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신과 의사 박종석 Nov 30. 2022

구로동 주식 클럽

1화 : 주식 중독 클리닉

 

 준수는 서울특별시 구로동에서 주식 중독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정신과를 방문하는 이들이 으레 그렇듯 준수의 주식 중독 클리닉에도 행복한 일로 찾아오는 사람은 드물다. 클리닉에 온 이들은 대부분 주식투자로 큰 경제적 손실을 본 사람들이다. 하나같이 안색은 흙빛이고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준수는 가족들의 눈치를 보면서 쉽게 말을 떼지 못하는 것만 봐도 환자가 대충 얼마를 잃었는지 감을 잡았다.

준수는 ‘삼프로TV’와 KBS, YTN 뉴스에서 주식 우울증, 주식 중독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난 뒤로 서울에서 손꼽히게 많이 이 분야를 다루게 되었다. 2021년까지만 해도 주식 관련 환자는 하루 서너 명 수준이었으나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주식 우울증을 호소하며 클리닉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두 배 이상 늘었다. 2022년 6월부터는 하루에도 열 명 이상이 주식으로 인한 우울과 불안장애로 병원을 찾아왔다.


주식 때문에 정신과에 내원할 정도면 손실액이 수천만 원 이상은 기본이었고 근태 문제로 직장에서 해고당할 위기에 놓인 환자도 많았다. 공금을 횡령했거나 가족 명의의 아파트나 건물을 날리고 찾아온 경우, 파혼이나 이혼 혹은 부모나 형제와 의절을 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 사례도 있었다.



***



오늘의 환자는 서른세 살 B 씨와 그의 어머니다. B는 미혼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어렵게 들어간 중소기업을 3~4개월 만에 때려치우기를 반복하다 현재 전업으로 데이 트레이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평균적으로 1~2억 원 정도를 굴렸다고 한다.

B의 1주 차 상담 때 준수는 그에게도 이제까지 주식으로 정확히 얼마를 손해 봤는지 물었다. 그러자 B는 코웃음을 치며 이렇게 대답했다.

“에이, 그걸 다 어떻게 기억해요. 주식 하루 이틀 합니까? 하루에 2000만 원 먹은 날도 있고 3000만 원 날린 날도 있고 그렇죠, 뭐.”

이렇게 큰 손실을 보고도 B의 해마체에 기억이 듬성듬성 남아 있는 이유는 투자금을 땀 흘려 벌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어머니의 비상금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시시하다며 노량진에서 고시 낭인 생활을 5년 정도 하던 B는 협박에 가까운 설득으로 어머니에게 노후 자금 5000만 원을 받아냈다. 그 돈으로 스마트폰 케이스 쇼핑몰 사업을 시작했다 말아먹었다.

B의 2차 시도는 먹방 유튜버가 되는 것이었다. 어머니에게 다시 3000만 원을 빌려 전문 편집자를 뽑고 스튜디오도 대여했다. 이번엔 다를까 싶었으나 웬걸, 한 달에 올리는 영상이 한두 개 남짓이었다. 결국 3000만 원을 6개월 만에 모두 날렸다.

그러던 어느 날 2020년 말부터 갖고 있던 우량주가 40퍼센트 가까이 올랐다.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었지만 B와 그의 어머니에게는 불행의 씨앗이었다. B는 본인에게 대박 종목을 골라내는 비범한 재능이 있다고 착각했다. 2021년 6월 코스피가 3300을 넘기자 그는 어머니의 마지막 비상금 1억 2000만 원을 모두 뜯어내 주식에 올인했다.

당시 B는 생각했다.

‘이제 나도 곧 서른세 살인데 삼성전자에 투자해서 언제 집 사고 언제 결혼하냐. 1억 2000만 원을 5억 원으로 만들 방법은 없을까?’

B의 고민을 들은 친구 중 한 명이 미국 주식을 추천했다.

“천조국 주식은 아예 딴 세상이야! 상한선이 없어서 하루에 50퍼센트도 올라!”

B는 순간 여기다 싶었다. 주식 리딩방과 찌라시를 참고로 미국 주식 중에서도 변동성이 가장 큰 종목 몇 가지를 선택했다. 그렇게 고른 게 TQQQ, SOXL였다.

시작은 달콤했다. 나스닥은 2022년 1월 중순까지 미친 듯이 올랐다. B의 계좌 잔액은 1억 2000만 원에서 1억 6000만 원이 되었다. 두 달 만에 4000만 원을 번 것이다. B의 눈에 몇 년간 본 적 없었던 빛이 반짝였다. 그는 어머니에게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전세금 담보로 우리 2억 원만 더 대출받자. 진짜 인생 바꿀 수 있어.”


