다. 여기 밥 맛있습니다. 생선도 맛있습니다.” "어어... 그래 그래 보이네." 우와, 잘 먹네.

옆 자리의 우철이는 정혁보다 아주 더하게 아주 식판에 코를 박고 있다. 등을 굽혀 식판에 아주 머리를 박은 채 먹고 있는 우철의 머리가 아주 동글동글해 보였다. 우리 나라에 머리를 깎아야 하는 직업군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지.

“그래, 맛있어 보인다." "네, 아주 맛있습니다."


그래, 뭐. 비교대상이 군대 짬밥이라면 뭔들 안 맛있겠냐. “많이 먹어.” “넵. 알겠슴다.” “어, 그래” 음. 그냥 먹어야 하나. 그렇게 잠시 고민하고 있으려니 사라졌던 배식 이모가 다시 들어왔다. 이모의 손에는 식판이 들려 있었다. “어머, 미안해라. 미안해요. 확인해 보니 양식이 맞네요. 자, 여기.” 이모는 들고 있던 색판을 내 자리에 놓고, 대신 생선에 젓가락을 막 꽂기 직전이던 내 식판을 가져갔다. “아이고 큰일 날 뻔했네. 잘못 드릴 뻔했네.” 저건 대화인가. 혼잣말인가. 대답을 해드려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그냥 밥이나 먹기로 했다. 이모도 아마 나한테서 대답을 바라고 하는 말은 아니었으리라. 그 증거로 12호실을 빠져나간 이모는 밥차를 밀고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허허허...” 자연스레 헛웃음이 나왔다. “봐봐. 역시 한식이 낫지?” 정혁은 그 사이 벌써 밥을 다 먹고 이빨을 쑤시고 있었다. 크게 벌어진 입 사이로 그의 자랑인 금이빨이 누렇게 번들거린다. “아뇨, 이게 먹고 싶었어요.” “뭐, 그래.” 키득거리며 이를 쑤시다니 재주도 좋아. “하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앞에는 바짝 말라 딱딱해 보이는 무슨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설마 이게 함박 스테이크인가. 분명 메뉴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던 것 같은데.      

 

“남영욱 님. 여기요. 어머. 어째.” 밖으로 나갔던 배식 이모가 식판 하나를 들고 다시 들어왔다. “남영욱 님. 양식 신청하셨던데, 여기 가져왔어요.” 맞은편 자리 남영욱의 식판은 이미 반쯤 비워져 있었다. 내 젓가락 사이에 아슬아슬 걸려 얄팍한 두께를 뽐내고 있는 함박 스테이크라 주장하는 무언가 보다는 훨씬 살이 통통해 보이는 생선 구이는 이미 뼈 밖에 남지 않았다. “남영욱 님. 남영욱 님은 양식이신데 한식을 다 드시면 어떡해요.” “뭘 어떡해. 잘 먹었으면 됐지. 안 그래요?” “아니, 양이 정해져 있어서 정해진 메뉴를 드셔야 하는데...” “에이, 벌써 다 먹었는데, 뭘.” “아니, 그래도.” 배식 이모는 우물쭈물하다가 들고 왔던 그대로 식판을 들고서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영욱이도 양식을 주문했나 보군. 근데 왜 말을 안 했데. 멍하니 영욱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영욱과 눈이 마주쳤다. “어, 너도 양식이었네.” “... 네.” “그래, 많이 먹어.” “네.” 영욱의 표정은 갓 부은 콘크리트처럼 푸석푸석했고, 눈을 무척 어두웠다. 영욱은 어디가 아파서 왔더라...   


식사를 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청소 이모들이 들이닥쳤다. 병원의 시간표에서는 주말이니 만큼 늘어져 있는 꼴을 보지 않겠다는 누군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인지 끊임없이 누군가 들어오고 나가고 있었다. 대청소가 있다는데 일반적인 청소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뭐, 내가 어떻게 할 문제는 아니지. 청소 이모가 청소하시는 동안 12호실의 모두는 침상 위에 다소곳이 올라가 앉았다. 12호실의 건장한 여섯 남정네들이 다 같이 자신의 침상 위로 올라가 다소곳이 앉아 있는 동안 이모는 능숙하고 빠른 대걸레질로 바닥을 슥슥 닦고는 곳곳의 먼지를 닦고 쓰레기통을 비웠다. 아침 청소가 끝나고, 병실은 조금 조용해졌다.


