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개혁가들

-아니잖우?

by 시인 이문숙

비 오면 편의점 의자는 젖을 것이다. 제주몬딱 앞 고무인형 파란 두꺼비가 왕왕 울어댈 것이다. 정자의 개명된 이름 포레스트 라이브러리FOREST LIBRARY의 돋을새김이 더 도드라질 것이다. 왜 이 철골 구조물이 ‘숲 도서관’인지 스스로 의아해 할 것이다.


수도원은 ‘신의 개혁가들’이란 이름이었다.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


오늘도 어김없이 그 라이브러리 아래 할머니들은 모여들 것이다. 다같이 난청의 아침을 주해하며 오늘은 누가 밤새 안녕했나 고찰할 것이다. 매일 복용하는 알록달록한 약의 오후를 헛돤 지식처럼 털어 삼킬 것이다. 자꾸 이마로 흘러내리는 무기력한 흰작약 머리에 불사의 닭같은 반짝이는 교양의 핀을 꽂을 것이다. 경쟁적으로 혼돈의 금팔찌를 찰 것이다.


정원에는 똑같은 두명의 수사가 일했다. 그들은 채소를 기르고 백합이나 스노우드롭, 아네모네, 작약, 달리아 등 흰색 꽃들만 키웠다.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


할머니들이 펼치는 해박한 대화의 꽃밭은 오후 2시에 완결될 것이다. 오늘이 소복 아니우. 오늘 우리집 스티로폼 상자에서 흰 달리아가 피었다우. 징그럽기도 하지. 꽃은 어떻게 저렇게 매해 똑같은 모양으로 피는지.


난 혼자가 되었다우. 전쟁을 겪고 혼자 유복자를 키웠다우. 양잿물도 마셔보고 독말불버섯도 따먹어보고. 별짓 다해보았지만. 하느님 맙소사, 배는 점점 불러오고 나는 호미질하다가 해산을 했다우. 탯줄은 호미로 끊고.


이런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대화는 새로 설계된 공원의 어린이 놀이터 짚 라인처럼 무한한 허공에 펼쳐질 것이다. 그 무궁무진한 언어들을 서사들을 서사의 극적 반전을 그곳의 모래는 들을 것이다. 떨어지는 비에 자리를 옮기며 어디서 이곳으로 왔는지 알 수 없는 모래알들이 새로운 두꺼비집의 도면을 그리고 설계하고 건축했다가 파괴할 것이다.


나머지 수사들은 수도원의 비밀스러운 내부에 영원토록 갇혀 있었다. 스스로를 신에게 봉헌했기 때문이다.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


부부 사케 앞 플라스틱 매화는 먼지에 덮힌 입술을 삐죽거리며 만개할 것이다. 비는 세상을 그들의 뜻대로 ‘오마카세’할 것이다. 진열장의 음식모형처럼 잠잠한 강을 부추켜 범람하게 할 것이다. 재난 경보는 이미 지나간 재난을 예보할 것이다. 한강변 파밭, 그 왕성한 파밭은 붉은 뻘흙에 휘둘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기의 마스터피스masterpiece를 남길 것이다. 훗날 세워진 재난박물관 가장 높은 벽에 전시될 것이다.


어머니는 왜 병에 걸렸고 아버지는 또 왜 죽었을까. 무엇 때문에 사람들과 동물들이 전쟁에서 죽임을 당했을까, 신은 왜 고통과 악을 허락하시는 걸까.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


그 할머니들 중 가장 다리 아픈 옥란씨의 보행보조기는 비 오는 바깥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저혼자 바퀴를 굴려볼 것이다. 그러다 연립주택 비좁고 밭은 계단을 미끄러져 굴러내릴 것이다.


다행히 파손되지는 않은 채 계단에 쌓인 박스에 걸려 구원될 것이다. 계단에 쌓인 골판지 계란 판들.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영구 해결되지 않은 미제의 사건처럼 계단에 쌓여있는 오목한 시공간들. 이 움직이지 않아도 땀 비질대는 소복에도 아니, 초복이라 해야지. 소복이든 중복이든 말복이든 오싹하고 잔인하고 차갑기만 한 콜드 케이스cold case.


만약 수도원에서 이지도르를 받아들이게 되면, 파베우도 더는 이지도르를 ‘식충이’이라고 부르지 않을 테고, 그를 조롱하거나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


옥란씨는 오늘은 저 계란을 삶아야지, 삶아야지. 저 계란이 무더위에 상하기 전 삶아야지, 하다가 잠으로 빠질 것이다. 몸과 마음이 아픈 건 다 저 계란 때문이라고 하지만. 결국 그건 절대 아닌 지금 꾸고 있는 몽롱한 꿈으로 상할 것이다. 곪을 것이다. 오늘 계란이 곪을 것 같아요,라는 이상한 말을 하다가 심장이 쿵닥대다가 꿈으로부터 내팽겨져칠 것이다.


수사님, 저는 뭔가 유용한 일을 하고 싶어요. ‘신의 개혁가들’ 수도원이야말로 제게 꼭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


비는 그 꿈을 마음껏 현시할 것이다. 계란이다가 계단이다가 ‘계’ 무엇으로 시작되는 아직 거기 ‘계세요’, 거기 아직 ‘살아계세요’이다가. ‘계’ 무엇으로 시작되는 무엇이 되어 또 한차례 오마카세될 것이다.


