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영국스러운 말이 또 있을까? 내가 영국에서 배운 문화를 생각한다면 바로 이 한 문장으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직역하면 "삶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라는 것인데, 너무 매사에 진지하게 임하고 그로 인해 너무 상처 받지 말라는 것이다. 영국인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하루 7시간 정말 주어진 시간만큼 일하면 오후 5시 땡 종 치자마자 퇴근을 한 후, 펍에서 맥주 한잔을 하거나 가족들과 따뜻한 저녁을 먹는 삶.
한국 사람들은 참으로 "바쁘고, 열심히 일하며 그로 인해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영국 사람들은 직장 하나에 매달리는 워커홀릭들을 조금 한심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에, 직장에서도 일 하나가 잘못됐다고 우주 끝까지 따라올 것 같이 매섭게 질책하는 문화가 잘 없다. 그렇기에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정말 없다.
내가 직장을 잃었을 때, 나는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 이유는 내가 런던에 온 가장 큰 이유가 '직장'이라는 목표 때문이었고, 나는 프로덕트 디자인이라는 내 일을 굉장히 사랑하고, 또 열심히 했고, 커리어 야망도 크기 때문이다. 나의 자아는 "직장=나"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나와 같이 회사를 떠난 같은 영국인 동료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물론 이들도 힘들어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굳이 불필요하게 '이 직장을 잃은 이유가 나에게 있었다며 사유를 개인화하며 자책'을 한다거나, '직장을 잃어서 나는 무가치하다'라는 스스로에 대한 2차 가해가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나와 같이 회사에서 잘렸던 영국인 동료와 한 대화이다.
"(나) 요즘 너무 기분이 왔다 갔다 해. 나는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이 회사에 남아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동료) 나도 많이 실망했어. 그리고 나 또한 이런 결정들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건 없어. 내 예전 직장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우리가 이걸 막을 수 있었거나 미리 알 수 있었던 게 아니잖아.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야.
참 힘든 지난 몇 달이었지만, 나는 모든 회사가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해.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자."
"(나) 그래도 이런 해고가 언젠가 일어날 수 있고 내가 막을 수 없다면, 그럼 누가 회사에서 충성을 다하려 하고 어떻게 동기부여가 돼서 일할 수 있겠어? 나는 지금 새로운 직장을 찾고 싶은 마음이 전혀 안 들어."
"(동료) 맞아, 네가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 진짜로 동기부여받기 힘든 환경이야. 그런데 이게 우리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정말 중요해. 우리가 진짜 엄청나게 대단한 성과를 냈었어도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다는 거야.
너무 이 상처를 깊게 받아들이지 마. 정말 중요한 건 이 일이 너라는 사람에게 너무 큰 영향을 주거나 너라는 사람을 정의하게 만들지 말고, 떨치고 일어나 성공을 하는 것. 나는 그게 진짜 승리(that's the real win)라 생각해."
"(나) 그래도 아직도 나는 그 디렉터가 나와 마지막 미팅을 했을 때 했던 말들이 신경 쓰여. 내가 회사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결정이 있었기에 내가 해고 리스트에 올라갔다고 했어."
"(동료) 맞아, 그 사람은 그렇게 말했을 거야. 근데 나는 정말 네가 잘리게 된 것이 네가 회사에서 한 노력이나 너의 성과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100% 믿어. 그 디렉터는 어쨌든 너를 내보내겠다는 선택을 했지만, 나는 그게 뭐 대단한 일 (doesn't mean a great deal)이라 생각하지 않아. 그 사람은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 그 사람이 하는 말에 너무 아파하지 마."
지금 이 메시지들을 다시 읽어보니 이 동료는 나보다 한 살 어리고, 자신도 나와 같이 잘리는 신세였는데 오히려 나를 어른스럽게 위로해줬던 것 같다. (실제로 우리 둘 다 3-4개월 후에 나는 영국에서 top 10 안에 드는 은행에, 이 친구는 영국 정부 쪽으로 취직이 되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회사에서 나보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어떤 결정을 했다고 해서, 그걸 나라는 사람의 가치와 동일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 = 일을 열심히 했고 충분히 노력을 했음
회사에서의 디렉터가 생각하는 나 = 회사에서 그다지 필요한 인력이라 생각하지 않았음
이 두 가지 결정이 충돌할 때, 나는 '회사에서 디렉터가 생각하는 나'에 초점을 뒀던 반면, 이 동료는 '내가 생각하는 나'에 더 초점을 두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이 일을 열심히 했고,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건 그걸로 된 것이다.
이 동료는 애초부터 이 디렉터의 의사결정 방식이 정당하다거나,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나라는 사람의 가치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직장이라는 것은 하루의 3분의 1이라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고, 매달 월세와 각종 전기 고지서들을 낼 수 있는 중요한 수입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라는 자아는 오로지 직장 한 가지로 이뤄질 필요가 없다.
나는 직장이 없어도 나 자체를 사랑해주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있고, 직장을 잃은 후 스스로 목표를 세워서 그걸 이루어 나가는 끈기와 집념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걸 해냈다. 그리고 주말에는 운동을 하거나 나들이를 가며 혼자 사는 법도 알고 있다.
나를 사랑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내가 이런 멋진 직장을 다녀서, 이렇게 너무나 많은 성취를 했고 주변에서 인정을 받아서..라고 생각한다면 그 직장이라는 것에 변화가 생기거나, 직장에서 타인이 나를 다르게 평가할 때 나의 자아 자체가 흔들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직장이 없는 나는 뭘 좋아하고 어떨 때 행복을 느끼며 어떻게 삶을 가꾸어 가는가? 나는 나 자체로 참 가치 있고 사랑받기 충분한 사람이다. 항상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