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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수상록1 25화

다정함의 진화론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by 조융한삶




십 년 전 나는 어둠 그 자체였다. "집에서도 불 끄고 지낼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을 만큼 음침했고, 그 음침함 속에 침음하며 살았다. 호의를 보이는 사람들을 향해 날을 세웠고, 선의를 거부하고 사람들로부터 도망쳤다. 사실 두려웠던 것 같다. 진정한 연결에 대한 갈망이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명제를 받아들이기까지 나는 긴 우회로를 거쳐야 했다. 스님이 되겠다고, 산에서 혼자 살겠다고 외쳤던 것도 결국은 세상과 화해하고 싶다는 신호였다. 거부는 욕망의 다른 얼굴이었고, 도주는 귀환의 예행연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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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서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전투-도피 반응이 일어나고, 전전두엽이 활성화되면 공감과 이타심이 발현된다. 다정함은 뇌과학적으로 여유의 산물이다. 생존의 위협이 사라져야 비로소 우리는 타인을 돌볼 수 있게 된다.


다정함은 생존의 최고 전략이다. 협력하는 종이 경쟁하는 종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다. 진화생물학의 기본 원리다. 늑대가 무리를 이루고, 개미가 집단을 형성하는 것처럼, 인간도 다정함을 통해 생존 확률을 높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정함의 질이다. 진정한 다정함은 약함이 아니라 강함에서 나온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내가 십 년 전 호의를 거부했던 것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타인의 사랑도 받아들일 수 없다.


가장 절망적인 자가 가장 희망적일 수 있고, 절망의 깊이는 희망의 높이에 비례한다. 상처받은 자가 타인의 상처를 가장 잘 알아볼 수 있고, 외로움을 깊이 경험한 자가 진정한 연결의 소중함을 안다. 외로움과 다정함의 변증법. 현재 나의 다정함은 과거 어둠에 빚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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遇優友佑虞

만나고, 넉넉하고, 벗하고, 돕고, 염려한다.


이 다섯 개의 '우'는 다정함의 진화 과정을 보여준다. 만남에서 시작해서 여유로움을 거쳐 우정으로 발전하고, 서로 돕다가 마침내 깊은 염려에 이른다.


매 순간의 작은 선택들이 쌓여 다정한 사람이 된다. 다정함은 재능이 아니라 선택이다. 그리하여 다정함은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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