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3 발표
1.
해외 여러 나라를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중심으로
엄마들의 인간관계가 이합집산이 된다는 걸 경험했다.
물론 내가 만난 대다수 한국 엄마들은
기본적인 상식과 예의를 갖춘 분들이셨고
자기 자녀에 대한 애정만큼
다른 학생들에 대한 배려 또한
넉넉히 베푸시는 분들이셨다.
여러 차례의 이사와 교육과정의 변화를 거치며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표본을 만난 것도 사실인데
그중엔 정말 황당하고 매너 없고
지극히 이기적인 언행으로 상처를 주고
자녀를 통한 다툼 그 이상의
극단적 갈등을 초래하는 분들이 없지는 않았다.
가는 곳마다 직접 겪거나 지켜보는 동안에
잠재해 있던 나의 적극성이 발현되기 시작했으니.
2.
20년 전 중국 국제학교로 아이가 옮겼을 때에
한국 엄마들은 숫적으로는 많았지만
영어가 능숙하여 학교와 충분한 소통이 가능한 소수 대비,
학교나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도가 적은 가운데
다른 외국 아이들이 아닌 한국 아이들을 상대로
필요 이상의 과열된 경쟁심을 투영하는 분들이 계셨다.
비록 당시 내 아이는 어렸지만
용감하게도 중구난방인 한국 엄마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학교 측에 궁금한 사항을 전달할 수 있게 하고
당시로서 참 독특했던 중간 역할을 자처했다.
전체 연락처를 파악하고 학년별 리스트를 만들어
같은 관심을 가진 같은 학년 엄마들의 모임을 장려했다.
마음은 있으되 혼자서는 쭈삣거리던 엄마들이
같은 학년의 아이들을 매개로 만나
서로 알고 친해지고 정보를 주고받으며
학교의 각종 행사에 구경꾼으로 그치지 않고
함께 나서서 직접 돕고 챙길 수 있게 되니
학교 측 교사진들도 큰 감사를 표해 왔다.
1년 간 씨앗만 뿌려놓고 홍콩으로 떠나게 되었지만
이후 그 학년 모임들이 아이 졸업 이후에도 끈끈이 연결되어
긴 인생의 오랜 벗으로 남게 해 주었다며
돌고 돌아 내게 감사를 전한 분들도 계셨다.
3.
홍콩에서도 마찬가지로
같은 학년 엄마들끼리 모임을 갖고
한국을 알려내는 학교 차원 행사에
다같이 한마음으로 시간과 노력을 보탤 수 있었으니.
가장 보람 있던 때는
미국에서 아이의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마침 같은 학년 엄마들이
나보다 5-10년 나이 많은 언니들이셨고
무슨 제안을 하던지 적극 지원을 해주셨다.
4년 동안 정기적으로 한국 엄마들의 모임을 갖고
여러 행사와 교내 일들을 의논하고 준비하면서
많은 만남과 친교와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영어가 더 편한 분들 그래서 멀게만 느껴진 분들과도
다양한 주제로 소통하고 만날 수 있었다.
위 글에 소개된 다문화축제만 해도
학생들이 준비한 공연 외에
각 나라 별로 음식 부스가 엄마들에 의해 펼쳐졌는데
한국 부스는 직접 구워 냄새로 압도하는 갈비와
잡채, 김치 등을 넉넉히 준비하였고
시간대 별로 돌아가면서 봉사하며
세팅과 서빙,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마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여러 교내 행사를 통해 한국을 알려내어
다른 인종 아이들에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도록
애쓰고 노력했던 그렇고 그런 시절이 있었다.
4.
이제는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몇 년이 더 지날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조용히 살고 있지만.
한국 엄마들 특유의 부지런함과 싹싹함이 모이고
여러 방면의 숨은 능력자들이 협력함으로
아이들을 위한 뿌듯한 기회를 만들어냈던 경험은
오래오래 보람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그때의 인연들과 만나고
반갑게 연락이 오갈 때마다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