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스튜어트의 '갈망에 대하여'
내게는 세 채의 우물이 있었다. 사실은 '우물 정'이 들어가는 세 개의 역, 운정과 화정, 그리고 합정이라는 이름의 역.
수잔 스튜어트Susan stewart는 '갈망에 대하여On longing'에서 바늘로 덮여있는 추억의 책을 읽는다. 물의 안경을 쓰고 벌거벗은 도시의 800만 개의 이야기가 아코디언처럼 펼쳐지는. 우리의 경험의 앞 뒤에 놓여 있는.
우물은 내게는 어둠의 회오리를 간직한 흰 빛의 쟁반. 우리집의 쟁반은 공작이 활짝 날개를 펼치고 있는 가장 얇고 가벼우며 반짝이는 그런 거였다. 쟁반은 바쁘게 흰 종지같은 그릇을 날라다 놓고는 늘 부엌 한 귀퉁이에 조요히 기대서 있었다. 화려한 날개의 문양을 한껏 펼치고.
아니다. 물의 안경을 쓰고 물의 아코디언을 켜면, 그것은 문양이 아니라 통점이었다. 사육장에서 본 공작은 횃대에 가만 앉아 있다가 뛰어내려 날개를 편다. 머리에 화관을 이고 무거운 날개를 질질 끌며 왼쪽으로 한 걸음, 오른쪽으로 두어 걸음. 그걸 반복한다. 왼쪽으로 두어 걸음. 오른쪽으로 서너 걸음.
사실 공작은 무언가로부터 위협을 느끼거나 두려움이 스밀 때 날개를 편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두려움을 보며 아름답다 한다. 그 날개가 비단 같다 양단 같다 공단같다 한다. 공작이 날개를 펴고 있는 시간은 아주 짧다. 한 오 분 남짓.
사실 기차가 운정역에 정차하고 다시 떠나는 데는 '5분 남짓'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객차에 자리가 없는 날, 늘 화물칸에 쭈그리고 앉은 젊은 날의 나는 흰 수화물과 다름 없었다. 언제나 꼭꼭 옥매어진 알 수없는 불안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말없이 해사했고 버버거리며 움츠렸다. 헹풀이 없고 좁다랬다. 그때 운정이라는 이름의 우물은 구름의 흰 너울에 나를 담갔다 꺼내줬다. 푸른 빛 형형한 빨래처럼 널어주곤 했다. 그때만은 졸고 있던 눈꺼풀을 걷고 우쭐대는 하늘을 보았다. 기차가 치륵치륵 운정을 가네. 늘 그득그득 넘치던 구름 우물. 물의 기호로 가득했던 구름의 엽서.
수잔 스튜어트에게는 내가 그랬듯, 모든 기호가 죽은 자의 땅에서 날아온 엽서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갈망의 흔적이었으며, 이 흔적은 기호의 고유한 이름과 같았다.
지하를 달리던 전철이 지상으로 올라오면 검은 콜타르의 집을 둘러싼 배밭의 어린 묘목들이 간신히 한숨처럼 흰꽃을 터트린다. 조금 나이가 든 나는 화정역에 잠깐 정차한다. 그곳은 복숭아밭이 많아 붉은 복사꽃 지는 우물, 화정이었지만 이제는 배밭이 더 많아졌다. 물이 키운 과수원은 손쉽게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지하철이 화륵화륵 불을 달고 지나간다. 마음의 헛간에 걸려있던 꽃사자라는 이름의 삽이 으르렁대던 시절. 갈망이 컸던 만큼 쉽게 호르륵 마음을 태워버리곤 하던 꽃우물의 바닥에서 물이 겨우 찰랑찰랑거렸었다.
나는 드디어 그곳에 도착한다. 뿔뿔이 흐르던 물이 그곳 우물에 모여든다는 합정이라는 역. '위장된 축복'처럼 나는 매일 7번 출구를 빠져나오며 어디선가 쫄쫄거리며 흐르는 물 소리를 듣곤 했다. '마침내'라는 그 냇물.
그곳의 당인리 화력발전소는 가끔 검은 축포를 터뜨리고 검은 화환덩이를 멀리 선유도에 걸어놓곤 했다. 그곳에서 나는 '고귀한 비참'을 맛보곤 했다. 물의 아코디언은 저혼자 울곤 했다. 빈 시간에는 인내의 근육을 키우려 혼자 철봉에 매달렸다.
합정은 내게 다채로운 물의 기호를 보여주곤 했다. 급식 알바들이 비닐에이프런을 두르고 긴 장화를 신고 살얼음이 낀 조그만 연못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며 한 발짝씩 걸어들어가는 걸 보았다. 위태롭게 균열이 퍼져가던 얼음의 표면과 튀어오르던 냉혹한 물방울들. 젖은 알바생의 가운이 급속도로 얼어붙으며 덜덜 떠는 풍경. 그 옆에는 노란 탱자나무가 한껏 가시를 키우고 있었다. 노랗게 물든 노스탤지어.
그곳에 치열한 물의 동료는 없었다. 서로를 데워주고 부추켜주고 돋아주는 물의 은근한 화력은 없었다. 물은 모이지 않고 뿔뿔이 흩어졌다. 바늘로 된 물의 책. 고갈되고 소진된 합정이라는 이름만 남은 우물. 죽은 추억이 보내온 물의 엽서 같은 열차를 타고 치륵치륵 합정역에 도착하네.
활짝 날개를 폈던 공작은 다시 날개를 접는다. 한 순간 날개였던 것은 무거운 꼬리가 된다. 그 꼬리를 끌고 공작이 왔다갔다 한다. 사육장에 반복적으로 그어진 무의미한 물의 기호 같은 빗금과 줄들. 그러다 풀쩍 횃대에 뛰오른다. 발가락을 감고 눈동자를 두릿거린다.
어느날 보았다. 쇼윈도에는 '캄파뇽'이라는 십자형 칼집이 나있는 빵. 서로 마음의 결을 나누고 치열하게 논쟁하며 서로에게 구원처럼 던져주곤 하던 우물에 두레박. 눈빛의 교차만으로도 불가능의 가능을 꿈꿨던 그 시절.
이제 나는 슬픔에 침수된 재해지의 마른 우물. '동료'라는 아름다운 이름은 '캄파뇽'이라는 프랑스 빵에만 남아 있다. 불행하게도.
나는 그래도 그곳에서 듣곤 했던 영혼의 음악같은 웃음 소리, 물의 아코디언 소리를 잊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갈망이 넘치던 시절의 '고귀한 비참.'
운정과 화정을 거쳐, 합정에서 수 천개의 계단을 매일 뛰어오르며 직장 생활을 했구나. 그래도 나는 세 채의 우물을 가졌던 물의 부호였구나.
*갈망에 대하여 : 미니어처, 거대한 것, 기념품, 수집품에 대한 이야기
수잔 스튜어트 저 / 박경선 역 | 산처럼 |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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