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의 '혀 끝을 맴도는 이름'
수수꽃다리에는 '다리'가 있을까. 지금 움이 트고 있는 캄캄한.
살살한 추위에 겹겹옷을 뒤집어 써도 세계의 일교차는 좁혀지지 않는다. '허겁지겁'에 문의해도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이 불친절과 냉담이 지속하는 한 세계는 겨울, 거울 없는 그 왕국의 신민들은 혼란의 질겁에 빠져야 한다.
그래도 좋은 '싹'은 온다. 엄벙덤벙 허둥대는 시간에도 엄벙덤벙의 발화, 그것의 벙그러짐.
이 새하얀 '아연실색'을 지나 그래도 유리셔츠의 봉오리 같은 첫단추는 채워지고 우리는 긴급하게 달려가 사무원이 되고 철도원이, 헌옷수거자가 된다. 흐르는 시간 위에 다리의 교각을 놓고 가로등의 유리를 닦는다.
그런 혼란의 소음 속에서도 무명 화가가 지하철 역에 쌓여있는 먼지를 모아 작업하듯, 돌풍과 미세먼지를 뭉쳐 나무는 수액을 움키고 찬찬히 흔들린다. 그렇게 수수꽃다리는 혀 끝을 내밀고 달싹인다. 몸밖으로 그동안 은거했던 다리를 내밀고 활기차고 날렵하게 걸어간다. 각자 동면했던 이 마실과 저 골짜기를 잇는 메아리의 다리. 대낮에도 아름다운 현수교의 불빛들.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는 '혀 끝을 맴도는 이름le nom sur bout de langue'에서 'bout'는 끝이며 선debout 채로 맴도는 언어의 개화하지 않은 봉오리bouton라고 말한다. 단추button가 옷 위로 나오듯, 언어는 얼굴에 여드름이 나듯 입 위로 돋아난다. 그렇게 나무의 움은 '꽃의 여드름'이라고 쓴다.
싹이 나기 시작하니 직박구리의 부리는 더 길고 뾰죽해진다. 그걸 상대하는 나무 껍질은 더 견고하고 두툼하다. 어떤 혼란은 망설임과 주저앉음만을 포옹하고 있지는 않다. 다시 서려는 장딴지와 엉치와 쓸개.
그동안 소경이었던 귀로 벌새의 쏘시락거림을 듣고 타닥거리는 잉걸불을 듣고 구두 발바닥의 마찰로 길을 듣는다. 복사뼈는 야위어 신발은 덜그럭대며 환호한다. 추위를 오므리던 오리털 조끼 주름의 실밥이 풀어진다. 그 어떤 '실랑이'도 누추하지 않다. 그 어떤 삐뚤어짐도 불쾌하지 않다. 싹의 그물 속에 갓 잡아올린 방어의 등처럼 반짝거린다.
빙하가 든 컵, 빨대가 꽂힌 지구. 나무가 수액을 쭈욱 빨아올려 움이 튼다. 꽃의 여드름이 발진처럼 돋아난다.
그렇게 새싹의 혀 끝에 맴도는 이름들. '혀'에서 '허'로 '어語'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거기 맺히는 이름들. 그러고 보면 수수꽃다리는 다리가 있다. 나무에서 팔과 다리가 나온다. 너와 나를 이어주는 하얀 '실랑이' 같은 다리. 허허창창 물 위 바지선 같은 다리.
나올까 말까 망설이는 혀 같은 혀 끝 같은 나무의 단추 같은 새 부리 같은 움들. 미뢰와 같은 맛봉오리들, 혀의 소름들, 절망의 식은땀들. 서로 한 군데가 닮지 않는 이 오톨도톨들. 돌멩이의 싹들.
움트다와 같은 말. 이런 겅중겅중한 말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파스칼 키냐르 저 / 송의경 역 | 문학과지성사 | 200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