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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거북이 Oct 26. 2019

"어머님, 아이가 울어서 제가 몰래 초콜릿 줬어요!"

공동육아어린이집 영양교사 인터뷰

 

"어머님, 오늘 울어서 제가 몰래 와니만 초콜릿을 줬어요."


둘째 와니가 00 민간어린이집에 적응하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막 지나 하원 시 들은 말이다. 그때 우리 둘째는 두 돌도 안된 개월 수로 생애 첫 초콜릿을 새로운 어린이집에서 등원 일주일 만에 맛보게 된 것이었다. 집에서 먹거리에 쏟던 노력이 순식간에 무너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내가 유기농 매장에서만 식재료를 사서 밥을 해주는 등 유난을 떠는 엄마는 아니었다. 명절 등에 친척들과 다 같이 모이는 자리에서 초등학생 등 큰 사촌들과 있다가 함께 먹게 되는 과자 등은 허용하되, 슈퍼나 편의점 등에서 과자 등을 간식으로 개인적으로 사주는 일은 최대한 뒤로 미루자고 하고 있던 참이었다. 명절 때 허용을 한 것은 너무 제한을 하면 나중에 오히려 아이가 과자에 집착할 수 있다고 들어서였다.


여느 보통의 엄마가 그렇듯 나도 신생아 때부터 관심을 두던 먹거리에 첫째 아이가 3살, 4살이 되어가며 점점 느슨해져 가던 터였지만, 두 돌도 안 된 아기에게 초콜릿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여하튼 그즈음 나는 첫째의 공동육아어린이집을 기다리던 차였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 공동육아어린이집을 만나 먹거리에 조금이라도 더 신경 쓰게 된 것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동육아어린이집에 와서 마음이 놓이는 점들 중 하나는 '좋은 먹거리, 안심 먹거리'이다. 아이는 이곳에서 내가 집에서 신경 쓰는 것보다 더 좋은 식재료로 만든 식사를 하고 있다는 점과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더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반찬 양을 스스로 조절하게 하면서도 먹고 싶지 않은 낯선 반찬도 한 번쯤은 맛보며 그 맛을 기억하게 한다는 점이다. 어려서 한 번도 맛보지 않은 맛은 아이가 커서도 거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 점은 중요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나는 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 먹거리에 쏟는 노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함께크는어린이집의 영양교사 '초코'와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초코는 두 아들을 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 키워낸 엄마이기도 하며, 우리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의 식사와 간식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요리활동 기획 및 진행, 기타 교육과정에 대한 회의에도 동등한 입장으로 참여하는 교사이다.



함께크는어린이집에서 지키고 있는
먹거리 원칙은 무엇인가요?
© 하마

1. 어린이집에서 사용하는 식재료는 무농약이나 유기농 무항생제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즉, 친환경으로 키운 재료를 사용하며 수입 농축산물은 이용하지 않는다. 또한 문제시되는 방사성 재료는 최대한 기준치를 높여 사용한다.

2. 배, 참외, 복숭아, 삶은 고구마나 감자 등 유기농 간식은 껍질에 영양 성분이 많기 때문에 깨끗이 씻어서 껍질 째 제공한다. 조리 시에도 껍질 째 쓰려고 노력한다.

3. 조리 시 화학조미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4. 사제 과자 등은 간식으로 제공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5. 유제품, 계란, 견과류, 육류 등 알레르기 유발 재료의 사용은 지양하며, 특정 식재료에 아토피나 알레르기를 가진 아이를 위해 빵 대신 떡, 우유 대신 국내산 두유로 준비하는 등 대체 식품을 준비한다.

6. 생선은 순살 생선을 사용한다.

7. 환경호르몬에 주의하며 일회용기, 플라스틱 사용을 지양한다. GMO 위험성이 발견된 유채유 대신 안전성이 검증된(=GMO를 안 쓴) 자*드림 유채유현미유를 , 옥수수 제품은 모두 국내산을 사용한다.

