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전부 같이 나온 경준이란 친구가 있다. 경준이의 집은 우성 보라라는 우리동네에서 가장 좋은 아파트로 삼익타워인 우리집과는 걸어서 3분 거리였다.
우리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BB탄 총을 사서 놀거나, 피구를 하곤 했다. 50원짜리 떡볶이를 사먹거나, 불량식품을 구하러 옆 동네까지 갔다가 무서운 형들에게 삥을 뜯기기도 했고 장수 풍뎅이를 잡는다며 설치다 사마귀에게 물려 같이 고생했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우리는 학원을 3개나 같이 다니며 하루종일 붙어있었고 서로의 물건이나 용돈을 거의 공유하다시피 했다. 당시 내 용돈은 일주일에 5천원 정도였는데 경준인 항상 그 4-5배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오락실을 가고, 군것질을 할때, 드래곤 볼이나 슬램덩크를 살때 경준이는 언제나 아낌없이 자기 돈을 보태주었다.
경준이는 우리동네에서 유일하게 486 컴퓨터와 슈퍼패미컴을 가지고 있었으며, 매일같이 내가 자기방에서 주인행세를 해도, 만화책을 몇권이나 빌려가서 잃어버려도 '다 본건데 뭐'라며 화 한번 낸적이 없었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내몫의 계산을 할때면 항상
"저번에 너가 3천원 빌려준거 있으니 이걸로 갚을게"라고 해서, 몇번은 정말 내가 돈을 빌려줬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럴리가 없는데도.
고등학교 3학년 봄, IMF 탓에 나는 학원비는 커녕 참고서를 살돈도 없었다. 내가 학원을 못나온지 몇달이 지나자 경준이는 나를 집으로 불러 '엄마가 문제집을 너무 많이 사놔서 죽겠다, 좀 가지가라' 라며 수십권의 참고서와 문제집을 버리는 척 넘겨주었다.
스무살이 되던 해 나는 연대, 경준이는 건대로 대학을 왔고 그이후 우리는 아쉽게도 예전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하게 되었다. 각자의 공부에 연애에, 다른 사정으로 바빴던 탓이리라.
학창시절을 생각할때면 나는 항상
어떤 부채감과 고마움.
별거 아니라며 멋적게 웃던 그의 표정이 떠오른다.
단 한번도 우쭐거리거나 잘난 척하지 않고, 내 자존심이 다치지 않는 범위에서 나를 챙겨주곤 했다.
2016년 겨울 나는 그에게 얼마간의 보답을 할수 있었다. 경준이의 어머니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셨고 무사히 퇴원하셨다. 막상 별로 해준것도 없는데, 아직까지 고마워하는 경준이를 보며 생각한다.
10분의 1만큼도 돌려준것이 없는데.
경준이 외에도 나는 참 좋은 친구들 속에서 살아왔다.
공부를 곧잘했던 것을 빼면 특별할 것도, 잘난것도 없는 나를 친구들은 항상 응원해줬고 자랑스러워해주었다.
아직 미혼에, 특별히 남들보다 많은 것을 이룬 것도 아닌 내가 아직도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마 그들의 덕이리라.
앞으로도 조금이나마 보답할수 있는 삶이기를.
내가 받은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부디 허락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