나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부산의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평화로운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문이 열리면서 간호사가 들어왔다. 박 간호사다. 박선진 간호사. 71병 동의 마녀로 불리는 간호사. 환자들인 우리들한테는 특별히 무섭게 하지 않지만, 다른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높다. 흠칫. 박 간호사와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바른 자세로 앉아버렸다. 침착. 침착.   

 

"안녕하세요, 오늘은 다들 컨디션 어떠세요?" 그녀는 밝게 인사하며 환자들을 둘러봤다. 저, 누나. 표정이랑 말투가 매치가 안 되는데요. 컨디션이 않좋다고 하면 혼날 것만 같은데. "네, 뭐… 그냥 그렇죠." “넵.” 음? 뭔가 병원이라는 곳이랑 어울리지 않는 대답이 있는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려 보니 우철이가 군기가 바짝 든 자세로 바르게 앉아 있었다. 저런, 저러다 점호라도 하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박 간호사 누나는 엄한 표정과 무서운 분위기와는 달리 환자들을 아주 세심히 살피는 편이다. 지난 주까지 이 방에 있던 아저씨가 수술한 부위가 아픈지 밤 동안 끙끙대자 박선진 간호사는 야간 근무하는

정혁은 투덜거리며 "날씨는 좋은데, 여기 갇혀 있으니 뭐가 좋겠어요?"라고 불평했다. 자세를 편히 하라는 정혁의 손짓을 본 우철은 한쪽 다리를 풀어보며 말했다. "오늘은 좀 덜 아프네요. 근데 아직 완전히 낫진 않은 것 같아요." 우철의 말에 박 간호사는 우철의 자리로 오더니 링거를 확인했다. “불편하신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네.”      

남영욱은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박선진은 살짝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오늘은 대청소와 침구 교환이 있을 거예요. 병실을 좀 더 편안하게 만들어 드릴 테니까 조금만 참아주세요." 박선진이 설명했다.

"청소라… 어제도 한참 하더니, 또 해야 하나요?" 홍정혁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는 병원 생활에 불만이 많은 것 같았다.      

정혁이 한껏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백소희 간호사가 침구를 들고 들어와서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 번거로울 수 있지만, 끝나고 나면 더 깨끗해져서 기분이 좋으실 거예요."

나는 그녀의 미소에 잠시 기분이 나아지는 걸 느꼈다. "그래도 그나마 이게 끝나면 좀 더 편안하겠죠." 내가 말했다.

홍정혁은 여전히 투덜거리며 "청소가 뭐 그렇게 중요해요? 조금 어질러져도 괜찮잖아요."라고 했다. 그러자 성우철이 진지하게 말했다. "청결이 건강과 직결되잖아요. 특히 병원에서는 더 그렇고요." 군인은 역시 군인이네. 우철은 아무리 봐도 군대가 잘 맞는 것 같다. 이런. 군 생활이 떠오를 뻔했다. 집중, 집중. 나는 지금 병원이다. 병원. 맞은편 자리를 보니 남영욱은 여전히 조용했다. 그는 침대에 앉아 있기는 했지만, 어딘가 다른 곳에 마음이 있는 듯했다.             

  

점심이 지난 후, 병실은 다시 분주해졌다. 각자 침대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교복을 입은 누군가가 들어왔다. "야!" 그녀는 밝게 인사하며 병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곧바로 영욱의 자리로 다가갔다.      

모두가 한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홍정혁은 특히 신경 쓰이는 듯 고개를 돌려 표정은을 유심히 쳐다봤다. 나는 속으로 '여자가 왔다고 이렇게들 신경을 쓰다니…'라고 생각했다. 지난번에 한번 이곳에 슬쩍 들렀을 때 얼핏 듣기로 남영욱과 소꿉친구에 동창이라고 했던 것 같다.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표정은은 밝게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병실을 한 번 둘러보고는 남영욱에게 다가갔다.

"좀, 괜찮아? 요즘 너무 자주 못 와서 미안해." 표정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남영욱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병원 생활에 익숙해졌어."