8. 아이들 편식을 예방하고 다양한 식재료를 거부감 없이 접하게 하기 위해 친환경 생야채도 섭취한다.

9. 보통의 어린이집들에서는 밥국을 기본으로 김치를 포함한 반찬이 3종류이다. 하지만 함께크는어린이집에서는 김치 포함 1인 반찬 4종류를 원칙으로 한다.

10. 좋은 식재료로 아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함께크는어린이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식재료는 100% 유기농 매장에서 구입한다. 현재 주로 자연X림 매장을 이용하며, 때로 결품이 된 재료는 근처 초X마을, 한*림 등의 유기농 매장을 이용한다.

(* 함께크는 공동육아어린이집의 먹거리 원칙은 사회적인 혹은 내부적인 먹거리 이슈로 부모 조합원 논의나 집행위원회의를 거쳐 변동될 수 있습니다.)


1인 4찬 관련해서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었다. 몇 년 전 영양교사였던 분이 다른 공동육아어린이집들도 모두 1인 3찬을 제공하니, 우리도 그러면 안 되겠냐고 의견을 내셨다고 한다. 그런데 교사회와 부모들이 반대해서 그대로 4찬을 지금까지도 제공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함께크는어린이집은 3찬으로 구성된 일반 식판 대신 아이마다 반찬을 덜어주는 원형 접시를 반찬접시로 사용하게 되었다.

또 때때로는 어린이집 텃밭에서 직접 무농약으로 키운 텃밭 야채를 쌈 고기를 할 때 제공하기도 하는데, 이때는 1인 5찬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어린이집 이전에 아이와 교사가 가족처럼 생활하려는 마음 때문이라고 하신다.


무엇보다 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 좋은 점은 특이 재료 사용과 지속 여부를 영양교사와 조합원 간 회의 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결정을 하기 위해 함께 공부하고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실제로 2017년에는 엄마 조합원의 건의로 고기양이 식단에 적다고 판단해 고기양을 늘리기도 했고, 대표적인 방사성 물질인 황태, 어묵 사용량은 줄였다. 2018년에는 GMO 위험성이 사회적으로 대두되어 '유채유'에서 ‘현미유' 사용으로 전면 바뀌었다. 현미유 구매가 어려울 때는 non-GMO 자*연드림 유채유를 쓴다. 2019년 9월부터는 황태, 대구, 고등어, 표고버섯 등은 방사능 물질 기준치가 높은 한X림에서 구매하기로도 결정되어 현재 시행 중이다.



영양교사로서 지키고 있는 원칙이 있다면요?


1. 조리식 메뉴얼을 반드시 그대로 지킨다.

2. 위생 관리는 최우선이라고 생각하여 항상 신경 쓴다.

3. 오랫동안 만들어야 하는 육개장 육수만 하루 전에 만들 뿐, 나머지 육수는 모두 당일 조리를 원칙으로 한다.

4. 찬성분의 밀가루는 지양하고 따뜻한 성분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 돼지고기 제육볶음을 만들거나 부침개를 할 때 생강가루를 조금 넣기도 한다.


그리고 비빔밥을 만들 때 이제 매운 반찬을 조금 먹을 수 있는 6-7세 아이들을 위해서는 약고추장 양념을, 4-5세 아이들을 위해서는 간장 양념을 함께 준비해주신다고 하신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은 ‘야채 한가득 유기농 비빔밥’을 준비하실 때마다 소스 2가지를 준비해주신다고 하셔서 감사했다.

비빔밥과 약고추장 © 함께크는어린이집

 


영양교사로서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점이 있다면요?


좋은 식재료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저는 '식사의 즐거움'을 강조하고 싶어요. 즐겁게, 맛있게 먹는 식사의 기억이 쌓여야 식사가 기다려지고 즐거울 테니까요.

즐거운 식사 시간 © 함께크는어린이집
즐거운 식사 시간 © 함께크는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영양교사 초코표 최고 국과 반찬은?