절대로 안 된다는 어머니와 멱살잡이까지 한 B는 결국 어머니의 인감을 뺏어 전세 대출을 1억 원 더 받았다. 2억 6000만 원의 자금이 모이자 B는 더 과감해졌다. 사실 그 안에 자기 자본은 하나도 없었고 가족 부채, 은행 부채뿐이었다. 하지만 B는 벌써 강남 아파트 열쇠가 눈에 아른거렸다. 친구들을 만나면 목소리가 커지고 씀씀이도 커졌다. 장이 열리지 않는 주말에는 외제 차 대리점을 기웃거리며 사장님, 대표님 소리에 취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TQQQ, SOXL은 순식간에 반토막이 났다. 금리가 인상되고 인플레이션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았다. 파월인지 뭔지가 텔레비전에 나와 알 수 없는 소리만 해댔다. B가 연준이 대체 뭐 하는 곳인지, 스태그플레이션이 뭔지 의아해하는 사이 2억 6000만 원이 순식간에 2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2주 만에 6000만 원이 날아간 것이다.

사실 최초 자금을 생각하면 B의 본전은 2억 2000만 원이었기 때문에 마이너스 2000만 원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하지만 초보 투자자에게는 제일 꼭대기의 계좌 잔액이 내 자산 규모였다. 내 돈 6000만 원이 2주 만에 증발했다고 생각한 B는 TQQQ보다 더 빨리 돈을 불릴 방법을 고민했다. 그렇게 드디어 선물옵션의 세계로 초대되었다.

2022년 2월 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 테마주가 기승을 부렸다. B는 당연히 여기에 동참했다. 이름 한 번 못 들어본 주식에 1000만 원, 또 다른 테마주에 1000만 원, 50배짜리 옵션에 300만 원, 10배짜리 옵션에 1000만 원, TQQQ에는 2000만 원… 1억 원이 그렇게 금방이었다. 한 방, 한 방만 걸려라. B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3월 중순 대선이 끝나고 전쟁은 더 심각해졌다. B의 선물옵션 계좌와 신용 미수를 끌어 쓴 레버리지 계좌는 대부분 청산을 당했다. 3주 전만 해도 2억 원이 있던 계좌에 달랑 2000만 원이 남았다. 그때라도 멈췄어야 했는데 불행하게도 B에게는 돈 나올 구멍이 아직 남아 있었다. 어머니의 아파트 전세금은 총 7억 원이었기 때문에 추가 대출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외동아들의 눈물을 뿌리칠 정도로 독하지 못했다.

B는 제1금융권과 제2금융권에서 각각 1억 원씩 전세금 담보 대출을 추가로 받았다. 다시 2억 2000만 원의 투자금을 만든 그는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승부다. 괜히 한국 주식에 기웃거리지 말고 미장에 올인하자. 아, 물론 알트코인도 조금 사야지.’

B는 2022년 3월 18일 2억 2000만 원 중 2억 원을 TQQQ에 올인했다. 한 주당 가격은 53달러였다. 3개월이 지난 6월 13일 TQQQ는 23달러까지 폭락했다. 수익률 마이너스 60퍼센트를 찍고 주식 계좌에 8000만 원밖에 남지 않았을 때 B는 어머니의 손에 끌려 준수의 병원에 방문하게 되었다.


***


과연 B의 투자 습관은 바뀔 수 있을까? 올인이 아닌 분산 투자를 해야 한다, 분할 매수와 장기 투자를 통해 인내심을 배워야 한다 같은 고지식한 말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의 욕망이 재미없고 지루한 정석 투자의 길을 참아낼 수 있을까?

준수는 B에게 절대로 추가 대출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 아니 애초에 초보자가 ‘빚투’ 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한참 설명했다. 리딩방, 찌라시를 보고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것, 재무제표를 보지 않고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도박이나 다름없다고 거듭 타일렀다. 주식 중독과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잘못된 투자 습관부터 바로잡아야 함을 수없이 강조했다.

B의 어머니는 상담 내내 눈물을 흘렸다. B도 준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꼭 쥐었다. 한 시간 동안 진심 어린 표정과 예의 바른 자세로 준수의 말을 경청하던 그가 말했다.

“선생님, 오늘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진짜 제가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그런데 저…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준수는 인자하게 웃으며 답했다.

“얼마든지요.”

B가 침을 꿀꺽 삼키고 목소리를 낮췄다.

“‘삼프로TV’도 나오시고 하셨던데… 어디서 좋은 정보 들으신 거 없습니까?”



***



“상처받은 개미들이여, 구주 클럽으로 오라!”

하이퍼리얼리즘 투자 픽션

<구로동 주식 클럽>

박종석 지음

12월 14일 출간 예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