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
팬데믹이 오며 카페를 정리하고 투병까지 하게 되며 2년 가까이 아무 일도 못하고 그림 작업만 겨우 하고 있었다. 가끔 명상 수업을 했지만 매달 나가는 지출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때도 건강했을 때보다 70% 정도의 컨디션이라 체력적 한계가 분명했다.
고민하던 중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활용해 에어비앤비와 명상 수업을 함께 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프거나 체력적으로 힘든 날에는 바로 쉴 수 있고 일정이 생기면 미리 예약을 닫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었다. 군청에 농어촌민박 허가 여부를 확인해 보니 다행히 우리 집은 시골에 있지만 등기가 되어있고 오폐수관도 연결된 비교적 좋은 조건 덕분에 바로 신고필증을 받고 사업자 등록까지 마쳤다.
기본에 명상실로 사용하던 공간을 객실로 바꾸기로 했고 본채에는 화장실이 두 개라 손님들과 따로 사용할 수 있어 불편함이 없었다. 처음에는 1인 여성 전용으로 운영하고 싶었지만 대부분 둘 이상, 가족 단위로 다닌다고 해서 2인까지 예약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조용한 시간을 원하는 손님들에게 맞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셀프인테리어
인테리어 업체 견적을 받아보니 공간이 아무리 작아도 천만 원은 기본이었는데 반 백수라 감당할 수 없었다. 집과 가게 인테리어를 하며 옆에서 배우기도 하고 셀프로 해본 경험도 있어 셀프 인테리어를 하기로 했다.
우선 창문과 문을 새로 설치해야 했는데 벽을 자르고 장비를 사용하는 작업은 안전상의 문제로 전문가의 손길을 빌렸다. 새롭게 만든 창과 방화문은 공간에 맞춰 깔끔하게 설치되었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가장 중요한 단열 작업부터 시작했는데 각재로 골격을 세우고 스티로폼을 자르고 폼을 쏘아 틈 하나 없이 메운 뒤 단열재 이보드로 한 번 더 마감했다. 덕분에 여름 폭염에도 시원하고 겨울 한파에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려웠던 건 전기 작업이었다. 조명 정도는 교체해 본 경험이 있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콘센트를 교체하던 중 선을 잘못 연결해 차단기를 올리는 동시에 '펑' 소리와 함께 차단기가 나가버렸다. 놀란 마음에 바로 전기 기술자를 불렀고 이제 위험한 작업은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했다.
단열 작업 후 친환경 페인트로 마감하고 바닥 난방도 직접 설치했는데 인터넷 영상을 보고 어렵지 않게 따라 할 수 있었다. 조명을 설치하고 목재상에서 방부목과 구조목을 구입해 배송받았다. 키보다 큰 목재를 절단기로 잘라 데크를 짜고 비를 피할 작은 처마도 만들었다. 정원에는 나무를 심고 연못을 조성해 작은 숲 같은 공간으로 꾸몄다. 공사 내내 무리를 해서 밤에는 몸이 아파 끙끙거리기도 하고 생각보다 자재 비용도 많이 들었으며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시간도 한없이 소요되면서 업체를 쓸 걸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사는 게 왜 이리 고된지 모르겠지만 누가 억지로 시킨 일도 아니니 끝까지 해내자 다짐하며 공사를 마쳤다.
명상스테이 묵언
묵언은 템플스테이처럼 명상과 차담, 힐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몸과 마음을 이완하고 쉬어가는 곳이다.
절에서 수련할 때 법당 안은 묵언이라 좋았다. 내성적이라 낯가림이 많은데 새로운 사람이 오면 보통의 장소에서는 호구조사나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지만 이곳에서는 서로 말을 하지 않고 눈인사와 합장으로 마음만 반갑게 인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스님과 차담 시간에도 말을 하고 싶지 않으면 뒤쪽으로 물러나 방석에 앉아 가만히 참선을 하고 있어도 괜찮았다. 강요 없는 그 편안함 속에서 묵언으로 함께 하는 에너지가 좋아 스테이 이름을 묵언으로 지었다. 종교와 상관없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관광지처럼 들르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 공간이 되고 싶었다.
묵언은 예약규정이 까다롭다. 바비큐도 불가하고 단순히 술 마시러 놀러 오는 손님은 받지 않고 객실에는 TV대신 마음에 관한 책들이 준비되어 있다. 함께 온 이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읽고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많다. 덕분에 취향이 비슷하고 차분히 명상하며 쉬어가고 싶은 분들이 찾아왔고 숙소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머물다 가곤 한다.
방명록
묵언을 운영하면서 가장 즐거운 순간 중 하나는 게스트들이 떠난 뒤 손글씨로 남겨주신 방명록을 읽는 일이다. 이곳에서 머물며 느꼈던 감정들이 진솔하게 담겨 있는데 단순한 기록을 넘어 깊은 사유와 다짐으로 가득 차 있다.
게스트는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치유하고 삶의 방향을 새롭게 정리한다. 다짐의 글을 남기고 또 어떤 이들은 호스트에게 감사와 격려의 말을 전한다. 때로는 다음 여행자를 위해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한다. 마치 한 권의 깊이 있는 책처럼 느껴지는데 어떤 게스트는 방명록을 읽다가 남겨진 글들에 너무 공감이 되어 눈물을 흘렸다고 전하기도 했다. 게스트들의 마음이 전해질 때마다 깊은 감사함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고요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방향을 새롭게 정리하며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남겨진 글들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고 사유와 감정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치유와 성찰의 시간을 선사하는 공간으로 오래도록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한 글자 한 글자 남겨진 사유의 흔적을 따라 마음을 여행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