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6 발표
1.
살아오면서 그다지 내색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하고픈 순간들이 있다.
내게 있어 20대 초반 시간들을 떠올릴 때에 그러하다.
https://brunch.co.kr/@silentnight/40
어두운 터널 같던 고3 시절을 무사히 지나
드디어 원하던 대학생이 되고서
그간 꿈꿔온 캠퍼스 라이프가
화사하게 펼쳐질 줄로만 알았는데,
중고교시절 내가 읽어온 한국 근대소설의 서사처럼
나의 하루하루가 낭만으로 채워질 줄로만 알았는데.
맞닥뜨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집, 부모, 가족에 대한
장기간 응축된 분노와 반항이 터져 나왔으며
신입생 첫 학기 등록금 이후
모든 비용을 혼자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으니.
멀리 과외를 다니느라 늘 피곤했고
기분은 가라앉아 있었으며
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불평불만이 가득했고,
부유한 집안 출신에 돈 걱정 없이 공부만 하면 되는
주변의 선배와 동기들을 보며
원래 낮던 자존감은 나날이 지하로 파고들었다.
2.
1학년 때 어느 여름날 1시간 반이 넘게
지하철과 버스로 이동하여 도착한 과외 장소에서
그 집 안주인은 거실에 백화점 쇼핑백을 풀어놓고
손바닥만 한 짧은 빨간색 스커트를 가리키며
xx만원 주고 산 건데 맘에 안 든다며 투덜거렸다.
그 스커트 하나 가격에 해당하는 xx만원은
내가 주 2-3회 멀리서 와서
말 안 듣는 그 집 아이 공부를 봐주는 대가의
1개월 수치와 정확히 일치했다.
그리고 스커트 5개 가격에 해당하는
5달치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그다음 학기 등록이 가능한 실정이었으니.
유독 그날따라 내 눈에 들어온 빨간 치마는
뇌리 속에 강렬하고 무수한 물음표를 남겼었다.
3.
저녁 시간마다 먼 거리 오가는 과외 대신
금액은 적어도 학교 안에서 할 수 있는
시간제 구내매점 아르바이트도 신청해 보았다.
중간중간 공강 시간을 이용해
학생회관과 단과대를 오가면 되었지만.
때로는 음료수 박스를 날라야 할 때도 있어서
수업 시간에 후다닥 들어가면 졸기 일쑤였고,
대타를 맡길 수도 없었어서
날씨나 몸상태와 상관없이 가야만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을 준비했고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회계사 공부를 했으며
대기업이나 금융권으로의 취업 준비를 할 때였다.
외적으로 내세울 것 없이 한없이 초라했고,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던 한 여대생의 모습.
그게 나였다.
4.
그 여대생이 결혼하여 엄마가 되고
그 아이가 20대 청년으로 자라날 만큼
많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왔다.
글 속의 교수님이 은퇴하시기 전에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로 인사드리러 갔었다.
교수님은 자기가 많은 학생들을 조용히 도와 왔지만
나중에 너처럼 다시 찾아와
감사를 표하는 학생은 없었다며 반겨주셨다.
나도 언젠가는 받은 온정을, 도움의 손길을
세상 속에 전할 수 있길 바라며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보리라 다짐하게 된다.
모든 과정이 삶의 은혜요
놀라운 축복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아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