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가면

-떠도는 집

by 시인 이문숙

그날이었다. 코가 뭉툭해지고 머리에 뿔이 돋았다.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음악 다큐를 본 뒤, 좋아하던 이어캔디ear candy 같은 모든 활동과 멀어졌다.


좋아하던 영화, 말러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빌 더글라스의 힘hymn. 아르보 패르트의 틴티나불리tintintinnabuli. 솔라 파솔라 시라 도시라. 거울 속의 거울. 그 단일한 울림과 파묵破墨과 암전.


이후 바순의 붉은 입술도 반짝이는 호른의 쉬식대는 숨소리도 내 심장 소리도 다 싫어졌다.


등나무가 묵은 구불텅한 줄기에서 보랏빛 등을 걸던 때. 전지되었던 포도나무에 새송이가 종균처럼 망울망울할 때.


어떤 영상물과 소리가 그 좋아하던 그림들이 복숭아 열매라는 뜻의 다리. 화도교 고물상 옆에 숨어 빛나는 성인용품 가게의 붉은 네온 같았다.


그곳이 허허벌판일 때, 화도교 다리 주변에는 복사밭이 있었다. 복사꽃이 다리 아래로 붉은 찬미가처럼 떨어졌다. 시멘트 다리에 새겨진 화도花桃라는 한자가 비칠대며 떨어지면서 그 붉은 네온을 한 번 더 강조했다.


모든 나의 연예활동은 인파 북적대는 대로의 풍성플라자라는 빌딩 포르노 영화관이나 키스방 같았다. 아저씨, 오늘은 여기 쉬세요. 라라돌도 있고 라벤더돌도 있어요. 당신 맨스 케이브도 없는 가여운 사람이잖아요. 한 번 들어와요.


스비아토는 헐벗은 몇 올 남지 않는 독수리대머리 머리에 얼룩덜룩 검은 저승꽃 반점을 손가락으로 싸안으며 말한다.


나는 내가 싫어

싫싫싫싫싫


음악은 정복자의 애띤 식민지 소년에게 내미는 독약처럼 빛났고 파계 신부의 리토넬로처럼 반복하고 있는 영광송 같았다. 배교를 하고도 십자가를 손에 쥐고 있는 수사 같았다.


음악은 사기꾼의 사근거림. 저도 모르게 몸에 밴 아첨의 말 같았다. 피흘리는 야전군대 자원봉사 간호조무사candy stiriper 사탕 분홍줄무늬 제복 같았다.


이 이상한 때에 다요다 요코의 ‘페르소나’를 읽는다. 소슬하다. 이렇게 소슬하다고 써도 되나. 갑자기 서슬이라 자동 교정하고도 싶은 날들의 나날들. 날들의 서슬 푸른 면도날들.


잡상인은 출입할 수 없습니다. 자칭 고급 주거지 비버리힐즈라고 불리는 동네를 지나가다 맹견주의보를 본다. 맹견 같던 스비아토는 늙어 저승꽃 핀 머리를 감싸안으며 ‘나는 내가 싫어’ 한다. 다와다 요코 소설 ‘페르소나’의 미치코는 후카이 가면을 쓴다.


미치코는 무슨 뜻이야. 남동생 가즈오는 무슨 뜻이야.

-다와다 요코의 ‘페르소나’


미치는 타오, 도道를 의미하지? 노자의 도덕경 그 도 말이야. 미치코는 도의 여자? 가즈는 화和, 하머니harmony 말야. 가즈오는 조화의 남자?


미치코라는 이름에서 맹견이 튀어 나와 꼬리는 살랑살랑 흔들면서 동시에 이빨은 당장 물어뜯을 듯 으르렁댄다.


좀 봐줘. 나는 지나가는 그냥 한 사람이야. 나는 적요한 대낮을 훔치는 좀도둑 같은 거도 못 되는데. 나는 산 속 *꿀벌의 무릎, 여치의 다리, 귀뚫이의 눈썹 같은 거나 찾으러 가는 거였는데.


‘후카이’는 미친 여성을 표현하는 일본연극에서 쓰는 가면이다. 마음 속에 심정深井을 가진 여성. 깊은 우물. 우울의 우물을 가진 여성 가면.


나는 단지 조그만 연못을 에워싼 난간에 누군가 써논 <참회, 연숙 여기에 서다> 같은 낙서를 보러가는 길이었는데.


