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소녀와 웃지 않는 인형
제2장. 어린 소녀와 웃지 않는 인형
오늘은 작은 발소리 하나가 수선집 앞에 멈췄다. 문이 열리고, 한 소녀가 들어섰다.
그 아이는 말없이, 품에 꼭 껴안고 있는 인형을 내밀며 아이는 잠시 머뭇거렸다.
“이거… 엄마가 생일 선물로 만들어줬어요. 직접 바느질해서요. 이름도 엄마가 지어줬어요. ‘미미’예요.”
아이는 조심스럽게 인형의 이름표를 보여주었다. 희미하게 바랜 천 조각에, 삐뚤한 글씨로 ‘미미’라고 적혀 있었다. 그 글씨는 아이의 것이 아닌, 어른의 손길이었다.
인형은 낡고 해졌으며, 한쪽 눈이 떨어져 나가 있었고, 입가의 실밥은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웃고 있어야 할 얼굴은 공허했고, 그조차 이미 오래전부터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얘가 웃지 않아요...”
아이의 손등은 조금씩 붉게 질려 있었다. 인형의 팔 부분을 너무 세게 잡아, 천이 약간 찌그러질 정도였다. 손끝에선 미세하게 땀이 배어 있었고, 손톱 끝엔 마치 말하지 못한 시간이 눌어붙은 듯했다.
소녀의 목소리는 작았고, 떨림이 있었다.
“엄마가 집에 있을 땐, 얘가 웃었어요. 저도 웃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안 웃어요.”
아이는 한참 말을 멈추고 인형을 꼭 끌어안았다.
잠시 뒤,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날 이후로, 미미도 말을 안 해요. 엄마가 아프다고 병원에 가셨는데, 그다음부터는 집에 오지 않으셨어요. 미미는 매일 웃었는데… 그날 이후로, 그냥… 멈췄어요.”
작은 눈동자가 떨리는 속눈썹 사이로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인형을 내려다봤다.
“아무리 안아도, 아무리 웃으라고 해도… 미미는 안 웃어요. 나만 웃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조심스레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미미가 웃지 않는 건, 네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걸 닮은 것뿐일지도 몰라.”
아이는 고개를 살짝 들었고, 눈동자에 작게 떨림이 일었다.
“괜찮아. 미미는 지금도 네가 좋아서 이렇게 안겨 있었던 거야. 그냥… 잠시, 울고 있었던 거겠지.”
아이의 입술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그 표정은, 아주 조심스럽게 문을 여는 마음 같았다. 인형을 손에든 나는 천 안쪽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따뜻함. 아이가 얼마나 오래, 얼마나 세게 이 인형을 안고 있었는지가 손끝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그때, 오래된 기억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나도 아주 오래전, 그런 인형을 하나 갖고 있었다.
엄마가 떠나던 날, 그 인형을 꼭 안고 울던 내가 있었다.
그날, 어둑했던 거실 구석. 엄마가 문을 나서며 문틈으로 스며든 바람은 차갑기보다, 이상하리만큼 말라 있었다. 나는 낡은 인형을 품에 안고, 이불 속에 숨어 들숨과 날숨 사이로 울음을 꾹꾹 눌렀다.
아직도 기억난다. 그 인형의 털에서 나던 햇살 말린 냄새. 그리고 울다 지쳐 잠들었을 때, 바느질도 어긋나 있던 그 입꼬리 하나가 나 대신 울어주던 순간을.
그리고 그 기억은 어떤 냄새, 어떤 감촉보다 선명하게 살아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작업대 앞에 앉았다. 바늘을 들기 전, 손이 한 번 멈칫했다. 천을 가르는 것은 쉬웠지만, 마음을 꿰매는 일은 언제나 그보다 어렵다. 나는 실밥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정리하며, 인형의 입가를 다시 꿰맸다.
실을 당길 때마다 마치 아이의 말 못 할 슬픔이 실에 얽혀 따라오는 듯했다.
그 슬픔은 말로 전해지지 않았다. 그저 손끝에서, 바늘끝에서, 조용히 울고 있을 뿐이었다.
실이 바늘귀를 빠져나와 천을 뚫을 때, 나는 인형이 움찔하는 듯한 착각에 잠시 손을 멈췄다. 헝겊 너머로 전해지는 슬픔은 마치 숨죽여 울고 있는 아이의 심장처럼, 잔잔하지만 분명히 뛰고 있었다.
나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소녀는 작업대 너머로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엔 아직 눈물이 고여 있었지만, 아주 미세하게, 숨을 내쉴 때마다 어깨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미미한테, 어떤 말 해주고 싶어?”
나는 바늘을 손에 쥔 채, 낮고 부드럽게 물었다.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괜찮다고. 울어도 된다고. 나도 무서웠다고.”
그 말에 나는 다시 바늘을 들어, 실을 한 땀, 또 한 땀 꿰맸다.
그 실밥마다 아이의 말이, 떨림이, 두려움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좋아. 그 말을 실에 묶어서, 미미 입에 다시 꿰매줄게. 그러면 미미가 네 말을 기억할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마지막 실밥 하나에 작은 매듭을 지었다.
아이의 눈이 조심스럽게 커졌다. 마치 미미의 입이, 조용히 아이에게 대답을 건넨 듯한 표정이었다.
입꼬리를 꿰매는 실의 끝에, 나는 ‘괜찮다’는 말을 조심스레 묻었다. 아이에게, 그리고 내 어린 날의 나에게.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는 인형을 소녀에게 돌려주었다.
입가에 그려진 미소는 아주 작고 흐릿했지만, 분명히 거기 있었다.
그 미소는 마치 오래전 어딘가에 남겨둔 따뜻함이 조심스레 되돌아온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소녀는 인형을 받아 안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엄마가 돌아온 것 같아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 안에서 무너져 있던 시간들이, 아주 조용히 수선되고 있었다.
아이가 떠난 뒤, 나는 일기장을 펼쳤다.
[기록 231: 때때로 우리는 인형의 웃음을 되찾으며, 잊힌 사랑의 조각을 꿰맨다.
그 조각은 아주 작지만, 마음의 구멍을 막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