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의 모든 이야기는 방모임으로 통한다
공동육아어린이집은 매월 한 번, 같은 방 부모들과 교사가 모여 ‘방모임’이라는 것을 한다.
방모임이란?
'방모임'이란 아이들이 지난 한 달 간 어떻게 지냈는지를 기본생활습관, 나들이, 놀이 및 관계 등의 카테고리로 상세히 듣고, 교사와 또래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교사들은 매일 위의 카테고리에 맞추어 정리한 아이들 관찰 이야기를 매달 방모임 전에 '한 달 간 지낸 이야기'를 상세히 적어 또래 방모임 부모들에게 공유한다.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보낸 지 3년째지만, 대부분의 부모 조합원들은 아마 아이들에 대해 상세히 들을 수 있는 방모임 시간을 가장 기다리지 않을까한다. 개인적으로도 한 달 간 아이들이 어떤 흐름과 맥락 속에서 생활을 해왔는 지가 보이기 때문에 교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있다.
첫 방모임, 내 아이와 또래 아이 이야기를 함께 듣고, 나누다
드디어 2017년 4월 초, 첫 방모임에 참여했다. 우선 방모임 전에 읽어와야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한 달 간 지낸 이야기' 파일. 매달 한 번씩 담임 교사가 작성을 하는 것으로 말 그대로 '아이들이 한 달 간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교사들의 치열하고 자세한 관찰기록지'이다. 방관찰기록지는 방모임 전에 읽고 가야 방모임에서 더욱 생산적인 내용을 나눌 수 있기에 시간을 내서 반드시 읽고 가야 한다.
등원 첫 달 교사에게 받은 '한 달 간 지낸 이야기' 파일은 첫째 아이의 경우 8페이지, 둘째 아이의 경우 11페이지에 달했다. 무척 방대하고도 자세했다. 이 파일을 읽는 것 자체로 나는 이전 어린이집들에서 일 년에 두 번 정도 공식적인 면담을 하거나 매일 소소한 내용에 대한 수첩에서 채워지지 않던 아쉬움들이 한꺼번에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 기록은 매달 한 번씩 부모에게 전달되고, 상반기하반기 리뷰, 일년치 리뷰 이렇게 또 전달된다.
내용은 첫째 아이와 또래 아이들이 이 곳 어린이집에 등원한 첫 달이었기에 어린이집에 등원하고 터전 생활 적응 이야기, 아침 모둠 활동 참여 이야기, 나들이 장소 및 체력, 놀이 및 관계의 특이사항, 기본생활습관의 발달 정도에 대한 것들이었다.
첫째 아이는 예상대로 적응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또래들도 낮잠도 대체로 잘 자고 또래끼리도 서로 관심을 보이며 친해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4세 상반기 놀이 형태는 같이 함께 놀이를 한다기보다는, 놀이공간에 같이 있는 것이 놀이의 형태라는 것도 인지하게 되었다. 물론 이는 매해 4세 또래 구성원에 따라 약간의 변수가 있기도 하다는 것이 다년간 경험을 한 교사의 설명이다.
하지만 첫째 아이는 첫째로 태어나 형님들과 지내려면 따로 기회를 만들어야만 했기에 형님들과 어울리는데 낯설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돌아보니 그래서 형님 놀이에 함께 참여하기보다 형님 놀이를 관찰하는 기간이 또래보다 길었구나 싶기도 하다.
나들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공동육아어린이집 나들이는 어린이집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 아니라, 찻길을 건너서 멀리도 나들이를 가기 때문에 나들이 안전 규칙과 그 용어에 대해 공유가 되었다.
