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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일엔 이가체프 Jun 25. 2016

봄과 함께 시작된 것

봄이 왔을 때,

 어김없이 봄이 왔을 때, 어김없이 나는 또 텃밭을 일궜다. 텃밭이라고 하자니 부끄러운 공간이지만 베란다 한 켠에 작은 텃밭이 있다. 스티로폼 박스와 화분들로 꾸민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그곳에는 결코 작지 않은 세계가 있다. 그 작은 공간에서는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는 매우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난다.


 텃밭 채소를 키우고 가꾼 지는 올해로 4년째가 됐다. 시작은 사소했다. 봄 무렵이면 시청광장에서는 각종 모종들을 파는 장터 같은 것이 열리곤 했는데,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에 하나 둘씩 데려와 심기 시작했더니 어느 순간 화분이 부족했고, 화분을 늘리면 이번에는 화분이 남는다고 모종을 사들이고, 이런 굴레를 거듭하면서 나의 작은 텃밭이 꾸려졌다. 텃밭을 가꾸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업무를 벗어난 취미생활의 활력을 좋아하던 나에게 또 하나의 취미로 시작된 일이었고, 요리를 좋아하는 탓에 식용 식물을 심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식물들의 신비로운 움직임이 내 마음에 변화를 일으켰다.


 나의 첫 재배는 루꼴라와 이탈리안 파슬리로 시작됐다. 시작이 중요한 이유가 이런 걸까. 나의 첫 재배는 고맙게도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그 좋은 시작은 그것을 계속해나가는 데 매우 좋은 원동력이 되었다. 이 두 종의 식물이 고맙게도 너무 잘 자라주었고, 서툴기만 한 초보자에게 농부의 보람을 안겨준 덕분에 재미가 생겼다. 그렇게 어느날엔 화분을, 어느날엔 흙을 사며 나의 퇴근길은 도시농부의 발걸음으로 활기차 있었다. 그리고 급기야 도시농업 과정을 신청해서 듣고 있는 나를 보며 동료들은 이러다가 귀농하는 거 아니냐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처음이라는 것은 늘 시행착오라는 경험을 준다. 그리고 경험이라는 것은 가장 효율 높은 학습이 된다. 물론 아직 서툰 것 투성이지만 처음 텃밭을 가꾸면서는 지금보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식물이 웃자라거나 힘이 없어 비실거리는 줄기를 바라보며 마음 졸이기 일쑤에 각종 벌레의 습격을 받아 눈물을 머금고 줄기를 잘라버려야 할 때도 많았다. 물론 지금이라고 이런 습격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건 아니다. 다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대책과 예방법을 알아가는 중이다. 흙의 상태는 항상 다르고 날씨 또한 매번 바뀐다. 같은 땅에서 태어난 같은 식물이라고 똑같은 모양으로 뿌리를 내리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환경의 변화와 얼마나 많은 생명체의 습성을 겪어내며 배워야 할까. 이렇게 작은 텃밭을 가꾸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겪어보니 농지의 생명들을 가꾸는 농부의 손길에 경외심이 들곤 한다.



 텃밭을 가꾸는 일은 매력적이다. 생명체를 다룬다는 것, 하나의 세계를 들여다본다는 것, 그 세계의 환경을 만들어간다는 것에는 신비한 기운이 있다. 씨앗과 모종을 심기 전에 흙을 일굴 때 손으로 흙을 만지고 있으면 뭔지 모르게 싱그러운 기분이 든다. 이렇게 흙을 맨손으로 만져본 게 언제였던가. 소꿉놀이를 하던 꼬맹이 때 이후로는 작정하고 흙을 만져본 적이 있던가. 물을 머금은 흙냄새와 손으로 두드리는 흙의 감촉이 좋은 순간을 느낄 때, 이런 걸 보면 역시 자연은 사람에게 안식을 주는 존재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텃밭을 가꾸며 오롯이 그것에 몰두하다 보면 마치 자연이 내게 일러주는 깨달음 같은 것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때때로 나를, 사람의 삶을 비추어주기도 한다.


 식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과잉'일 때 탈이 난다. 물을 너무 많이 주는 것, 해를 너무 많이 받는 것, 퇴비를 너무 많이 주는 것.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도 과잉이 되면 다양한 모양새로 탈이 나고 만다. 예를 들어 퇴비를 너무 많이 주면 식물이 스스로 하지 않아도 영양분을 받기 때문에 뿌리를 깊고 넓게 뻗지 않는다고 한다. 스스로 살아나려는 힘을 기르기 보다는 주입되는 영양분에 의지하게 된다는 얘기다.


 또한 살아있는 것들에게는 자생능력이 있다. 나는 이것이 매우 신비롭다. 사람도 동물도 그렇듯이 식물 또한 스스로 살아나가는 힘이 있다. 그래서 나는 좋은 조력자가 되어 주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변화를 살피고, 그들이 할 수 없는 것들을 지원해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잘 해주면 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까지 앞서서 해주는 것은 또하나의 과잉이 된다. 변화를 잘 살펴야 하지만 작은 변화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또한 좋은 것이 아니란 것도 배운다. 잎에 힘이 없다고 그때마다 영양제나 퇴비를 주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다.  풀 죽어 있던 잎과 빈약했던 줄기가 스스로 힘을 키우고 몸을 세우고 잎을 펼쳐내는 것을 본다. 처음 더딘 성장을 보였던 식물이 어느새 더욱 강하고 빠르게 커나가는 것도 본다. 생각할수록 참 신비로운 일이다. 이 작은 식물도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무던히 움직인다. 변화를 살피는 것은 중요하지만 가끔은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것이 식물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꼭 필요한 것을 꼭 필요한 때에 맞춰 줄 수 있는 농부의 노련함이 생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관찰과 노력이 필요할까.


 텃밭을 가꾸는 것은 나지만 사실 식물들은 스스로 해나가는 일들이 더욱 많다. 나는 터전을 마련하고 환경을 가꾸는 일을 한다. 적응과 생존은 그들의 몫이다. 그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식물들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우리의 몸보다 작고 작은 것이지만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력은 참으로 굳건하다.




 어느새 여름이 한창이다. 올 여름 그 작은 공간엔 또 어떤 새로운 일들이 일어날까.



* 사진은 베란다 텃밭과 수확한 식물로 담아낸 요리를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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