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에게 분노는 필요한가?

by Silverback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여타의 동물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느끼는 때가 생기는데, 그것은 어쩌면 성숙한 언어생활 및 그로 인한 사유의 정련(精鍊) 과정과 크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죽는 날까지 배우는 언어라는 것은 끝도 없이 넓고 무수한데, 인간의 감정을 언어로 모두 표현할 수 없는 한, 인간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그리고 보다 어른스럽고 세련된 삶을 향유하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자신의 언어생활과 그로 인한 올바른 사유의 방향을 가다듬고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


성경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인데,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과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통로를 예비해 두신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말(言)이라는 도구이고, 성경에서는 창세기 그 시작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는 - 곧 언어로 이 세상을 창조하는 과정이 간결하면서도 장엄하게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말(言)이라는 것은 신과 인간 사이에는 말할 필요도 없고, 인간과 인간에게 있어서 그만큼 막강한 힘과 권력과 상징을 가지는 가치이다. 그것은 입을 통해서 나오는 소리로 전달될 수도 있으며, 문자를 통해서 보이는 글의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 누군가의 감동적인 연설을 귀로 듣게 되는 경우에도 마음이 움직일 수 있고, 깊은 사유가 녹아들어 간 문서를 눈으로 읽게 되는 경우를 통해서도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것처럼 변화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말(言)'이라는 것은 위대하다. 하나님이 괜히 움직이기 귀찮고 도구를 만들기 싫기 때문에 말로 세계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말과 언어의 중요성을 알고 성경 또한 말과 언어로 만들어졌다는 근본 원리를 깨닫는다는 가정 하에, 적어도 신앙인이라면 함부로 방탕하게 언어생활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성경과 관련이 없었던 우리의 오랜 선조들조차, 언행을 삼가라는 지침을 생활 깊숙하게 뿌리내리고 살았으며, 인간의 올바른 삶을 위한 수행을 글로 쓰고 읽고 되뇌며 살아왔던 것이다.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참으로 여러 가지 방법과 훈련과정이 필요하지만 - 내가 생각하기에 -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지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큰 소리를 내거나 화를 내면서 말을 하지 않으며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표준어를 꾸준히 쓰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교과서적이고 따분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이 세상의 어떠한 음식도 달고 짜고 맵고 자극적인 것으로 인하여 당신의 건강을 오랫동안 유지시켜 주지 못함을 알고 있고, 이 세상의 어떠한 계절도 차갑고 뜨거움 만으로 당신을 일상을 편안하게 유지시켜 주지 못함을 알고 있으며, 이 세상의 어떠한 쾌락도 음란하고 저속하고 사악함으로 인하여 당신의 즐거움을 꾸준히 유지시켜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바, 우리가 일상에서 끊임없이 사용하는 이 말과 글이라는 것의 보편성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절대로 그것을 극과 극으로 치우치게 하여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정신과 사고를 온전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헤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슬픈 사실이라고 한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첨단 과학문명의 사이버 세상이라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의 얼굴을 가리도록 하고,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유장한 삶과 인생의 전후 문맥을 단절해버린 채 언제 어디에서부터 인지도 모르게 쌓였던 극도의 스트레스와 불안과 공포감을, 오로지 타이핑 텍스트라는 문자열 단락 속에다가 죄다 구겨 넣어 평생 얼굴 한 번 본 적 없었던 상대방에게 아무런 죄책감과 공감의식과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 무차별 적으로 적을 공격하듯 - 무심하게 배설해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아니던가.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 하나, 어느 포털사이트 카페 하나, 어느 인터넷 신문기사 하나 정제되고 다듬어져서 사람들로 하여금 푸릇한 채소를 씹는 듯한 신선함과 청량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기나 하다는 말인가.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전후 한국이 헝그리 세대였다면, 지금 21세기 한국은 앵그리 세대라는데, 듣고 보면 우리는 짧은 기간에 많은 변화와 성장을 겪다 보니 사람들 안에 쌓인 여러 가지 감정의 찌꺼기들과 의식의 부산물들이 제대로 발효되고 처리되지 못한 채, 온갖 비교문화,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 학벌주의 같은 것들이 돌연변이화 되어서 인간 개개인의 마음 속에 뜨겁고 위험한 응어리들을 만들어놓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많이 배웠다 하는 사람들 그 누구도 언어 하나하나에 칼날 같은 날카로움이 없는 사람이 없고, 어려서 잘 모른다 하는 어린아이들 그 누구도 언어 하나하나에 조롱과 체념이 없는 사람이 없는데, 이는 모두 사람들의 분노이고 원망이며 증오이면서도 악한 것이다.


사실, 인생을 어느 정도 살고 나서 연륜이 쌓이고 여러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의 경험도 추가되면,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이 얼마나 쓸데없는 것인지 알게 된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상대방을 화나지 않게 말을 할 수 있고, 나 스스로 화를 내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분노하는 자를 미련한 사람이라 칭한다. 어찌 보면 성경은 기독교나 불교 같은 종교와 상관없이 우리 삶의 곳곳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가치를 알려주는 상식적인 책이라고 봐야 할 수도 있다.


온갖 비속어와 조롱과 비방과 모함과 고함과 욕설이 난무하는 시대에,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무런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맑은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짧은 넋두리를 마친다.




[잠언 12:15-16]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잠언 14: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잠언 15:1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언 16:32]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19:11]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잠언 27:3]

돌은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아니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분노는 이 돌보다 무거우니라


[잠언 29:11]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 하느니라



이전 17화모여 살지말라는 충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