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순응
사람들은 큰 병이나 사고를 당하면 처음엔
1) 아닐거야,,,설마,,,하며 부정합니다. 다른 병원을 찾아가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믿지 못하지요.
2)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일이? 도대체 왜?라며 화내고 소리지릅니다.
3) 하느님에게 한번만 봐주시면 정말 착하게 살겠다며 타협을 시도합니다. 새벽기도나 절에 가서 108배를 하고 안하던 기부를 시작하죠.
4) 무슨 수를 써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때쯤엔 우울해집니다. 다 필요없다, 난 끝났다,,,,,돈도 친구도 가족도 소용이 없습니다.
5) 5단계 순응에 이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죽음 바로 직전에서야 이를 겨우, 가까스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어쩌면 이별에도 이것을 적용할수 있다고 봅니다
1) 아니야, 그사람은 다시 돌아올거야,,,우린 이렇게 쉽게 헤어질 인연이 아냐.
2)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그러는 넌?, 실수안하는 사람이 어딨어? 단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라며 오히려 화를 내기도 하죠.
3) 돌아와줘 정말 잘할게, 다시는 안 그럴게 라며 상대방을 설득합니다. 상처준 만큼 더 잘할게, 너가 원하는대로 다할거야.
4) 아무리 전화해도, 울면서 사정해도 그사람의 마음이 떠났구나 생각이 들면 우울해집니다.
그의 표정에서, 말투나 태도에서 느껴지죠. 카톡을 읽고 답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연락은 점점 줄어들고 짧아집니다. 자주 한숨을 쉬거나 피곤해합니다.
미안해, 요새 너무 바빠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지요.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이제 틀렸다, 돌이킬수 없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하기 싫어집니다.
5) 덤덤히 그 사람을 보내주는것. 이별을 받아들이고 좋은 추억으로 남기는 것. 내가 준 상처와 받은 상처를 수용하는 것.
죽음과 이별의 차이는 죽음은 한번으로 끝나지만 이별은 계속 반복된다는 것일겁니다.
그사람과 또 만나고 다시 이별할 수도, 그 과정을 다른 사람과 반복할 수도 있지요.
즉 이별은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순응의 영원한 회전목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더 괴롭고 힘든일이겠지요.
죽음과 마찬가지로 이별에서도 5단계에 도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내 아픔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데 초점을 맞추는것.
서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타이밍이 조금 맞지 않았을뿐이라고. 너무 좋아했지만 내가 조금 여유가 없었을 뿐이었다고.
너를 미워하지 않아, 원망하지 않아.
함께한 모든 순간이 행복했고 단지 그 기회가 더 주어지지 않음이 아쉽고 슬플뿐이라는 것을.
어쩌면 이별이야말로 내가 그사람을 얼마나 아끼고 존중했는지, 소중하게 배려했는지 보여줄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것을.
나의 아픔과 불안, 충동과 이기심 그 모든것을 넘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사람이 있었음을.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미워하지만 또 용서하고.
미숙함과 깨달음, 자기애와 사랑을 배워가는,
모든 이별은 끝이아니라 그 과정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