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
진눈깨비가 복사뼈에 붐비는 날, 뚝뚝 떨어져 있던 외로운 행성들이 아이 추워, 하면서 무릎을 붙이고 바짝 다가앉는 날.
애기 엄마는 아기의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을 찾으러 간다. 흘려버린 양말을, 하얀 마스크를. 보랏빛 목도리를, 장갑을.
(정교한 체 하나를 머리에 이고 홍옥수를 캐러가듯, 슬픔의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황새냉이 그 하얀 뿌리를 솎으러 가듯.)
진눈깨비, 진눈깨비, 진눈깨비. 오늘 같은 날엔, 다른 우산 속에 다른 젖은 어깨 속에 '무임승차'를 허락할 게요. 위선자도 아첨쟁이도 영혼의 독재자도 같이 우산을 나눠 쓰기로 해요.
이런 날에는 진눈깨비 대신 세상에 하나뿐인 '빛의 눈썹' 축제에 가요. 환각의 눈구덩이 속에 눈의 고고학자가 되어 빛을 채굴하러요.
등이 구부러진 할머니들이 빛의 목도리를 짜구요. 빛의 휠체어를 굴리며 까르르 웃구요.
그곳에는 붉은 찌르레기가 태양을 찌른다. 빛의 망치를 들고, 빛의 물푸레나무 자귀를 들고 사람들이 빛의 얼음을 캔다.
너무 등이 시려 배가 고프면, 채광이 잘 되는 '빛의 무료급식소'에 간다. 달의 분화구 같은 보글보글 끓는 하얀 '허기' 한 그릇 받으러.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도 그곳에 줄을 서서 기다린다. 모자를 쓰고 긴 장갑을 끼고 '사소한 공지사항' 같은 낡은 외투를 걸치고.
환풍기가 돌 때마다 죽 냄새가 빛의 호른처럼 흐른다. 세상을 창조할 때 첫번째 흘러나온 강에서 나온 '브롤라'라는 향료처럼 세상에 퍼져나간다. 후루룩 마신다. 쩝쩝거리며 진눈깨비들이 세상을 곤죽으로 만들기 전 한 대접.
눈썹에 진눈깨비가 반짝이며 매달린다. 얼어붙은 분수가 다시 빛의 포말을 흩는다.
지나가던 행인이 주워, 이걸 어떻게 하나 잠시 망설이며, 분수 난간에 걸어둔 모자를, 목도리를 채굴한다. '비천하고 다정한 발굴의 고고학.'
그곳에서 쉼보르스카는 외친다. '네게 남겨줄게.' '이 아무것도 아닌 무를 가지고 숲과 도로와 비행장을 만들어.'
이 아무것도 아닌 '진눈깨비'를 가지고 빛의 승강장을, 빛의 미끄럼틀을, 빛의 무료급식소를, 빛의 요양원을 지었다 허무네.
진눈깨비 내리는 날, 보풀이 데글데글한 보랏빛 목도리를 잃어버리고 왔던 길을 되짚어 가네. 갈대 덤불에도 '빛의 가막살나무'에도 없네. 건너오던 빛의 가교에도 빛의 환청백화점에도 없네.
그 길에 아기가 흘리고 간 쪼그만 마스크 하나를 보네. 분수대 옆에 떨어진 그 마스크를 누가 밟을세라, 진눈깨비 바람이 다른 곳에 가져갈세라, 분수대 난간에 걸어놓네.
아주 멀리서 이걸 '타르쵸' 삼아 가던 길을 되짚어 온 애기엄마가 '아이쿠, 여기 있어 다행이야 반가워', 유모차 바퀴를 초고속으로 굴려와 가져가기를.
아기의 맑은 콧물과 입김이 다시 촛불처럼 환하길. 하얀 양초, 양피지가 생각나는 아주 작은 마스크.
애기엄마의 눈썹에 빛이 환히 켜지고, 진눈깨비는 다시 빛의 비행장이 되고, 쉼보르스카는 이런 '비열함과 다정함을 되살리고', '부서진 '기억의 집'을 다시 복구'하도록, 빛의 얼어붙은 분수대에서 애기새처럼 짹짹거리네.
진눈깨비는 아끼는 보랏빛 목도리를 잃어버린 대신, 이 '쪼그맣고 극도로 하얀 마스크'를 보게 하네. 더할 수 없이 '다정한 고고학.' 이 빛의 곡괭이 하나가 발견한 이 어리숙하며 보잘것없지만 '비열하고 다정한 고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