- 미역국, 육개장, 비빔밥, 마파두부덮밥, 제육볶음, 깻잎찜, 김말이떡, 김


김은 월 1회 제공하는데, 한 번은 잡채와 함께 제공했더니 아이들이 김에 잡채를 싸서 '야채 잡채'를 맛있게 먹으며 서로에게 만드는 법을 전수하더란다. 그 뒤로 종종 해서 아이들이 더 다양한 야채와 식재료를 접할 수 있게 도와주신다.

잡곡밥과 미역국 (돈육버섯장조림+감자채볶음+숙주무침+김치)_오후간식_김말이떡 © 함께크는어린이집



편식이 심한 아이들,
아토피나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교사들의 원칙이나 노력이 궁금해요!


"먼저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식사량을 알고 조절할 수 있도록 배식할 때마다 교사가 아이에게 먹을 양을 물어보며 조절해줘요."

"안 먹거나 싫어하는 반찬은 계속 교사와 아이가 협의해서 한 번이라도 먹어보며 그 맛을 알거나 기억하도록 해요."

"알레르기나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이 반응하는 식재료에 대해 영양교사나 담당 교사는 숙지하고 있어요. 그래서 밀가루가 있는 빵 대신 백설기로 준비한다거나 생일 때 일반 케이크가 아닌 떡케이크를 따로 준비하기도 해요."



영양교사로서
보람을 느끼실 때는 언제인가요?


"애들이 등원하자마자 '오늘 간식/반찬은 뭐야?'라고 물으며 관심을 갖거나,

밥을 다 먹고 따로 저에게 와서 "초코, 오늘 진짜 맛있었어요!"라고 말해줄 때가 가장 행복해요.

그리고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 같은 밥과 반찬을 나눠 먹으니 이 자체가 정도 쌓이고 좋은 일이 아닐까 해요."  


"엄마 밥 보다 초코 밥이 더 맛있어!"라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기도 한다는 엄마들의 좌절 섞인 증언도 있다.




영양교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2017년 먹거리 소위 이사였던 엄마 판다와도 이야기를 해보니 갑자기 어린이집에 감사한 마음이 샘솟았다. 3년째 이곳에 보내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섬세하게 신경을 쓰고 계신 줄은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말 그대로 '부모와 어린이집 합동 아이 먹거리 밀착 케어 시스템'이 아닌가.


갑자기 먹거리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공동육아어린이집을 택한 부모들의 이야기와 아이들의 맛나게 먹는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기존 어린이집의 먹거리로 고민하던 차에
공동육아어린이집을 만났어요!


“저희 아이가 3-4세 때 다니던 어린이집에서는 간식으로 자꾸 빵을 줘서 신경 쓰였었어요. 매달 나눠주는 식단표에는 분명 ‘떡’이라고 쓰여 있는 날에 아이에게 물어보면 빵을 먹었다고 얘기할 때가 많았어요.”

- 5세 여아 엄마 로빈


"저는 '좋은 먹거리'에 많은 관심이 있고 애착도 심한 편이예요. 저희 둘째가 아토피와 알레르기가 다 있고 계란을 먹으면 눈과 안구는 물론 온몸이 다 부어서 아이가 너무 힘들어해요. 특히 새우나 게를 먹을 때는 입이 부어서 참 보기에도 너무 안쓰러워요.

이래서 먹거리에 더 신경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저는 '좋은 먹거리' 그 자체를 잘 제공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당장 이상이 없더라도 나중에 이것들이 쌓여 다른 안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여자 아이들은 자궁에 직접적인 영향이 갈 수도 있고, 성조숙증까지도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예요. 지금 저는 실제로 자궁이 좀 예민한 편인데, 젊었을 때 좋은 먹거리를 잘 챙겨먹지 않아서 그러지 않았나 생각해요.

