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탓탓탓이 아니야
연우네 치킨과 궁궐공원과 늘빛교회. 뜨개모자를 쓰고 줄무늬 원피스와 납작구두를(납작만두처럼) 신으신 할머니가 뭔가 계속 주워 동신 아파트 쥐똥나무 펜스 너머로 던지신다. 아침부터 꽁초를 줍는 건가. 줍는 건 훌륭한데, 왜 저리로 던지시나? 아침 팔 체조를 저렇게 하시나.
미이이이이
-이경림 안-푸른 호랑이 20
자세히 보니 형체가 바스라기 직전 매미 사체를 주워 ‘잘 가’하는 애도의 체조네. 매미는 속엣것 쏙 빼내고 껍질은 형체 그대로 남아 데드마스크 같아. 남은 자의 소리없는 오열이 귀를 떼어가도 그 귓밥으론 떡도 밥도 오색 백설기도 만들지 못하는데.
세상은 호랑이 발톱처럼 앙칼졌고 대기가 뜨거워질수록 불가시의 호랑이에 물어뜯긴 인간의 ‘질환’은 시뻘겋게 부풀러 태양처럼 이글댔고 우리들 내부에는 실체없는 ‘푸른 호랑이’가 어슬렁댔고.
그 푸른 호랑이가 팔다리 하나 떼어간 가방이 무거워 잠시 벤치에 걸터앉아 있는데, 누가 다가와 자세히 보더니 털퍽펄퍽 그냥 간다. 강선 2단지 그 푸른 호랑이네. 이전에 갑자기 달려와 주먹을 휘두르려 했던. 헛주먹이 연출하는 그림자 연극.
고작 늘빛교회 횡단보도에 서있는데, 2단지 경남 고층에서 들려오는 호랑이 청년의 멈추지 않는 비명. 나는 그 청년이 무섭기보다 안타까워서 안절부절한다. 치열한 경쟁과 탈락의 지속. 점점 커가는 방충망 내부의 격렬한 푸른 호랑이들.
푸른 호랑이 청년이여. 어쩌겠는가. 내가 과거의 악행을 저지른 누구와 닮았는가. 럭키아파트 측문으로 들어가는 땀에 번질대는 그림자여. 줄무늬를 흘리며 가는 아픈 호랑이의 저벅저벅 아닌 털퍽털퍽이여.
뒷모습이 정직하다고 하는 거짓 언술에 속지 마라.푸른 호랑이의 뒷모습은 아직 위엄과 늠름함을 잃지 않았어. 누가 그 청년에게 꿈틀거리는 줄무늬를 돌려줘, 제발.
그 푸른 호랑이들이 쓰르람 쓰르람 지나간 자리, 매미 사체가 사람들 발에 밟힐까봐 울타리 너머 덤불 속으로 장례를 해주는 줄무늬 할머니 그를 ‘매미부인’이라고 일컫자.
뜨거워지는 지구를 경고하고 밤에도 번쩍대는 빛들의 공해를 광랜통신처럼 전파하는 매미부인은 그 소음과 달리 ‘수긋함과 다소곳함’을 우리에게 현시하고 있다고.
나는 8월 폭염 아침, 그 청년 푸른 호랑이처럼 아침그 매미부인을 자세히 지켜 보았다. 호랑이의 이그르한 눈동자 속에 들어있는 열도와 강력분 같은 밀도를.
그 ‘찬찬함과 올곧은’ 자세로 혼란스런 세상에 줄 긋기. 그 올곧고 정연한 ‘사선 긋기’, 이건 아니라는 ‘사선의 항거’. 나는 그녀의 기괴한 아침 체조 앞에서 ‘납작만두’처럼 겸허해졌다.
돌부리 같은 어둠을 풀어 한 올 한 올 짰네
거기가 어디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이경림 안-푸른 호랑이 20
매미부인은 내게 말했다. 오늘 줄무늬 없는 희귀한 ‘푸른 호랑이’가 먼 나라 사육장에서 태어났대요. 그러나 저는 줄무늬 없이는 하루도 못 살아요. 오늘은 줄무늬 재킷, 레이스모자, 통바지. 한껏 성장을 하고요. 출근하는 커리어 우먼 같다구요.
호홋, 그렇지요. 이것도 일종의 출근이지요. 세상의 모든 줄무늬를 위한 출근. 나는 미미하고 노쇠했지만, 세상에 줄 긋기를 ‘사선 긋기’를 멈추지 않을 거예요.
오늘은 아파트 쥐똥나무 펜스 너머로 던져주지 않고 느릅나무에 붙여줘요. 아직 살아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더 울다 가라고요. 실컷 울고 가라고요.
푸른 호랑이 청년들이여. 내가 대신 털매미처럼 공명통을 울려 빌게. 매미부인이여. 당신은 이미 최고의 문학 상 ‘시케이다cicada’ 상을 받았다오. 배의 반을 텅 비워 놓아야 울 수 있다는 매미여. 지글지글 끓는 기름 같은 소리를 낸다는 유지매미여.
대형마트에 줄무늬 고운 성주참외가 쌓이고 줄무늬 무등산 수박이 쩌억 벌어지고. 여름에는 줄무늬 스트라이프가 멋지고 시원하다오.
별들조차 무더위에 찌는 밤, 금박 벗겨진 트로피처럼 달빛도 희미한 밤. 궁궐공원 정자 지붕에 올라가 턱 걸터앉은 세 소년을 보았네. 그들은 무엇을 보려고 저 위험한 곳에 앉아 있는가.
왕말매미들의 포효. 까마귀들의 통저음. 새벽 까치들의 급발진. 멧비둘기의 레퀴엠. 길고양이의 카스트라토. 응급실처럼 긴박하게 울어대는 참깽깽매미여. 울음의 고막을 상실한 세상을 대신하여 그리 시끄럽게 우시는가.
내가 짠 날개가 겨드랑이에서 요동쳤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끌고 위로, 위로 솟구쳤네
-이경림 안-푸른 호랑이 20
푸른 호랑이여. 이 아픈 세상에 무엇을 허여하시려는가. 내 탓이오, 탓탓탓 울부짖다가 ‘내 탓이 아니야, 아니야 ‘, 또 그러다가 다시 꺼꾸로 나무 둥치에 붙어 태풍 카눈이 오시거든 그보다 더 크게 울어주십시오.
이 밤, 나
어느 집 방충망에 붙어, 안을 보네
-이경림 안-푸른 호랑이 20
매미부인이시여. 아직 살아있을 지 모를 쓰름쓰름 매미를 느릅나무 껍질에 꽉 붙여 주십시오. 세상에 줄 긋기를 멈추지 말아 주세요.
이건 ‘아니야 아니야’, 조그맣게 우리의 미력微力을 푸른 호랑이처럼 보살펴 주세요. 미이이이, 방충망의 미세한 구멍에 발을 걸고 계속 울게 해 주세요.
*르네 마그리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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