세상을 개선하겠다고. 그건 실현 불가능한 일이야. 세상은 개선할 수도 개악할 수도 없단다. 그저 지금의 상태로 유지될 뿐이지.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


무를 염색하고 조각한 연꽃, 바위, 연못 위에 이름모를 물고기의 투명하다 못해 어디선가 세척을 거듭한 듯한 자태. 고결과 청빈과 신실의 흰 접시 위에서 아직 살아있다는 듯 붉은 아가미를 벌렁일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개혁할 생각이 추호도 없단다. 우리가 개혁하는 건 신이야.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


비의 가느다란 젓가락이 감히 이 아름다운 정찬을 건드리지 못하고 주춤거릴 것이다. 그때 그걸 멀리서 지켜보던 무력한 ‘신’인 나는 재빨리 돌멩이를 반숙할 것이다. 계란처럼 완벽한 그 구체를 그가 가공한 연못에 던져볼 것이다. 그 완벽하고 찬연한 접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맑은 ‘쨍그랑’ 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오마카세할 것이다.


그러다 이지도르는 신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신의 성별이라는 걸 깨달았다.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


누군지 알 수 없는 가장 선별적이고 범죄적이며 선량한 얼굴은 오늘도 거리를 활주하고 쇼핑을 하고 집에 들어와 자신이 범행한 사건을 낱낱이 살펴보고 오늘도 별일 없군, 다 바보들이네,하며 꿈도 없는 평이한 중립적인 잠을 자리라.


신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다. 무심결에 ‘하느님 맙소사’라고 감탄사를 내뱉다가 이지도르는 순간적인 깨우침에 눈을 떴다. 그것은 ‘하루, 하얀색, 하천, 하품, 하지만, 하하하’처럼 남성형도 여성형도 아닌 중립적인 단어였다.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


그렇게 세상은 재편되고 오마카세될 것이다. 오징어를 오려 꽃을 만들고 무를 조각해 무염의 연밥을 지어 먹을 것이다. 식충식물은 보라색 꽃잎을 벌려 꽃등에 같은 무해한 곤충을 섭취할 것이다. 섭생이 좋은 식물과 동물이 여성이 남성이 늙은 옥란씨가 될 것이다.


‘ㅎ’ 소리를 반복하면서 ‘하느님 맙소사’는 아직 어리고 미숙했지만, 동시에 태초부터, 아니 그보다도 먼저 존재했다. ‘하염없이 한결같이, 하모니처럼, 특별하고 독보적인 하나처럼, 마치 해처럼 하늘처럼, 막상 찾아내려 하면 어디에도 없는 허상처럼.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


‘태고’라는 마을은 비행기를 타고 선박이나 기차를 타지 않아도 이곳에 와 씨방을 터뜨릴 것이다. 홍수에도 대지진에도 전쟁에도 살아남은 씨앗은 시간이라는 연못의 동공에 가라앉아 있다가 연못이 범람하고 그 연못이 진흙으로 메워지고 다시 그 터전에 집을 짓고 자손을 낳을 것이다.


‘하느님 맙소사’는 사랑과 기쁨이 넘쳤지만, 때로는 잔인하고 위협적이기도 했다. 창조하고 파괴했다.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


뒤란에 좋아하는 배롱나무를 들이고 관상용 잉어를 사고 다시 연못을 팔 것이다. 거리에서 ‘돈 좀 빌려주세요, 지갑을 분실했거든요’는 말에 속아도 줄 것이다. ‘도를 아십니까, 동그라미를 한 번 그려보실래요, 제가 당신의 상태를 오마카세해 볼게요’라는 예의 깍듯한 남녀의 말에 동조해 주기도 할 것이다.


저희는 당신들의 외로움을 사냥하는 멋진 귀족들이예요. 경험상 한 할머니는 동그라미 속에 자꾸 딱다구리를 그리는 거예요. 딱다구리는 태고로 치면 가장 훌륭한 고통의 세공사지요. 하느님 맙소사, 나는 그 불안의 무늬를 가장 빨리 간파했지요.


전화번화와 성함을 여기 써주세요, 했더니 옥란이라구 하시더라구요. 구슬 옥, 난초 란. 누가 지었어요. 아주 선견지명적인 작명이네요. 저랑 같이 공부하면 당신의 이름을 실현할 수 있어요, 옥란씨.


옥란씨는 완벽한 계란 모양의 구체,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그 숲 도서관의 여섯 할머니 중 가장 고풍스런 ‘맙소사’가 되었다.


그들이 가고 난 뒤, 한 여자가 다가와 말했다. 할머니, 절대 저 사람들 전화 받으시면 안돼요. 그랬더니 옥란씨는 대답했다.


나도 알고 있우. 그래서 전화번화 한 자리를 바꿔 적어줬지. 난 전쟁도 겪고 아이도 혼자 키워낸 사람. 아니잖우. 그냥 바보먹충이 식충이는 아녀.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 최성은 번역

*프리다 칼로, 인생 만세Viva La V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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