여튼 저는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먹거리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요. 그리고 아이들 개개인의 특성에 맞게 세세하게 해주시는 편이라 만족하고 있어요."
- 졸업한 8세 여아 및 재원 중인 6세 여아 엄마 판다


"저는 아토피에 반응하는 식재료가 많은 남자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힘든 점이 많았어요. 분명 유기농 식재료를 쓴다고 했는데 동네 일반 마트나 국산 밀가루나 유기농이 아닌 빵집으로 장을 보시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어요. 아이 얼굴에 발진이 올라왔을 때는 밀가루가 원인인지도 모를 때였죠.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어린이집에 맡기는 시간이 점점 짧아졌어요. 

그러다 100% 생협에서 식재료를 구매해서 쓴다는 함께 크는 어린이집을 오게 되었는데, 아직도 첫 등원일 아침에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해요.

함께크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들어와 아침 모둠 후 간식을 먹는 시간에 아이와 들어왔지요. 아이들이 엄청 큰 조각의 참외를 껍질 채 손으로 들고 먹더라고요! 

‘우와, 진짜 유기농 맞나 보네! 진짜 참외 안 아끼네! 어쩜 진짜 집에서처럼 주네.'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는 참외를 아주 작은 깍두기 크기로 잘게 썰어서 조금씩 줬었기 때문이에요. 놀랄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먹거리 소위'가 있다는 것도 처음엔 어떤 개념인지 잘 몰랐어요. 부모가 실제로 유통까지 모두 확인한 구입처를 정하고 이렇게 꼼꼼히 따지는 시스템에 대해 들으니 ‘진작 알았더라면 결정이 더 빨랐을 텐데!’ 싶더라고요. 알고 나서 엄청 신선한 충격이었죠!

요즘 아토피 있는 아이들은 어디에나 많지만 엄마의 마음으로 아토피에 대한 병을 잘 이해하는 기관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 점이 아토피를 가진 아기를 둔 엄마로서 마음이 놓이고 안심이 되었어요.

- 3세 남아 엄마 하마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아이들의 식습관이나 먹거리에
변화가 생겼다는 제보를 받았어요!


생선구이와 양배추쌈이 있는 식단 © 함께크는어린이집



“저희 아이는 생선 냄새라면 질색을 해서 집에선 전혀 먹지도 않던 아이였어요. 그런데 어린이집에서 싫어하는 반찬도 한 번씩 먹어보게 해서 맛을 보았던지 갑자기 어느 날 '엄마, 나는 고등어를 좋아해. 고등어 구워줘요.'라고 하더라고요. 아, '버섯'도 싫어했는데 어느 날 본인은 버섯을 좋아한다며 버섯 반찬 좀 해달라는 거예요. 불과 첫 달만 지내고서 나타난 변화라서 정말 놀랐어요”

- 5살 여아 엄마 로빈




4세 남아 담당 교사가 적어준 날적이 중 일부 © 다람


“저희 아이는 낯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아이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날적이에 선생님께서 아이가 다시마 쌈, 양배추쌈, 깻잎찜을 좋아한다고 적어주셨더라고요. 집에서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반찬이라 깜짝 놀랐어요.”

- 4살 남아 엄마 다람이






재료에 큰 거부감이 없는 터전 아이들,
그들이 평소 먹는 모습들


참나물을 초장에 찍어 아침을 씩씩하게 먹는 7세 남아 © 두루미
(좌로부터) 홍어삼합 먹는 6세 여아(©판다)와 크림빵 먹은 4세 여아(©마파람), 우동 먹는 4세 남아(©비단거북이)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밥을 먹기 전에 부르는 노래를 남기며 흥얼거려본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서로 나누어 먹습니다. 갈라먹자!

(초코!) 잘 먹겠습니다!"



p.s. 도움을 주신 영양교사 초코를 비롯, 2017년 먹거리 이사 겸 2019 집행위원장 판다, 엄마 조합원 로빈, 다람, 하마, 두루미, 마파람, 야옹, 꼰, 열매, 팅커벨, 은하수 등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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