- 나들이를 갈 때 짝손하기
- 차가 오면 '거미!'를 다같이 외치고 벽에 붙어 서 있기
- 나들이 장소로 이동 시 안전하게 안쪽으로 다니기
- 나들이 장소에서 나뭇가지는 아이들 자신에게 알맞은 길이의 것으로 놀기
아이들이 이 규칙을 잘 인지하고 따르고 익숙해져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나들이 영역은 동네 놀이터에서부터 약수터, 뒷산, 양재천, 문화예술공원까지 한 달 안에 많이 확장되어 있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에 체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위해 서로를 위해 기다려주고 응원한 이야기도 들으니 뭔가 기특하기도 했다.
기본생활습관 관찰 이야기도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기본생활습관 관찰 이야기는 스스로 먹기, 잘 앉아서 먹어보기, 낮잠 잘 자기, 정리 및 이닦기, 똥오줌 잘 싸기의 카테고리로 진행되었다.
'기본생활습관'은 내가 공동육아어린이집을 택한 이유이기도 했기에 또래 아이들의 아토피 여부, 식단 구성, 안 먹는 반찬, 먹는 양, 먹는 습관 등까지도 디테일하게 들을 수 있었다.
방모임을 통해 내가 배우고 깨달아가는 점
첫 방모임에서 내 아이의 이야기뿐 아니라 또래 아이들의 발달과 성향, 기질들, 각 아이들에 대한 부모들의 고민과 걱정들을 들으며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교사가 우리 아이들을 어쩜 이렇게 자세히, 디테일하게 관찰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탄과 감사함이 절로 들었다. 이렇게 기록을 남기기까지 교사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았을까. 공동육아어린이집에 입소하기 전까지는 이렇게까지 아이에 대해서 상세하게 들을 수 있을 지 몰랐다. 정말 너무 감사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공동육아어린이집 교사들은 교사 일지를 체크만 하면 되는 양식 대신 매일 수기 혹은 글로 아이에 대해 관찰한 것을 상세히 기록하고 퇴근한다고 한다. 아이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고 기록하기 때문에 한 달 우리 아이가 지낸 이야기는 풍성하고 자세할 수밖에 없다.
생활습관, 놀이, 관계, 식습관 등의 카테고리로 아이에 대해 맥락이 있는 상세 리뷰는 물론, 어린이집 같은 방 내에서 어떤 일들과 놀이가 일어나는지, 또래 아이들끼리 어떤 분위기와 컨디션, 흐름들이 이어지고 있는지를 듣고 나면 집에 와서 아이가 보인 모습과 행동들이 어떤 연유에서 비롯된 일인지도 잘 알게 된다.
그리고 또래 아이들의 부모가 가진 내밀한 고민들도 이야기하며 함께 방법을 찾아나가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런 고민을 공개적인(?) 방모임에서 왜 이야기를 하는 지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공유하니 교사뿐 아니라 또래 부모들의 조언을 들으며 해당 아이와 부모가 직면한 고민과 걱정을 함께 풀어가며 서로 도와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 내 아이에 집중되던 나의 관심사가 이렇게 또래 아이들로까지 확대가 됐다. 내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힘든 점에서는 함께 울기도 하고, 성장지점에 함께 박수치고 응원한다는 것이다.
한편 가정마다 부모 중 한 명이 참석해야하기 때문에 평소 잘 들을 수 없는 내 또래 아이의 아빠 의견도 직접 들어보고 새로운 관점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도 해서 흥미롭기도 하다. 물론 아빠들도 방모임에 참여함으로써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좀더 구체적이고 깊게 알게 된다. 그리고 육아에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매달 방모임을 가져가면서 나는 우리 아이의 우물 속에서 벗어나 아이를, 또래 아이들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가 아는 내 아이의 모습이 다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면서 내 아이와 깊이 소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부모들끼리 함께 육아 고민을 나누기에 외롭지 않고, 고민이 되는 이슈에 대해 함께 공부도 하며 아이들의 보육/교육 환경을 개선하려 교사와 함께 노력해나가는 과정이 있기에 부모도 결국엔 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것들이 바로 공동육아의 맛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방모임은 그렇게 2시간을 훌쩍 넘어갔다. 늦은 밤까지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주고 고민을 함께하는 교사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