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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수상록1 27화

보통의 존재

그저 그런대로 괜찮은

by 조융한삶




우리는 끊임없는 비교의 네트워크 속에 살고 있다. 무한스크롤처럼 갱신되는 타인의 완벽한 순간들과 편집되지 않은 나의 일상이 충돌할 때, 우리는 자신의 존재론적 좌표를 잃는다.


스스로의 보잘것없음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내가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키도, 얼굴도, 끼도 어느 하나 특출나지 않았다. 무기력한 체념은 이내 자기혐오로 변질되었고, 과민한 자기방어로 발현되어 관계의 벽을 세웠다. 이는 자기소외의 전형적인 양상이다. 마치 면역체계가 자신의 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처럼, 자아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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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평범한 오후, 거울 앞에서 나는 문득 멈춰 섰다. 작은 키, 볼품없는 얼굴, 구부정한 어깨. 그동안 마음속으로 그려온 '언젠가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간극이 한순간에 명료해졌다.


"그냥 이게 나구나."


그 말을 뱉은 순간, 내 안에 묘한 정적이 찾아왔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는 단순한 효과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유지해온 '희망적 착각'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소리였다. 마치 유리창이 깨지는 순간처럼, 선명하면서도 되돌릴 수 없는 깨달음이었다.


순간 부끄러움과 울컥함, 그리고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처음으로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자기 객관화의 시작이었다. 마치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듯, 나는 처음으로 감정적 거리를 두고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 객관화는 단순한 자기 비판으로 끝나지 않았다. 마치 고고학자가 유적을 발굴하듯, 나는 내 안에 묻혀 있던 다른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키는 작았지만 타인의 마음을 읽는 세심함이 있었고, 외모는 평범했지만 발전에 대한 갈증과 야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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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설날, 자전거 국토 종주를 떠났다. 마치 상처 입은 동물이 본능적으로 약초를 찾듯, 내 몸과 마음은 스스로 치유의 길을 알고 있었다. 이 선택 자체가 회복탄력성의 발현이었다.


첫날부터 지옥 같은 안장통이 시작됐고, 하루종일 비를 맞으며 페달을 밟았다. 육체의 여기저기서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또다시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살아있는 느낌. 목표와 방향을 세우고 분명히 전진하는 느낌.


자율성의 느낌.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고통. 마지막 날은 움직이지 않는 오른쪽 무릎을 부여잡고, 반쯤 울면서 한 손과 한 발로 페달을 밟았다. 페달을 밟으면서 깨달았다. 내게 지속력과 끈기라는 강점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면 여간해선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남들보다 빠르지는 않았지만, 남들보다 오래 갈 수 있다는 것을.


633km의 완주 경험은 내 삶의 분명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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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거대한 존재, 위대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완벽함이라는 신기루를 쫓는 대신, 나는 온전한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완전함과 온전함은 다르다. 완전함이 결핍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면, 온전함은 결핍조차 받아들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마치 깨진 도자기를 금으로 이어 붙이는 일본의 킨츠기 기법처럼, 상처와 부족함까지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저 그런대로 괜찮은 존재. 이는 체념이 아니라 존재론적 자유의 획득이다. 외적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가치 체계를 구축하는 것. 마치 나침반이 자북을 가리키듯, 이제 내 내면의 진북을 찾아가는 것이다.


보통의 존재. 평균의 존재. 그런 존재가 되는 게 두렵지 않다. 어떤 존재든 자기만의 삶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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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원한다면, 진실을 마주하고 방향을 설정하고 그저 나아가면 된다. 그뿐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더 나은 자신'이 되라는 압박을 받는다. 하지만 진정한 성장은 '더 나은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이다. 평범함을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창조해 나가는 것.


강물이 바다를 향해 흐르듯, 목적지보다 흘러가는 과정 자체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 그저 그런대로 괜찮은 존재로서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삶이다.


완벽함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날 때, 온전함이라는 현실이 우리를 맞이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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