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선사의 기록
제1장. 어느 수선가의 기록
빗물이 유리창을 따라 미끄러지며, 흐릿한 도시의 윤곽을 일시적으로 지운다. 창문 너머로 비추는 어두운 불빛들이 빗방울에 비쳐 반짝였다. 가게 안은 언제나 조용한 숨결만 머문다. 실내는 오래된 목재 서랍과 종이 냄새로 가득했고, 가끔 실타래가 굴러가는 소리만이 시간을 알려준다.
나는 가만히 작업대 위에 놓인 편지를 바라봤다. 낡은 봉투 속에서 오래된 말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종이는 이미 노랗게 변색되어 있었고, 봉투의 가장자리는 손끝으로 쓸어내리기만 해도 바스러질 듯 위태로웠다.
세월이 밀어낸 말들은 대부분 흩어졌고, 남아 있는 건 미처 보내지 못한 마지막 한 줄.
[당신은 아직, 그곳에 있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 바늘과 실을 꺼냈다.
편지를 고치는 일은 섬유를 꿰매는 일보다 어렵다.
말은 옷보다 훨씬 쉽게 찢어지고, 더 오래도록 울음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가게 이름은 없다.
간판도, 설명도, 영업시간도 정해두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알고 있는' 눈으로 들어온다.
오늘도 그랬다.
“이거… 수선이 될까요.”
그는 말끝을 흐리며 편지를 내밀었다. 두 손으로 쥐고 있는 모양새가 마치 무언가를 건네기보다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보내지 못한 편지예요. 십오 년 전, 그 사람이 떠났고…
그날 이후, 이건 제 가방 안에서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었어요. 꺼내보지도 못했어요.”
그의 눈은 초점을 잃고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그곳에 무언가를 찾아야만 하는 듯, 눈동자만이 그 흐릿한 세계를 떠도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의 시선에, 나는 그가 지난 날들을 떠올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눈빛에서, 말보다 많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의 결을 살폈다. 종이 가장자리는 부드럽게 구겨져 있었고, 중간 부분은 마치 오랜 세월을 담아둔 듯 거친 질감이 느껴졌다. 손끝으로 그 결을 따라가며, 나는 그가 이 편지를 붙잡고 있던 날들의 고통을 상상했다.
글자가 지워진 부분, 그 사람이 꾹꾹 눌러쓴 흔적, 그리고 무언가 접혀 있던 구석진 자국.
그걸 느끼는 순간, 말이 몸에 닿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실을 꿰었다. 이 바늘은 종이를 찢지 않도록 특별히 손질되어 있다. 말보다 더 부드러운 감정을 꿰기 위해 만든 도구다. 바늘 끝이 종이를 스칠 때마다, 나는 그 속에 묻힌 그 사람의 마음을, 그가 말로 하지 못한 후회와 그리움을 하나씩 꿰어 나갔다.
편지를 다시 쓰진 않는다. 나는 단지, 편지 속에서 지워진 온도를 되살릴 뿐이다.
글자가 묻혀버린 자리에, 그가 눌러 적었을 수치심을 꿰매고 구겨진 모서리엔, 보내지 못한 말들의 끝자락을 덧댄다. 말은 찢기기 쉽다.
그래서 나는 바늘 끝보다 더 조심스러운 손끝으로, 말의 울음을 꿰맨다.
‘당신은 아직 그곳에 있나요’라는 마지막 문장을 따라, 나는 그의 감정을 재구성해나갔다.
그 사람이 느꼈을 침묵, 말하지 못한 수치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그리움.
그 모든 것을 바늘에 실어 한 땀 한 땀 이어 붙인다.
“다 됐습니다.”
나는 편지를 봉투에 다시 넣어 건넸다.
하지만 편지의 색이 약간 바뀌어 있었고, 가장자리는 미세하게 반짝였다.
그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편지 속엔 마지막 한 줄이 추가되어 있었다.
[그래도 나는, 당신을 찾고 있어요.]
그는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말없이 손끝으로 편지를 쥐고, 눈을 감은 채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마치 그 편지를 되돌려 받았을 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다시 맞이한 것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겁게 일어나며 인사를 남겼다.
“감사합니다… 이런 건 처음이에요.”
그가 떠난 후, 나는 조용히 수선 일기장을 펼쳤다. 페이지는 낡고,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그 속에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오늘도 한 줄을 남긴다. 오늘의 기록, 날짜, 물건, 요청 내용. 그리고 수선 후의 변화는, 한 사람의 마음이 되돌아온 순간을 담아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의 기록을 남긴다.
[기록 157: 사랑은 종종 미안함의 모양을 하고 돌아온다. 그 미안함은 말보다 조용히,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