"그래도 조심해야 해. 엄마가 너 걱정 많이 하셔." 표정은이 말했다. “내 엄마지 네 엄마냐.” “뭐래, 잘 좀 챙겨.” “알았어.”      

홍정혁이 그들의 대화를 듣고 끼어들었다. "친구분이 정말 예쁘네요. 영욱이랑 오래된 친구인가요?"

표정은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랐어요. 소꿉친구예요."

나는 홍정혁의 반응을 보며 속으로 '역시 저 사람, 여자라면 그냥 지나치질 못해'라고 생각했다. 홍정혁은 웃으며 계속 말을 걸었다. "소꿉친구라… 정말 보기 좋은 사이네요."     

성우철도 조용히 듣고 있다가, 남영욱을 향해 "오랜만에 친구가 와서 좋겠네요."라고 말했다.

남영욱은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은은 남영욱의 손을 가볍게 잡고는 "힘내라. 내가 항상 응원할게."라고 속삭였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병실 밖으로 낯선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 남자는 병원복 위에 하오리를 입고 있었고, 쥐처럼 생긴 얼굴에 앞니가 돌출된 모습이었다. 나는 그가 병실 복도를 지나가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불쾌한 느낌을 받았다.     

"저 사람은 누구지?" 내가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홍정혁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모르겠네. 하지만 저 사람, 뭔가 좀 이상해 보이지 않냐?"     

성우철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들어요. 저런 사람은 처음 보네요."

나는 그가 맞은편 병실인 7116호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저 사람, 뭔가 좋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데…'라고 생각하며 다시 정은과 영욱을 바라봤다. 평소에 말이 없는 영욱이 답게 친구, 그것도 여자인 소꿉친구가 왔는데도 그다지 말이 많지 않았다.                

저녁 시간이 되자 병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박선진 간호사가 퇴근을 준비하며 환자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고, 백소희는 각 환자들에게 저녁 약을 나눠주고 있었다. 그때, 복도에서 또다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주치의로 보이는 의사가 옆 병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와는 다른 상황이었기에 나는 살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치의가 원래 주말에는 오지 않지 않나요?" 내가 백소희 간호사에게 물었다.

백소희는 당황한 듯 "네, 원래는 그렇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정혁이 관심을 보이며 "아니, 무슨 일이길래 주말에 의사가 오죠?"라고 물었다.

우철은 침대에 앉아 "무슨 응급 상황이라도 생긴 건가?"라고 궁금해했다.     

그때 옆 병실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다른 환자들은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모두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뭔가 큰일이 일어난 것 같네요." 내가 말했다. 영욱도 조용히 그 소란을 듣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눈빛이 날카로워진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치의 무리 중에서 떨어진 전공의 한 명이 12호실로 들어왔다. 그는 환자들의 상태를 살피며 조용히 차트를 체크했다. "오늘 컨디션은 괜찮으신가요?" 젊은 의사는 나에게 물었다.

"네, 큰 문제는 없어요. 그런데 옆 병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의사는 잠시 침묵하다가 "큰 문제는 아닙니다. 그냥 간단한 검사가 필요해서 온 것뿐이에요."라고 짧게 답했다.

나는 그의 말을 믿으려 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이 병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그를 바라봤다. 하긴, 무슨 일이든 내가 어떡할까. 자세를 바꿔 바로 앉으려니 다리가 욱신거렸다. 부러진 부분이 나으려면 얼마나 걸릴까. 할 일도 없어서 약을 털어 먹고는 자리에 누웠다.           

눈을 뜨니 밖은 밤이 다 되어 있었다. 밤이 되자 병실은 조용해졌다. 그 시간까지 영욱의 곁을 지키고 있던 정은은 영욱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 병실을 떠났다. 나는 그녀가 떠난 후 영욱의 표정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는 것을 느꼈다.

"잘 자. 내일 또 올게." 정은이 말했다.

영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 "응, 잘 가."     

나는 그녀가 떠난 후 잠시 동안 병실에 남아 있는 묘한 공기가 느껴졌다. 정혁이 한숨을 쉬며 "오늘 하루가 참 길었네."라고 말했다. 우철도 피곤한 목소리로 "맞아요. 이제 좀 쉬고 싶어요."라고 답했다.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침대에 누우며 '내일은 좀 더 평화로운 하루가 되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옆 병실에서 들려온 소란스러운 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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