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선 토끼

이문숙 #아르코문학창작기금선정작

by 시인 이문숙

그녀를 괴롭히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나는 두 발짝 깡총 뛰고 제자리에 앉아 앞으로 나아갈 폴짝이란 놈이 없어 여기서 환승해야 해 그녀가 가자고 내 목줄을 바짝 당겨 그때마다 줄 감아쥔 손목에 내 새빨간 충혈의 눈동자가 돋아 *심장을 시침핀으로 꽂아 늦었어 또 지각이야


그녀는 나를 손목에 놓인 금장 시계풀로 유인하지 한 번 뜯어먹어 보니 생각보다 맛있네 초 단위로 쪼개쓰는 생활이 그렇게 나쁘진 않아 단박에 나는 질려 그래두 그녀가 불쌍해 세 발짝을 폴짝 뛰어주지 그리곤 꼼짝하지 않아 날 데리고 아침저녁 오가느라 그녀는 온갖 악행을 다 쓰지 양배추라고 뜯어준 게 사실은 고무 조각 인형이었지 거북이가 엉금엉금 기어도 이보다 낫겠는데 그녀의 빽에는 당근을 제외한 무공해 장난감 야채가 즐비해


내가 그렇게 앉아서 본 구두라는 놈은 어찌 분주한지 말할 때 다다다닥 구두점도 없어 진열된 앙고라 스웨터를 만져보지도 못하게 하는 면세점 점원들 같아 내가 잿빛으로 보여서일까 그들 머리 위에 내 반쯤 접힌 귀를 붙여주길 나 때문에 지쳤는지 그녀가 잠꼬대를 해 책상 위 검은 지우개똥은 누가 남긴 거야 모아 뭉치면 공 하나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야 실제로 그녀 사무실 창가에 쭈욱 늘어선 크고 작은 공


그녀는 언제든 끄덕대고 졸면서 나를 끌고 가 결국 환승 역을 놓치고 다시 반대편 플랫폼에서 나에게 금장 시계풀과 고무 양배추를 흔들며 빨리 가자고 애원해 푸쉬맨이 나를 밀때 스크린도어에서 토끼 광고를 보았어 난 당근을 싫어하는데 왜 자꾸 당근을 주려고 하는 걸까 앞니가 넙적하고 잇새가 벌어진 것도 내 특징은 아닌데 나는 매일 2호선에서 산책하는 토끼야


나를 알아보고는 그들은 싸인을 받으려고 또 몰려들지 나는 거기에 토끼는 토끼다라고 써 주지 음식점에선 내 싸인을 코팅해 붙여두고는 토끼처럼 삽시다 외치곤 하는데 나는 그 뜻을 잘은 몰라 오늘 그녀는 지우개똥으로 내 모체를 만들었어 거기다 귀를 달고 빨간 점을 찍으면서 그녀는 흐흐 웃었어 내가 창턱에 앉아있는 이곳이 68층이야


한 번 들어오면 퇴근 전까지 나갈 수 없어 그들은 이 고공이 아찔해서 내 털이 더욱 길어지고 하얘졌다고 해 면세점 직원이 내 털을 깎겠다고 달려오는데 그녀의 손목에 내가 매여있어 다행이야 순간 나는 떨어져 내리고 싶었는데 창턱에는 손으로 깨물깨물 빚어논 크고 작은 검은 공 왜 눈물은 토끼똥처럼 뚝뚝 떨어진다고 하는 걸까


*pin your heart on your sleeve: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다


*공원산책반려토끼, photo by 이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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