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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수상록1 30화

존재의 밀도

현대적 증발

by 조융한삶





물의 밀도는 4도씨일 때 가장 무겁다. 그 온도에서 물 분자들이 가장 촘촘하게 배열되기 때문이다. 마치 존재에도 그런 임계점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순간, 내가 가장 나다운 순간이 있고, 그때 나의 존재가 가장 밀도 높게 응축됨을 느낀다.


온도가 조금만 높아져도 물은 팽창한다. 조금만 낮아져도 얼어붙는다. 적절한 긴장과 이완, 적절한 거리와 밀착 사이에서만 존재는 존재다워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수증기처럼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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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떠다니며 형태를 잃고, 무게를 잃는다. SNS의 타임라인을 무한정 스크롤하다가 문득 깨닫는다. 나는 어디에 있었나. 이것이 바로 현대적 증발이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기화되어 사라진다.


카카오톡 메시지가 쏟아지는 월요일 오전. 나는 여러 개의 창을 띄워놓고 멀티태스킹이라는 이름의 분열을 수행한다. 직장인, 자식, 부모, 친구. 각각의 역할마다 다른 목소리로 대답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점점 얇아진다. 같은 양의 물을 더 넓은 그릇에 부었을 때처럼.


하지만 '얼마나 존재하는가'가 진짜 문제다. 똑같은 24시간을 살아도 어떤 날은 하루가 한 달 같고, 어떤 날은 한 달이 하루 같다. 시간의 길이가 같다면 그 차이는 무엇인가. 존재의 밀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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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은 조급함을 다스리는 군주다"라는 노자의 말이 새삼 절실하게 다가온다. 빨리빨리 문화, 즉석배송, 실시간 알림. 우리는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침묵을 불안해한다. 알림음이 울리지 않는 침묵조차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불안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진정한 존재는 기다림 속에서 익어간다. 포도가 와인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듯, 경험이 지혜가 되려면 침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모두가 잠든 시간, 고요한 책상 앞에서 만년필로 일기를 쓴다. 그때 나는 비로소 한 사람이 된다. 분산되어 있던 조각들이 하나의 무게중심으로 모여든다. 펜 끝에서 흘러나오는 잉크만큼이나 천천히, 나는 내게로 스며든다.


이 시간의 밀도는 낮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높다. 수증기가 다시 물방울로 응축되는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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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 빈손으로 살던 시절이 있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몇 권의 책과 노트북 하나뿐이었다. 지금은 많은 것을 가졌지만 동시에 많은 것에 의해 소유당하고 있다. 소유는 나를 분산시키고, 욕망은 나를 희석시킨다. 현대인의 역설.


온라인 쇼핑몰의 장바구니가 가득할 때와 빈 방에서 차 한 잔을 마실 때의 존재감은 확연히 다르다. 전자는 나를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 후자는 나를 안으로 모아준다. 채우면 채울수록 더 텅 빈 느낌. 이것은 단순한 허무가 아니라 밀도의 문제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가벼워진다. 가진 것이 적을수록 존재는 더 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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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들도 마찬가지다. 순간을 포착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순간을 희석시킨다. 카메라 너머로 바라본 풍경은 이미 한 겹의 거리를 두고 있고, 필터를 씌우고 해시태그를 다는 순간 그 경험은 더욱 가벼워진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여주기 위해서 경험하게 된다. 마치 진한 커피에 물을 계속 타는 것처럼.


"말을 해야 할 때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말하지 않아야 할 때 말하면 말을 잃는다"는 공자의 가르침이 새로운 절실함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너무 많이 말한다. 카톡, 페이스북, 트위터. 하루 종일 쏟아내는 말들 중에서 정말 필요한 말이 얼마나 될까.


진짜 무거운 말은 침묵에서 나온다. 오랫동안 삼키고 있던 말, 수없이 다듬고 갈고닦은 말만이 진정한 무게를 가진다. 그런 말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말하지 않을 줄 알아야 한다. 말하지 않는 동안 그 말은 우리 안에서 발효되고, 숙성되고, 농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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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휴대폰을 두고 나와 산책길에 마주친 노을을 생각한다. 그것을 담을 수도, 공유할 수도 없기에 온전히 내 것이 된다. 아무도 모르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그 경험이야말로 가장 진한 존재의 순간이다. 그때 나는 비로소 4도씨의 물이 된다.


가끔 손편지를 쓴다. 컴퓨터로 쓰면 쉽지만, 굳이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면서 느낀다. 속도를 늦출 때, 정성을 들일 때, 마음을 모을 때, 비로소 나는 진짜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 쌓여 나라는 존재의 결정체를 만든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생각한다. 오늘 나는 얼마나 촘촘하게 살 수 있을까. 오늘 내 존재의 온도는 몇 도일까. 하지만 대개 하루는 증발로 시작해서 응축으로 끝난다. 아침에는 흩어져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로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밤을 사랑한다. 밤이 되어야 나는 내게로 침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침전된 하루가 쌓여 나라는 존재의 지층을 이룬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존재의 적정 온도를 찾는 일이다. 너무 뜨거워 증발하지도 않고, 너무 차가워 얼어붙지도 않는 그 온도. 4도씨의 물처럼, 가장 무겁고 가장 맑은 밀도로 살아가는 일.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삶을 너무 많이 흘리지 않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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