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30 발표
1.
사반세기 햇수를 훌쩍 넘겼음에도
여전히 서툰 ‘무늬만 주부’인데
이젠 기특하게도 대략적인 직감이란 게 생겨났다.
여러 마트들을 들러 식재료 장을 볼 때마다
계획적으로 미리 메모하거나
미세한 가격 차이를 따지거나 않고
그때그때 충동적으로 집어 들곤 했었는데.
예전처럼 많이 사서 오래 쟁여놓지 않아도 되니
요새는 적당량으로 필수템 몇 가지 정도로만 구매한다.
냉동실이 크지 않은 단촐한 냉장고에 맞춰 살며
흔하다는 김냉도 없이 지내다 보니
이제 장보기에 대한 심적 부담도 지출도 크게 줄었다.
요새는 남편도 장기로 집을 비우고
한집사는 아들도 알아서 먹는 분위기라
혼밥에 익숙해져서 최대한 간소하게 먹고 때운다.
주변 지인들은 이런 내게 ‘중년의 로또’라며,
얼마나 편하냐며 한껏 부러움을 표한다지만.
2.
코비드 시기엔 어떻게 먹고 살았더라??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5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10년 이상인 듯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3.
며칠 전 미국의 추수감사절을 맞아
아들 커플을 위해 모처럼 맘먹고 한상을 차려보았다.
일단 에피타이저로는 부추와 코스코 굴로
얇은 전을 몇 장 부쳤다.
메인으론 터키가 아닌 소고기를 큰 덩어리로 사서
필레 스테이크, 미디엄 레어로 잘 굽고
따끈한 클램 차우더 수프와
랍스터 머스크로 버무린 에그 파스타를 곁들여
아이스 와인으로 건배하며
단감과 펌킨 파이로 디저트를 마무리했다.
셋이 먹는 조촐한 상차림이었지만
오랜만에 주방을 정상 가동시키니
오랜만에 주부 모드로 돌아온 듯 기분이 오묘했다.
이제 연말이면 남편이 다시 올 텐데
부지런을 떨어서 뭔가 잘해주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