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안 읽기

by 권이은

요즘 글 없는 그림책이 정말 많이 나오고 있지요. 교육 방송에서 아이들의 리터러시(문식성, 문해력 모두 literacy를 번역한 것입니다*) 능력을 키워주는데 좋다고 하며 소개해주기도 하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글 없는 그림책 중에서 데이비드 위즈너의 <시간 상자>, <이봐요 까망 씨>를 좋아합니다.

글 없는 그림책이니 유아들도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다고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답니다.



그림을 읽자


글 없는 그림책은 말 그대로 글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글로 전달하지 않고 오직 그림으로만 전달합니다. 그래서 글 깨치기를 하지 못한 아이도 혼자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지요.


앞서 말한 것처럼 글 없는 그림책은 글이 없기 때문에 문자 해독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죠. 그러니 이해하기에 쉬울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글이 주는 명확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매우 꼼꼼하게 그림을 읽어야 내용 이해가 가능하지요. 독자는 그림책의 그림을 열심히 읽으며 이야기를 만들어야 겨우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답니다.



왜 읽어야 해요?


이미 성인인, 저같이 독서를 글자 읽기로 생각해온 부모들에게 글 없는 그림책은 매우 난감한 존재입니다. 글 없는 그림책을 아이와 어떻게 읽어야 할지 감이 오질 않는다고들 하시지요. 특히 책을 읽어 줄 때 그림책의 글자를 중심으로 읽어주는 습관을 유지해오셨다면 더욱 그럴 거예요. 솔직히 저도 처음 글 없는 그림책을 만났을 때, 도대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주어야 할지 참 어렵더라고요. 이미 문자 읽기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익숙한 독서 방법 때문에, 책을 읽어준다는 것을 글을 읽어주는 것과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글자도 없는데, 독서와 무슨 상관인지, 도대체 글 없는 그림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실 것 같아요. 이유가 정말 많지만, 그중에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게요.


첫째, 문자에 얽매이지 않는 책 읽기를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읽는 수많은 글들은 사실 글로만 이루어진 경우가 드물어요. 그림, 글, 영상, 소리 등 다양한 ‘양식’들이 모여서 하나의 글을 이루고 있답니다.


예를 한 가지 들어볼게요. 이번 주말, 아이와 함께 여행을 가기 위해 정보를 검색한다고 생각해볼게요. (지금 한 번 여행지를 검색해보셔도 좋아요.) 여행 블로그의 글을 열었다고 상상해보세요. 글자만 읽고 계신가요? 아니지요. 사진, 글, 그림, 영상 등 다양한 정보를 골고루 보실 거예요. 여행지 사진도 보고, 여행지의 위치가 나오는 그림 지도도 보고, 현장의 멋진 장소를 찍은 영상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요즘 시대의 글을 한 편 다 읽었다고 말하려면 글자만 읽어서는 안 되는 시대가 되었지요. 이러한 글의 종류를 복합양식 텍스트, 이러한 글 읽기 능력을 복합양식 문식성(멀티모덜 리터러시) 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따라서 전 세계적인 독서 평가인 PISA에서도 전격적으로 온라인 읽기 평가를 도입하고 있어요. 온라인 읽기 평가 문항을 살펴보면, 대부분 글과 그림(사진)으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 수능의 국어 문항도 그림(사진)과 표가 상당히 많아져서 그것들을 읽어내지 못하면 내용 이해가 어렵게 구성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그림책을 통해 그림 읽기를 연습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요? 문자에 얽매이지 않는 책 읽기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둘째, 말하기 능력을 키워주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부모님의 읽어주기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그림책을 읽을 때보다 아이의 발화량이 월등하게 많아져요.


셋째, 가장 중요한 점이죠. 이야기 이해 능력을 길러준다는 점입니다. 이야기 구조와 줄거리 이해를 위해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 구성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 이해 능력 기르기에 무척 도움이 됩니다.



어떻게 읽어야 하죠?


그림 읽기도 가르치고 배워야 더 잘할 수 있어요. 그림 읽기를 뭘 가르칠 것이 있을까 싶으실 거예요. 하지만 막상 부모님들께서 글 없는 그림책을 읽어보시면, 왜 그림 읽기를 배워야 하는지 알게 되실 겁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문자 중심으로 책을 읽어 온 성인에게는 글 없는 그림책이 생각보다 어렵거든요.


아이와 함께 글 없는 그림책을 읽을 때, 아이와 함께 한 장면 한 장면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 이해가 잘 안 되더라도 끝까지 훑어보고 다시 읽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이지요.


아이와 함께 그림을 보면서 인물(누가 나왔는지), 사건(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을 함께 이야기 나누시면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가장 좋은 방법은 (조금 번거롭지만) 읽어주는 사람이 먼저 이 그림책을 꼼꼼하게 읽고, 작가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의 흐름 안에서 인물들의 대화와 생각을 추론할 수 있도록 아이의 읽기를 가이드해주는 것이 좋답니다. 글 없는 그림책으로 아이와 함께 다양한 대화를 나누어 보세요.



*리터러시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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