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0 발표
1.
내가 기억하는 시부모님과의 첫 만남은
우리의 결혼을 준비하며
양가 부모님 상견례로 처음 뵈었을 때였다.
첫인상으론 엄격하고 근엄하게 보이셨지만
너무도 자애롭고 따뜻하게 대해주신 아버님과
매사에 인자하고 자상하신 어머님을
그때부터 또 하나의 부모님으로 모시게 된 것이
내 인생에 가장 큰 감사요 축복이었다.
얼마 전 아들이 미래를 약속한 연인과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했을 때에
나의 마음은 이미 나의 시부모님과
처음 만나던 그때 그 순간으로 달려가 있었으며
그때의 젊었던 아들 며느리가 이제
그 아들과 예비며느리를 맞는 나이가 되었구나
감회가 다시금 새롭기만 했다.
2.
두 분은 10대 시절 고향의 한 교회에서 처음 알게 되셨다.
어머님은 아버님의 절친 여동생이기도 했고,
시간적으로는 십 년이 넘지만
아버님의 군대 근무와 월남 파병 등으로
함께 한 연애의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았다고 한다.
긴 기간 동안 서로 떨어져 있는 그리움을
수많은 편지글로 교환하셨고,
긴 연애를 마치고 결혼하신 후
자녀를 동반한 두 분의 해외생활이 47년 간 이어졌다.
남들은 은퇴할 나이 이후에도
타국에서 사업체와 직원들을 직접 관리하셨고
건강 문제로 그토록 그리시던 고국으로 귀국하셔서
마지막 여생을 보내시는 중에도
자녀들, 손주들을 위한 기도를 놓지 않으셨다.
3.
아버님은 소속 회사나 사업체 이외에도
교회, 한인 사회와 국가를 위한 일이라면
언제든지 전심으로 앞장서서 봉사하셨다.
가정적으로도 자녀들을 훌륭히 양육하셨으며,
어머님과도 평생을 한결같이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모습으로
어느 곳을 가든지 두 손을 굳게 잡고 동행하셨다.
그 한결같은 크신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신
아버님의 6주기 추도 모임을 지난 주말에
어머님과 3남매 가족들이 묘역 앞에서 가졌다.
저마다 아버님과의 추억을 나누고 얘기하며
삶으로 보여주신 사랑의 유산이
얼마나 크고 훌륭하게
자손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연극 <래빗 홀> 대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