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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수상록1 29화

밤을 건너는 영혼들

야간비행, 소울

by 조융한삶




사명감과 개인적 행복은 양립할 수 있을까.


생택쥐베리의 『야간비행』을 읽으며 리비에르의 냉혹한 결단력에 소름이 돋다가, 픽사의 〈소울〉을 보며 조의 소박한 깨달음에 마음이 잔잔해진다. 두 작품이 제시하는 삶의 방식은 서로 다른 주파수를 가진 전파처럼 동시에 존재하지만 결코 만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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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에르에게 야간비행은 문명의 전진을 위한 성전이다. 그는 조종사들을 밤하늘로 내보내면서 개인의 안전보다 인류의 진보를 선택한다. 파비앙이 폭풍 속에서 실종되는 순간에도, 그는 다음 비행을 준비한다. "행동하는 사람만이 인도자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은 절대적이다. 개인의 행복이란 거대한 목적 앞에서는 허영에 불과하다.


사명감의 숭고함. 인류 역사의 모든 진보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졌다. 마리 퀴리는 방사능에 노출되면서도 연구를 계속했고, 마하트마 간디는 개인적 안위를 포기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을 초월한 무언가를 위해 개인적 행복을 유보했다.


그러나 〈소울〉의 조는 완전히 다른 지점에서 삶의 진실과 마주한다.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거대한 꿈에 매몰되어 살았던 그는, 죽음 직전의 경험을 통해 깨닫는다. 진정한 행복은 커피를 마실 때 입안에 천천히 퍼지는 따뜻함이고, 거리에서 우연히 들려오는 선율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이다.


조의 깨달음은 나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저녁 무렵 책을 펼치고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할 때 느끼는 순수한 기쁨.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느끼는 부드러운 털의 감촉과 그 작은 생명체가 보내는 신뢰의 신호들. 부엌에서 고기를 구울 때 지글거리는 소리, 익어가는 음식의 향기. 연인과 나누는 깊은 밤의 대화, 친구들과 함께 나누는 식사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친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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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네트워크가 우리의 일상을 재편하는 이 시대에, 이 딜레마는 더욱 첨예해진다. 소셜미디어의 피드는 끊임없이 타인의 성취와 행복을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우리는 둘 다 욕망하면서도 어느 것도 온전히 얻지 못한 채 소모된다.


게다가 사명감 자체가 사라져가고 있다. '워라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현대의 담론은 종종 책임 회피의 논리로 변질된다. 조기은퇴를 꿈꾸며 개인적 안락만을 추구하는 삶. 기후변화, 불평등, 혐오와 갈등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많은 이들이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안일한 사고에 빠져 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명감 없는 행복은 공허하다. 뿌리 없는 나무처럼, 작은 바람에도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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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할 점이 있다. 진정한 사명감은 자기희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방식과 세상의 필요가 만나는 접점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통합이다. 리비에르의 밤비행이 숭고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창조적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조의 일상적 기쁨이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추상적 행복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에서 우러나오는 생명력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내게도 몇 가지 구체적인 사명이 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건강하고 온전하고 성숙한 인간으로 이끄는 것, 그들이 올바른 정체성과 가치관을 장착하도록 돕는 것, 학교에서 절대 배울 수 없는 지식을 교육하는 것.


하지만 이 사명은 나 자신에 대한 책임과도 맞닿아 있다. 내가 먼저 건강하고 온전하고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만, 다른 이들에게 진정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내가 온전해질 때, 그 온전함은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전이된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던진 작은 돌멩이가 만들어내는 동심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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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든 동안에도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상상한다. 조종사는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지만, 동시에 창밖으로 펼쳐지는 별빛의 아름다움도 놓치지 않는다. 그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비행하지만, 비행 자체에서도 깊은 만족을 얻는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찾아야 할 삶의 방식이다. 사명감 있는 행복, 행복한 사명감. 그 둘 사이의 창조적 긴장을 유지하며, 매 순간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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