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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박종석 May 04. 2018

그와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

우리 서로 2주만 시간을 갖자(3)

그가 말했다.

같이 살고 싶다고 결혼하자고


이 남자는 정말 진심일까, 믿을 수 있을까

충분히 의지가 되고 안정적인 사람일까


그의 고백과 나의 대답 사이,

고민과 당혹감, 망설임이 만든 시간의 여운이 그를 불안케 했다.


너는 아마 일말의 망설임없이 그말을 꺼냈겠지.

그리고 나도 행복한 얼굴로, 그말만을 기다려 왔다는 표정으로 '예스'라고 답할줄 알았을거야


미안해

지금 이순간 나는 사랑이나 애틋함보다.

34살에 만년 대리인 너와 카드값, 보험료

월세방에 살면서도 차를 바꾸고 싶어하는 너의 투정이 떠올라.


"나는 너만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없어"

23살이었다면, 29살의 나였다면

그말에 모든 걸 맡기고 네 품에 안겼겠지.


우린 서로의 첫사랑이니까.

소울 메이트였고. 베프였으니까.

제주도. 일본. 뉴욕,,,모든게 처음이었고 모든게 너와 함께였어.


우리가 같이 간 맛집만 표시해도 서울 지도를 그릴 수 있을 만큼. 함께 본 영화만 대체 몇백편인지 모를만큼.  

나를 여자로, 어른으로 만들어준 너이니까.


사랑밖에 모르는 너와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는 나.

우리는 이제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걸까.


"내가 부족해?"

아니

"결국 조건 좋은 남자가 더 좋다는 거니?"

아니

"다른 사람 만나서 더 행복해질 수 있어?"

아니, 모르겠어.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것일까.

알고 있다.

그의 목소리, 까맣고 여자같이 예쁜 눈.
입술과 표정에서 모든 것이 진심이라는 것을.


나를 평생 사랑해줄 누군가에 아마 가장 근접한 사람이라는 걸. 34살의 나는 아마 다시는 이런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왜 그럼에도 나는
너의손을 잡지 못하는 것일까.


너와 처음 밤을 새던 날이 기억나.

너무 가까이 하루종일 붙어 있을 걱정에,

화장을 몇번이나 화장실에서 고치고

배에서 소리가 날까봐 힘을 얼마나 주고 있었던지.

혹시 코를 골까봐 4시까지 안자고 양을 세다 기절했던.

새벽 4시까지 나를 토닥이고 안아주기만 했던 그날이 생각나.


지금은 달라.

너와 주말에 밤늦게까지 있으면 다음날 출근할 걱정에 불안해.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다 보면 승진시험, 이직 걱정에 마음이 무거워

드라마를 봐도 아니 내 친구들만 봐도

다 나보다 훨씬 행복해보여.

나는 이렇게 불안한데,

너는 어떻게 다 잘될거란 말만 하는건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건지.


그말을 믿고 싶어.

나도 너를 믿고 싶어.

우리의 결말이 노트북이나 러브 액추럴리, 어바웃 타임처럼 행복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어.


민석아.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현실적이고 냉정해지려는 내가 이젠 싫어졌을까.

 

만나고 헤어지는 시점은 누가 정하는걸까.

A와 B의 인연은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라고 누가 말해준다면 차라리 나을텐데

이렇게 두렵고 아프지 않을텐데.


그립고 손을 놓지 못해 차마, 두려운 밤

몇시간동안인지 모를 눈물을 흘리고난 나는

그와 헤어지는 쪽으로 마음을 조금씩 굳혀가려 한다.


나의 이기심을.

두려워 도망치는 나를

부디 너무 많이 미워하지 말았으면.


어쩌면 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꼭 붙잡고 감싸안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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