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6 발표
1.
며칠 전의 일이다.
평소 25~30분 정도면 집에 도착하는 거리였지만,
그날은 역대급으로 달랐다.
서머타임이 끝난 11월 첫 주 이후로는
다섯 시만 되어도 금세 어두워진다.
밤 운전을 피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차창 밖은 빠른 속도로 짙어지고 있었다.
고속도로는 완전히 멈춰 있었다.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귀갓길 경로는 온통 진한 붉은색.
퇴근 시간대니 어느 정도 정체는 예상했지만,
그날따라 거의 모든 구간이 극심했다.
사탕을 굴려 녹였다 깨물어 보고,
음악을 이리저리 바꿔도 지루함은 가시지 않았다.
4차선 중 가장 안쪽의 카풀 차선은
3시부터 7시까지 두 사람 이상만 이용할 수 있어
혼자 운전 중인 나는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평소라면 분기점을 지나면서 조금씩 풀리곤 했는데,
그날은 노답 그 자체였으니.
내가 나갈 출구 바로 전의 출구 쪽이 문제였다.
경찰차 여러 대와 사고 차량들이 길을 막고 있었고,
다른 차들은 우회로를 찾아서
내가 나갈 출구 쪽으로 한없이 몰려들었다.
한 자리에서만 몇십 분을 그대로 서 있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피곤함과 허리의 묵직한 통증에
한참을 넋놓고 퍼져 있었다. 에라이.
2.
생각해 보니, 내년 3월이면
산호세에 온 지도 8년이 된다.
투덜거리며 살았던 날들도 많았지만,
어떻게든 적응하며 버텨 왔다.
웬만한 짜증과 불평들에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질 만큼의 시간도 흘렀다.
한 집에서 이렇게 오래 산 적도 처음이다.
그만큼 세 식구 모두 많은 변화를 겪었다.
각자 자기 삶에 열중할 수 있는
여유와 자유를 조금씩 확보했다.
나는 나대로, 다 큰 아이는 아이대로,
각자의 시공간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지극히 단순한 모드에 자연스레 안착한 셈이다.
3.
북가주의 겨울은 비가 잦다.
비에 젖은 산과 나무는 싱싱한 초록빛을 띠고,
우기가 지나고 햇살이 강해지는 봄과 여름이 오면
온갖 꽃이 피고 꽃가루가 바람을 탄다.
알러지 약을 먹으며 인내하다 보면
멀리 보이던 산의 푸르름은 어느새 누렇게 바래 있다.
건식 사우나를 연상케 하는
강렬한 무더위의 시간을 건너고 나면
짧은 가을이 찾아오고,
연말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남은 한 해를 정리할 때가 다시 온다.
11월의 땡스기빙, 12월의 크리스마스.
투덜거리면서도 꼼지락거리다 보면
일 년이라는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
하루하루가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렇게 또, 새로운 봄날을
기꺼이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