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설명하고 싶은 사람들

by Silverback

남의 잘못된 점이나 흉이 될만한 것들을 찾아내어 말을 하는 것을 '험담(險談)'이라 한다. 험담이라는 것은 당사자를 제외시킨 채, 그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험담을 할 때에는 반드시 아주 정확한 기준과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사람을 헐뜯어야 하며, 사실적이고 정밀한 표현을 통하여 흉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험담이라는 비열한 행위에 그러한 노력이 가미될 리 만무하며 또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교회는 사람들이 타인을 헐뜯고 비방하기에 은근히 유리한 구조로 되어있다. 왜 그런고 하니, 교회라는 장소는 평소 속세의 거짓되고 영적으로 병든 생활을 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 나와서 경건한 마음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정신을 가다듬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극적인 장소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실제적인 모습과 느낌이 천국과 지옥, 즉 속세와 교회라는 두 영역에 걸쳐놓여 있어서 내가 평소에 잘 알던 사람이 갑자기 어색하도록 종교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교회에서 처음 본 사람이 일상생활 속에서 신앙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주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본 다양한 타인들이 다양하게 생각하고 사고하는 그 다양성의 드라마. 우리나라의 교회는 그래서 극적이고 역동적이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주일 오전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듣고, 찬송을 부르며 헌금을 내고 축복을 받고 돌아오면 되는 곳이다. 하지만, 교회는 교인들을 그렇게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교회는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주부들을 위주로 하여 여성 기도회, 구역예배, 전도활동 같은 모임을 만들어낸다. 시간이 남는 대학생이나 청년들을 위주로 하여 봉사활동이나 성가대나 기악부 같은 것을 조직한다. 어느 정도 직장과 지위를 가지고 있고, 헌금도 잘 내며 교회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남성들을 위주로 하여 안수집사, 집사, 구역장, 권사 같은 완장을 채워주며 그들만의 카테고리를 만들도록 한다. 돈이 많아서 교회를 건축하는 데에 많은 기여를 하고, 교회 운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을 받들어 장로, 원로 등의 뱃지도 달아준다. 이렇게 교회는 조직이 많고 가지가 무성한 테크트리가 존재하는 곳이라서, 많은 집단과 모임과 당파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들이 모여서 십 수가지 조직과 모임을 만들게 되면 말(言)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된다. 그 말이라는 것이 서로를 위해주고, 진리를 나누고, 천국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라면 참으로 좋겠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사람이 모이기만 하면 성경이나, 말씀, 날씨,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게 되는 듯하다. 그것도 자기 자신이나 대화의 상대방이 아닌, 제3자에 대한 험담이라는 것.


험담의 기본적 태생은, 인간들의 시기와 질투이다. 그래서 험담은 본질적으로 성경과는 정 반대에 있으며 오히려 악마의 영역에 가까운 것으로 봐야 한다. 누군가에 대해서 내가 잘 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내 머릿속에서 가지고 있는 것과, 그러한 타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제3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그 사람을 칭찬하건 욕하건 제3자를 타인에게 설명하는 행위 자체는 그다지 신뢰성이 없다. 수십 년간 같이 지내고 피를 나눈 형제 부모라 할지라도 서로서로 말하는 것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 가족들이 다 이해하고 안다고 할 수 없어서 자주 싸우고 다툼에도 불구하고, 하물며 내가 거의 얼굴도 본 적 없을뿐더러 대화 한두 마디 나누어본 사람에 대해서 타인에게 설명한다는 행위 자체가 대단히 위험하고 한심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신도의 1대 1 관계를 기본으로 한다. 집단으로 기도하면 더 많이 복을 받고, 혼자서 기도하면 기도빨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나 혼자서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는 것이지, 친구를 데려오면 구원이 십원이 되고 이십원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에 대한 평가나 이야기라는 것도, 내가 누군가가 궁금하면 그 사람을 1대 1로 직접 만나서 물어보고, 대화하고 오랫동안 서로 감정을 교류하면서 느끼고 알아가면서 판단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만일,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을 누군가가 내 앞에서 헐뜯고 비방하기 시작한다면, 그 자리를 마친 후 당사자에게 가서 겸손하고 진정성 있게 물어보고 답을 구하는 것이 최선이다. 또한 누군가에 대해서 내가 궁금증이 생기고 그 사람을 제대로 알아가고 싶다면, 절대로 타인을 통해서 엿듣지 말고 당사자와 자주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 오랜 시간을 두고 대화하면서 알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당사자에게 물어보기 껄끄러운 것이라고 해서, 당사자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해서 절대로 타인의 입과 귀를 통하여 정보를 접하면 안 된다. 내가 누구를 시켜서 무언가를 알아오라고 해서도 안되고,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타인을 조사해서도 안된다. 우리 누구나 마음속으로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라는 막연한 열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험담에 대한 성경의 무서운 경고를 몇 구절 올리면서, 이방인의 졸론을 마친다.


[잠언 16:28]

패려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장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잠언 18:8]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데로 내려가느니라


[잠언 20:19]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찌니라


[잠언 25:23]

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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