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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 4일 미국 횡단 등교

2021/03/02 발표

by 고요한밤

1.

현재 시점에서 2020년 3월로 기억을 거슬러 가본다.

3월 중에 미국의 웬만한 대학들은

1주일 정도 짧게 쉬어가는 지점이 있다.

스프링 브레이크. 흔히들 봄방학이라고 칭한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대학생들이

4월 기말고사를 앞두고 짧은 휴식기를 갖고

타주로 외유나 여행을 떠나기도 해서

기숙사의 방들이 꽤 많이 비어있었다고 한다.

3학년이던 우리 집 아이는

마침 전공과목 과제 제출을 마무리해야 했기에

3학년 시작 때 들어간

친교클럽 전용 기숙사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학교 전체 메일이 전교생에게 날아들었다.

위험한 바이러스가 돌고 있으니

캠퍼스 내에 머무르는 모든 학생은

오늘 당장 바로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

학교 밖에 나가 있는 학생들은

절대 학교로 다시 돌아오지 말고

무조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언제 다시 학사 일정이 재개될지 알 수 없으니

각자 집에서 학교 측의 추가 정보와

후속 메일을 체크하라는 것이었다.

아이는 경황없던 중에도 본인 짐을 박스로 챙겨

사설 보관 창고에 옮겨 놓고서

그날 밤 비행기 편으로 돌아왔다.

여행 중인 베이 지역 친구들의 급한 부탁으로

그들의 노트북이나 공부 자료도 함께 짊어지고 와서

바리바리 전달해 주기도 했다.

이후 학교 측은 모든 포장이사 비용을 부담하여,

각 방의 짐들을 일일이 챙겨

학생들 주소지로 발송해 주었지만.

하루아침에 아수라장이 벌어진 그날의 충격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2.

집에 와서도 Shelter in Place의 연속이었다.

아이는 매일 줌으로 진행되는 수업들에 참여했고

학기말 시험을 대신한 각종 과제 제출을 준비하며,

한편 여름 방학 기간 동안 하기로 했던

인턴쉽들의 취소 통보를 줄줄이 받게 되었다.

통상 3, 4학년 시기의 여름 인턴이

졸업 후 취업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절차이기에

나름 많은 준비와 기대를 했었으나

전 세계를 뒤흔든 코비드 19의 위력 앞에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불확실했다.

그렇게 6개월을 집에서 세 식구가 부대끼고 나서

아이는 마지막 학년은 죽이 되건 밥이 되건

학교로 돌아가 마무리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친한 친구들 둘과 함께 생활할

학교 밖 거처도 따로 마련해 놓았고

복수 전공 졸업에 필요한 학점과 수강 신청도

아빠와 구체적 상의를 마쳐놓은 상태였다.

그렇게 3-4시간 비행기로 도착하기만 하면 되는데

기어이 3박 4일 걸려 차를 운전해 가겠다고 하니

얘는 왜 사서 고생을 할까시퍼서

이런저런 반대 의견을 피력해 보았으나.

이미 아이 마음속으로 모든 결정을 내린 이후라

무슨 얘기를 해도 궁색한 핑계로만 들렸을 것이다.


3.

코비드 바이러스의 전파와 감염도 두려웠지만

아이가 혼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차 고장이나 위험인물 접근, 총기 사고 등

많은 경우의 수가 머릿속에 뭉게뭉게 생겨났고

만에 하나 어떤 사건이 발생할지라도

즉각 연락도 안되고 도움을 줄 수도 없음을 절감하며

3박 4일의 시간을 정신없이 조마조마 보냈다.

물론 감사하게도 무사무탈하게

아이는 목적지인 학교에 최종적으로 잘 도착했고

마지막 학년을 보내며 그 차로 편하게 생활하였다.

사람 맘이 참으로 간사한 것이,

처음 그렇게 보낼 때엔

내내 초조하고 걱정 염려가 넘치더만.

이듬해 5월 그 차로 자기 짐을 다 싣고

다시 집에 돌아오는 3박 4일은

알아서 잘 오겠거니 태평한 엄마로 지낼 수 있었고

지금이야 웃으며 옛날 얘기처럼 할 수 있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베이 지역으로 취업한 아이는

생활비와 렌트비가 비싼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4년 넘게 집에서 함께 지내며

많은 부분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하고 있다.

앞으로 살면서 장거리 로드트립을

맘먹고 다시 도전할 때가 언제 올런지 모르지만

20대 초의 젊음과 용기로 부딪혔던

북미 대륙을 자동차로 혼자 왕복 횡단한 경험은

아이의 일생에서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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