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물빛 니트

-콸콸쾅콰르르 냇물

by 시인 이문숙

여기로 와요, 즉시

-파스칼 키냐르 ‘부테스’에서


상실, 이 말은 분실과도 다르고 망실과도 다르다. 잊고 있다 때가 되어야 솟구친다.


옆에서 얘기를 나눴는데, 나 너에게만 말하게 있어, 나 힘들어. 이 세상에 내가 힘들다는 건 아무도 모를 거야. 스타벅스 대형유리창으로 5월인데, 갑자기 스콜처럼 폭우가 콸콸쾅콰르르 냇물인데, 그 냇물이 수직으로 흐르는 게 너무 이상했는데. 셋이 앉아있다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나에게만 들려줬던 그 ‘힘들어’가 불쑥 돌아온다. 새까맣게 잊고 있다 그 즈음이 되서야 잠수부 ‘부테스’처럼 솟구친다.


차라리 고가 신발을 분실하고 더 오랫동안 그 구두를 연연했을 것이다. 냉방칸 지하철에서 입고 있다 흘리고 내린 여름 니트보다 더 가볍게 잊혀졌을 것이다. 스르르 여름 니트처럼 목도리방울뱀처럼 사라진 말들, 기억들.


손에 들고 있던 여름 니트 그 텅빈 구멍을 들여다 보다, 아차, 오늘이 그날이었구나 깨닫는다. 잊고 있다 때가 되면 높아지고 난폭해지는 통유리창을 흘러내리던 그 수직의 냇물. 그러나 며칠은 그 속에 익사해 허우적거리다 또 그 구멍 밖으로 기어나온다. 그리고 또 잊어버린다.


유실물 보관소에 보관된 여름 니트와 놓고내린 쇼핑 가방과 지갑들. 그 물건 옆에 나란히 놓여있을 그날의 말과 기억과 이름들. 격랑의 시냇물들.


기억의 유실물 보관소에 가면 이 시간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그것들은 결국 주인을 주인의 말과 속삭임과 시간을 잊은 채 망각의 먼지 속에 놓여있다 폐기처분되거나 소각장에서 재로 스러지고 마는 걸까.


상실의 슬픔은 세이렌의 유혹에 돛대에 몸을 밧줄로 동여매고 몸부림치는 오디세우스가 아니라 잠수부 부테스처럼 기꺼이 그 심연 속으로 뛰어드는 자.


주차구역 B2 F23에 차를 세워놓고 오늘도 뱅글뱅글 망각 속을 도는 사람. 차를 자동감지하는 키는 애당초 가질 체도 하지 않는 과거의 사람. 옛날의 오래된 바닥 모를 냇물의 부름에 빠진 당분간의 사람.


배고픈이에게 이거라도 배고프니 먹어요. 새를 잡아주려하자 새는 당신에게 노래를 들려주었는데, 그런 새잡이가 어떻게 새를 먹어요라는 질책에 자신의 엉덩이살을 떼어먹여 결국 그 상처가 곪아 죽어가는 자. 그 위를 자고새가 빙빙 돌며 자신의 울음 소리로 애도할 때,


이렇게 고통의 세이렌은 우리를 죽음의 지하철에서 신발을 분실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유명음식점에서 유혹의 노래를 들려준다. 시시때때로 슬픔의 거리를 바짝 조이고 당겨온다.


해변의 바위나 백사장으로 와요

초원으로 와요 꽃들이 피는 곳으로

-파스칼 키냐르 ‘부테스’에서


이런 장식적 수사나 표현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니, 이렇게 말하지 말고 즉각적으로 말하라고 나는 슬픔의 끝에 가 보았으며, 거기 나뒹구는 백색의 흰 뼈를 보았다고 말하라고. 그 슬픔의 노래를 피하려고 귀를 밀납으로 막거나 노래를 노래로 덮거나 몸을 묶어 회피하지 말라고.


여기로 와요, 즉시


구두보다 여름 니트보다 당신을 먼저 잊었어요. 당신이 가신 1월 16일을, 2월 2일을, 8월 8일을.


오늘 스타벅스 세이렌 로고 앞에서 나도 모르게 주저앉아버렸어요. 이제서야 저는 잠수부 부테스처럼 잊었던 내 앞에 놓여있는 슬픔의 심연에, 잘 닦인 유리창으로 넘실대며 무언가 집어삼킬 듯 흘러내리던 그날 그 수직의 냇물 속으로 뛰어들었어요.


여기로 와요

여기로 우리는 고통을 알거든요

신들이 인간의 땅에 보내는 고통을 모조리 알고 있거든요

-파스칼 키냐르 ‘부테스’에서


*부테스, 파스칼 키냐르 (지은이),송의경 (옮긴이)문학과지성사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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