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바지의 밤

-저마다 왕관을 쓰고

by 시인 이문숙

풍화되기 1천분의 1초 직전인 돌의 내부라고 하면 될까.

- 사뮈엘 베케트의 '세계와 바지'에서


원제는 Le monde et pantalon. 저는 제 맘대로 '세계와 바지'가 아닌 '세계의 바지'라고 읽어 버렸네요.


영원히 가봉 중인 완성도 맞춤도 없는, 그래서 돌파하고 싶은 세계의 밑단을 뜯어 바늘귀가 휑한 굵은 대바늘로 다시 성기게 꿰매보아요.


바지를 뒤집어 보니 뒷면에 어떤 별자리가 생겨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때로는 앞면보다 뒷면이 더 아름답다는 말은 감추는 게 더 좋겠지만, 이건 흰 물병자리 같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러요.


어디선가 묻었는지 실밥 같은 먼지들이 세계의 검은 바지에 희끗해요. 악착같이 들러붙는 그걸 떼어내려는 손가락들. 이 손가락을 오늘은 흰물별꽃이 얼어죽은 화분 속에 죄책감으로 대신 심어 보아요.


발이 묶이고 손가락만 분주하게 무럭무럭 자라는 날들입니다. 그렇게 생각만으로 베케트가 공부한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 가서 흑암의 토탄turf 캐보는 날들입니다. 트리니티는 삼위일체라는 뜻이라는데. 삼위일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나, 타자, 우리?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세번째 바퀴third wheel도 되어주지 못하는 요즈음, 만남이 유보된 날들을 지켜보고만 있어요. 마리오네뜨처럼 딸각대며 내가 너를 너를 우리를 줄에 매달려 혼자 연기하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세계는 항상 가봉 중이고 미완성인가봐요. 자주 어그러지고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들썩거리고 기우뚱해요. 어딘가 가고 싶어 근질대는 발과 다리를 잃고 손가락만 꼬물대면서요.


그러나 검은 바지의 밤이 지속댄다 해도, 토탄이 있는 자리에는 어김없이 보랏빛 히스Heath가 흔들리고 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어떤 화목본 식물이 토탄의 불꽃을 간직하고서요.


검은 바지의 줄무늬처럼 어떤 작가를 흉내내 검은 구아쉬guach 대신 검은 볼펜으로 공책에 스크래치를 연속으로 만듭니다. 네모로 꽉 맞춰진 구획된 세계에 상처들이 흠칫흠칫 종이에 패여갑니다. 줄들이 줄들을 계속 감염시키는 줄들의 팬데믹입니다.


이 줄에서 황급히 빠져나와, 프라하에서 가져온 앉은뱅이병을 보아요. 이것은 꽃병이 아니라 온천에서 약수 떠먹는 호록물병입니다. 친구 은희가 들꽃수 놓아 준 하얀 받침에 앉아 있으니, 어떤 왕좌도 부럽지 않아요.


먼지를 털고 닦으니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병에서 어여쁜 하품이 나오는 것 같아, 이 따분은 한 번 잠기고 싶은 따분함이라고 불러봅니다.


그래도 물병은 속삭입니다. 심심하니 누가 여기 다 무얼 좀 꽂아주어요. 병의 왼뺨에 먼지 애교 점 하나가 나에게 말을 겁니다. 후훗. 라디오에선 스타더스트star dust란 말이 흘러나오고요. 우리말로는 우주진이라니, 참 깨는 말이어요. 왜 먼지별이라고 쉽게 그러면 안 되나요?


세계의 바지를 뒤집어 입고 혼자 앉아 있으면, 먼지별 같은 게 반짝대구요. 티끌도 별이 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는 거를 알게 되구요. 여기다 몇달째 보지 못한 보고싶은 에스텔라두 꽂구 민쟁두 꽂구 정례 샘두 꽂구, 제니도 꽂구


오랜동안 보지 못했던 얼굴들을 꽂아 봅니다. 그러면 코로나corona 바이러스도 왕관 모양이라니, 우리는 바지의 깨끗한 솔기를 다듬으며 곧 있을 대관식coronation을 기다리구 있는 것 같은 조금은 들뜬 기분이 듭니다.


‘풍화되기 직전 1천분의 1초 직전인 돌의 내부처럼’ 매일 그날을 기다리면서요.


이 기이하고 이상한 시대, 검은 바지의 밤을 건너며, 이 물병에 꽂은 얼굴들을 쪼르륵 따라, 보고 싶을 때마다 마셔 봅니다. 흰물별꽃이 또로록 검은 바지 뒷면에 피여나구요.


*세계와 바지 / 장애의 화가들

Le Monde et le pantalon suivi de Peintres de l’empêchement

사뮈엘 베케트 지음, 김예령 옮김, EH 사진


* 헤르 판 펠더 Geer van Velde. 구아쉬는 수용성 아라비아 고무를 섞은 불투명한 수채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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