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말들에게
발을 찧는다. 발가락을 찧는다. 빨리 읽고 싶어 문에 발가락을 찧으면서 읽는 책이란. 커다란 문에 발을 찧으면서도 덮지 않는. 자기 몸을 훼손하면서도 빨리 읽고 싶어 책장을 넘기는.
통증이 처덕처덕한 햇빛으로 질식케 했으나. 처덕처덕한 햇빛이라니. 이 어구의 모순처럼 언제 언제 이 ‘타키니아의 말’이 나오지. 파국을 향해 내달리면서 놓지 않는. 핏줄이 터져서 멍이 번지면서까지 읽는 이 책이란.
이곳에선 아무런 할 일이 없었고 책들은 손에서 녹아내렸다
-마그리트 뒤라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태양이 해악으로 여겨질 만큼 야만스런 휴가지. 그 강렬한 광선에 책이 손에서 녹아내리는 이탈리아 어느 궁벽한 해변. 나도 그곳의 일행이 된다면.
홀짝대는 진홍빛 캄파리campari와 진홍빛 태양. 그 기이하리만치 그늘이 제거된 휴가지. 이곳에선 장대하고 비일상적인 음모와 권태가 건너편 강가에서 번지는 ‘산불의 탄내’처럼 존재한다.
아, 그럼 훔쳐, 배를 훔쳐
-마그리트 뒤라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소설 속 사라 그녀는 그 남자 쟝의 모터보트를 훔치려는 다른 일행들을 위해 테이블의 지루한 대화 속에 그 남자를 결박해둬야 한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매일 똑같은 ‘영구불변의’ 생선요리처럼 앉아.
그 일행들은 모터보트를 훔칠 수 있을까. 그 모터보트를 타고 푼타 비앙카의 하얀 벽들을 또 보러 갈 수있을까. 그 암벽에는 무엇이 새겨져 있을까.
양팔을 몇 차례 휘저어 나가며 배영 자세로 누워 바다에 뜬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그리트 뒤라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발을 찧으면서까지 푹 빠져 읽는 책이란. 이 책이라서 그런 거야. 자책 대신 자기 고양을 하며.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은 언제 나올까, 나올까.
할 수 있는 것이란 고작 나도 그 휴가지에 합류하는 것. 그들 일행이 되어 어떤 비현실로 잠영을 하는 것. 같이 배를 훔치고 싶어. 훔쳐, 갈 수 없는 곳으로 가 보리라. 나도 그곳에서 미동도 없이 떠있을 수 있다면.
세상에서 최악인 휴가지. 지뢰 제거를 하다 시신이 된 아들의 파편을 찾고 있는 부부가 내려오지 않는 산과 어디선가 건너오는 산불의 탄내. 청년의 죽음으로 일시 폐장 중인 무도회장.
발가락을 찧어도 아무렇지 않아. 나도 저곳에 가서 태양의 해악 아래 누워보고 같이 배를 훔치고도 싶어.
우정만큼 낯선사람들과 단절시키는 건 없다.
-마그리트 뒤라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휴가지에 안착하고 도달했으나 그곳에는 휴가란 없고 마음의 단절과 하강과 권태의 독재만 말처럼 히힝대는 곳. 타르키아의 아니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은 언제 나오는 거야. 초조한 마음이 초췌로 번복될 즈음.
나는 그 산 중턱에 그들 일행과 같이 헉헉대고 올라가네. 그리고 그 휴가지 식료품상이 제공한 비누상자에 빙 둘러앉아 말없이 있네. 비누상자의 용도는 더이상 비누를 담아두는 게 아니고.
아들의 파편을 수습하고 있는 부부에게 가져다준 봉골레 요리와 오렌지와 토마토와 포도주를 올려놓은 식탁으로 사용되는 이 비누 상자 속에는 머그잔처럼 접시처럼 ‘깨진’ 어떤 것들이 보관되어 있고.
어쨌든 자식의 파편을 수습하신 건, 묘지에 묻어주고 싶어서잖아요. 깨진 걸 모으는 건 습관이지.
-마그리트 뒤라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죽음의 급습 앞에 휴가지의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일상의 물건들이 차려진 그 비누상자는 ‘바니타스vanitas’의 극치. 죽음의 상자 위에 놓인 호박튀김과 스프와 담배 한 갑.
더위로 인한 우울, 태양에 대한 공포는 추위의 경우보다 덜 보편적이지만, 일단 인식하게 되면 더 혹독하다.
-마그리트 뒤라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타르키아, 아니 타키니아지. 타르키아는 백악기에 살았던 갑옷 공룡. 하마의 코와 똑똑한 뇌를 가진 타르키아.
태양의 이글대는 해악을 피해 강가 모래 속으로만 잠영했다는 생명체. 결국 태양 없는 모래 속에서 소멸하고만. 필멸을 원했으나 이름은 여기 잔존하는 우매한 현자, 타르키아.
삶이 아름다움과 구질구질함과 권태를 끌어안듯, 사랑도 거기서 벗어날수 없어
-마그리트 뒤라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자꾸 타르키아로 무의식적인 언어의 전도를 유발하는 타키니아는 모래 속으로 사라진 타르키아일 수도 있어.
타키니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비존재’의 어떤 음영 같은 것일까. 호박튀김 속에 사라진 호박꽃 같은.
찧은 발가락이 욱신대면서까지 그 일행에 껴든 나는 오직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이 이 휴가지, 태양이 지배하는 일상의 해악으로부터 그들을 파탄으로 이끌거나 해방시켜줄 것 같아서인데.
인간의 품행은 겨울보다 여름에 더 의미심장하다.
-마그리트 뒤라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그들의 지속되는 언쟁과 악의적인 관계 속에서 나는 이 작은 말들이 데리고 갈 어떤 곳. 어떤 곳을 갈급했으나.
타키니아로 가는 건 진짜 좋은 생각이야. 타키니아에 들르면 가이드들이 게을러서 그 작은 말들을 안 보여줄 것 같거든.
--마그리트 뒤라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결국은 가이드도 데려가길 꺼리는 곳. 에트루리아는 이미 수천년 전 망했고 고분의 암각화로만 남은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은 대화 속에 언급만 될 뿐.
나는 그들 무리와 모터보트도 훔치지 못하고 캄파리라는 진홍빛 술도 마셔보지 못하고 발만 새파랗게 찧었구나.
쫌 억울하기도 하네. 지독한 태양의 탄내를 맡기만 하고. 지독한 비누 냄새가 가린 죽음의 그 ‘바니타스’의 극치에 혼곤하기만 했던 이 책의 악의적이고 비천한 매혹.
그녀 사라가 침대 발치 시원한 타일 바닥에 누웠다.
-마그리트 뒤라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그렇지만 나도 이 잔혹한 여름에 속아보려는 자. 이 책이 기여코 보여주지 않는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대신, 나의 주방 금간 타일에 나의 작은 말들을 그려보리라. 그 작은 ‘깨진 금’들을, 그 미세한 균열들을 살려 나만의 작은 말.
진홍빛 태양 칵테일도 만들어 마셔 보리라. 태양 대신 토마토를 으깨어 그 진홍빛을 내보리라. 모터보트를 훔치는 대신 ‘헛배’라도 만들어 띄우리라. 내가 나를 고무하리라. 내가 나를 점묘하리라.
* 마그리트 뒤라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녹색광선, 장소미 역
*조르주 쇠라, 아스니에르에서 멱 감는 사람들
#여름#관계#말과언어#삶과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