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 있는 좋은 교사를 마음에 새기며 시작한 교직 생활에서 행운이 보태지며 좋은 제자들을 만났다. 떠나보낸 제자들의 마음으로 전해진 감사가 이어지며, 30여 년을 좋은 선생님으로 살아올 수 있었다. 그 시간의 기억에 깊이 감사한다.
유년기 외조부에게 한학을 배운 그 시절에 접했던 먹의 향이 마음 한 곳에 좋은 느낌으로 자리했다. 어떤 글을 썼는지 기억은 없다. 대학 진학 후 일주일에 한두 번 붓을 잡았다. 서예 교본의 도움을 받아 주로 <맹자>와 <명심보감>에 있는 한자를 썼다. 세월이 흘러 제자들에게 들려 줄 선물로 <창업>을 집필하면서 좋은 글을 좋은 글씨로 쓰고 싶었다. 좋은 글은 그간 교직 생활을 통해서 만들거나 모아왔다. 퇴직을 5년 앞둔 시점에서 서예를 제대로 배울 결심을 했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서예 교습소인 <붓 이야기>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하시고 오랜 내공을 기반으로 서예 교육을 하시는 참된 선생님이다. 배려와 소통이 함께 하는 따뜻한 공간, 늘 진심으로 대하며 정성을 다해 지도해 주셨다. 2021년 봄부터 매주 두 번씩, 두 시간씩 서예에 푹 빠질 수 있었다. 덕분에 전지에 좋은 글을 담아 장학회 행사 때 내걸 수 있었고, 교실에 좋은 글을 써서 게시했고, 몇 간 제자들에게 작품을 선물할 수 있었다. 배움이 보태질수록 서예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는데 그게 매력이다.새로운 시작점을 제대로 만들어주신 선생님께 감사한다.
그간의 교육 활동에 큰 도움을 주었던 책들을 소개한다. 서점과 도서관에서 접한 책 안에서 좋은 구절을 수첩에 담아왔다. 책 이름을 모두 챙기진 못했다. 좋은 책을 세상에 내준 분들께 감사한다.
• <맹자집주>, 명문당, 1983
• <주주맹자>, 김동길ㆍ허호구, 창지사, 1994
• <맹자강설>, 이기동,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4
• <맹자>, 김원중 역, 휴머니스트, 2021
• <이천승 교수가 읽어주는 맹자>, 이천승, 파라아카데미, 2022
• <EBS 공부의 왕도>, EBS 제작팀, 2010
• <공부의 본질>, 이운규, 빅피시, 2021
• <나는 오늘도 나를 응원한다>, 마리사 피어, 이수경 옮김, 비즈니스 북스, 2011
•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윌리엄 데이먼, 정창우ㆍ한혜민 옮김, 한국경제신문, 2012
•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쑤린, 원녕경 옮김, 다연, 2015
• <자존감의 여섯 기둥>, 너새니얼 브랜든, 김세진 옮김, 교양인, 2015
• <인생을 바꾸는 90초>, 조앤 I. 로젠버그, 박선령 옮김, 한국경제신문, 2020
•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스티븐 코비, 김경섭 옮김, 김영사, 2023
공감하고 감명받은 구절을 모으고 수시로 학생들에게 들려주다 보면, 내 것처럼 마음에 담게 되고 내 생각과 행동의 변화로도 이어진다.
좋은 책을 읽음으로 지식과 지혜가 쌓이고, 소통 능력과 논리적 사고의 확장, 생각의 깊이가 더해지며 사람과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갖게 된다. 큰 인연으로 만난 좋은 책을 만들어 준 작가들에게 감사한다.
방학이 끝나고 다시 수업이다. 수업 시간은 늘 기분이 좋다. 담임이 없는 학교생활은 아주 여유롭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다. 수업 시작 3분 전에 교무실을 나선다. 종치기 전에 교실에 들어선다. 분위기를 환기시킨 후에 수업 시작 5분 동안 몇 명을 지목해서 지난 시간 수업 내용을 질문한다. 수업에서 배운 내용은 자기 정리를 당부했다. 누군가의 이름이 불리워지기 전의 긴장과 정적을 즐긴다. 발표 결과는 수첩에 기록한다. 모아서 학기 말에 교과 세부능력 평가에 반영한다.
학습된 내용을 자기 생각을 보태 설득력 있게 발표하는 경험이 대학 입시 수시 전형의 면접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는 제자들도 다수 있었다. 역사는 흐름으로 연결되는 이야기여서 지난 학습 내용이 제대로 정리되면 본 수업 학습에 동기부여로 작용한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집중하는 학생들과 눈을 마주하며 수업을 할 수 있는 것은 교사의 가장 큰 행복이다.
최근 수업 내용 중에 미국 내 한국인을 훈련하여 한반도에 침투시키고자 계획되었던 냅코 작전이 있다. 이와 관련된 교과서 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국 특수 공작기관이 1944년 말부터 1945년에 걸쳐 목숨을 건 한인 공작원들을 한반도에 침투시켜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작전이다. 한국인 중에 영어, 일본어, 한국어에 능통하고 독립 정신과 애국심이 투철한 사람을 모아 강도 높은 훈련이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당시 기업을 운영하던 유일한은 제1조 조장으로 참여하였다. 유한양행 창업주인 그가 죽고 20년 뒤에 그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가 아들에게 ‘너는 대학까지 졸업했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라’는 유언과 ‘나의 전 재산을 교육하는 데에다가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유언에 따라 전 재산을 사회와 교육에 기증했다. 그의 뜻을 받든 유한재단이 지원한 장학금은 260억 원에 이른다.
역사 속엔 울림을 주는 의미 있는 삶을 산 위인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음도 기쁨이다. 일단 소개하면 관심 있는 학생들은 빠른 인터넷 검색을 통해 더 많은 사실을 챙긴다. 그중에 하나가 동기 부여로 작용할 수 있다.
교육의 힘을 믿는다. 교육은 사람을 바꾸고 세상의 변화를 이끈다.
교직에 몸 담고,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교직을 시작하는 후배 교사들에게 그간의 경험은 아낌없이 준다. 간혹 이건 정말 하고 싶은데 학생들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걸 만들려면 가장 먼저 마음을 주어야 하고 믿음을 줄 만큼 능력을 갖춰야 한다.
모든 것은 마음만 먹고 노력하면 이룰수 있는 일이다. 물론 운도 좋아야 한다. 그것도 진심어린 노력으로 이룰 수 있다.
그간의 교육 활동을 소신 있게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 준 모든 소중한 인연이 고맙다. 살면서 가장 큰 행운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그 행운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