'참懺’이라는 한자에는 사람 인이 둘, 아닐 비가 하나. 정말 아니다. 이때는 이 시기는 이 시대는 아니다. 스비아토의 지지직거리는 화면 속 ‘나는 내가 싫어’ 가 그 깊이를 모르는 연못 속에서 갈색 사초풀로 살강댄다.


나는 그동안 걷는 사람이었다. 걷다 보면 자코메티 풍 대못 대자걸음을 걷기도 했다. 세상을 탕탕 박으며, 세상을 비활성화시키며 소금쟁이처럼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활강하기도 했다. 조각가 시커먼 손톱 아래를 지하차도처럼 먼저 걸어보는 사람이기도 했다.


터덜터덜 걷지 않고 다리를 쫙쫙 찢으며 걷던 사람이기도 했다. 언젠가 보았던 탱고 마에스트로 이름이 ‘한걸음’이었던 것처럼.


나는 나의 모든 연예활동을 쟈코메티 '걷는 사람' 옆에 세워두고 싶어졌다. 걷지만 멈춰있는 이 한 발짝, 한 발짝이 광두정을 장식으로 박은 칠흑 반닫이의 어둠으로 조악해지기도 했다.


봄이 오고 있는 길에 쾅쾅 박은 발자국은 세상의 모든 길에 '광두정' 박기 같았다. 미친 대가리 못. 광두정.


일본 사람은 생선을 뼈 있는 채로 먹고, 눈알도 붙은 채로 먹는다면서요? 전갱이 튀김 말예요. 무섭네요.

-다와다 요코의 ‘페르소나’


그 소심한 광기와 착란. 식상했던 '한 발짝, 한 걸음'이 느닷없이 '움직이는 액체'로 약동하며 흘러가기도 했다. 세상에서 나는 혼자 걷는 걸 가장 잘하는 사람.


그러나 나는 어느덧 ‘걷는 사람’보다 ‘멈추는 사람’이 되었다. 멈춰 심정深井을 들여다보는 여자가 되었다. 누가 이 '자만'도 독이라고 말해줄까. 나는 내가 싫어졌다. 가면을 쓰고 싶어졌다.


미치코는 후카이 가면을 써보았다. 전철 안에서 미치코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정신병원이라는 말이 들린 것도 같았다.

-다와다 요코의 ‘페르소나’


눈이 샐쭉하고 옆으로 쭉 찢어진 무표정한 매력적인 ‘쓴맛’이 없는 동아시아적 얼굴을 가면 속에 넣고 미치코, 도道의 여자처럼 활보하고 싶어졌다. 그러다 멈추고 싶었다.


그리고 연못에 생이가래 같은 조립식 아파트 ‘플로텔 오이로파flotel Europa’, 떠있는 집 유럽에 살고 있는 동유럽 난민들처럼 멈춰 오래도록 나의 심정深井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 우물을 들여다보는 코가 뭉툭해지고 머리에 뿔이 돋은 다른 피조물이 되고 싶었다.


어쨌든 하나의 얼굴에서 해방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이렇게 당당히 가슴을 펴고 있다니.

-다와다 요코의 ‘페르소나’


다와다 요코, 따뜻한 밭. 심정深井 속에 그 깊이 가늠할 수 없는 연못 속에 일렁일렁하는 밭. 그 검은 물 속에 다랑이밭이 한없이 펼쳐져 있었다.


다와다 요코, 多和田葉子. 따쓰한 이랑, 무한의 밭. 잎사귀의 자녀, 봄의 딸.


팔랑대다 허공에 멈춘 잎사귀의 딸이 되고 싶어졌다. 그 밭의 경작하는 도구가 되고 싶었다. ‘고무래’처럼 땅을 고르는 딸.


*다와다 요코, 페르소나, 유라주 옮김, 민음사 2023


*꿀벌의 무릎knee of bee: bee's knees의 변형, 가장 좋은 것들, 백미. 벼룩의 눈썹, 고양이의 수염 등.

#다와다요코#페르소나#독일#일본문학#경계를넘어#여행하는말들


My third poetry collection '무릎이 무르팍이 되기까지' was published at 문학동네 thanks to u guys, particularly poet 김민정, Critic 조재룡. This book was finally released at bookstore on friday. I really hope u to read n advertise it to ur precious friend .

If i roughly translate book title into english, it will be ‘kneel up’. Recently we have been suffering hardship all around the country like delusion. We feel very chaotic. Thats why i make a title for this book.

I want every each person to get over tough time by kneeling up, not kneeling down to evoke our hope. Besides i wish my book should be 'knee of bee ' to all of us. Big hu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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