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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Jul 17. 2022

문장독본 / 미시마 유키오 / 1959

출판사 : 미행

  아리스토 텔레스의 시학을 읽는 기분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올해 초에 국내초판이 나온  같은데, 저번 주에 설레는 마음으로 구매하였다. 책을 집어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던가.  책은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정독으로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도중에 펼쳐볼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당대 일본 최고의 문장가였던 그의 명성대로 방대한 양의 고전과 작품 인용이 펼쳐진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그만큼 훌륭한 독서량도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또다시 목격하게 된다. 아주 작은 단어 하나하나, 어조 하나하나가 문장 전체의 느낌과 분위기를 바꾸어 놓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장의 성격이라는 것은 그 작은 문장의 모든 요소요소에서 활자와 획의 놀음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개인적으로 광팬인 레몽 라디게가 극진한 대접을 받아서 흥미로웠다. 스토리만 줄줄 따라가면서 읽었던 나의 독서습관은 이 시간 이후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사명을 받는다.


  일본어의 어순과 구조가 우리나라와 비슷하여, 중국이나 서양의 문체와 달리 쉽게 이해되고 전달되는 내용이 많다고 생각한다. 한국사람들이 일본 문학에서 감정의 이입을 잘 느끼고, 미묘한 언어 차이에 의한 정서 변화를 잘 감지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일본에서 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자결한 사람에 대한 접근에는 엄연한 벽이 있다. 이오덕 선생의 우리말 바로 쓰기 관련 책들은 언어의 근육을 키워주는 반면, 이러한 문장독본 같은 에세이는 언어의 유연성을 키워주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과 관련하여 인터넷 검색을 조금 해보니, 1934년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가장 먼저 문장독본을 출간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책은 엄청난 판매량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뒤이어 1950년, 가와바타 야스나리 또한 문장독본을 출간하였다. 그야말로 문장독본의 시대였던 것 같다. 미시카 유키오의 문장독본은 1959년 출간되었으며, 이 분위기 때문에 유명한 작가들의 '문장독본'은 하나의 장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소설에서 대화란 큰 파도가 부서질 때 일어나는 하얀 물보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지문은 파도인데 앞바다에서 천천히 굽이쳐 들어와 뭍에서 부서지는 것처럼 더는 버틸 수 없어질 때까지 높이 쳐들었다가 확 무너질 때처럼 대화가 들어가야 한다.
소설은 그 속에서 자동차로 드라이브하면, 주제와 줄거리가 전개된 궤적에 불과하다. 그러나 걸어갈 때 이것들은 말로 짠 직물이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다.
문장의 격조와 기품은 어디까지나 고전적 교양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고전시대의 미(美)의 단순함과 간결함은 시대가 달라져도 마음을 감동시키므로 현대의 복잡성을 표현한 복잡하기 그지없는 문장조차, 조잡한 현대의 현상에 굴복하지 않는 한 어딘가에서 이 고전적 특질을 통해 현상을 극복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를 통한 현상의 극복이 문장의 최종적 이상인 한, 결국 문체의 최종적 이상은 기품과 격조일 것이다.


  현재 문장독본은 미시마 유키오의 것만 번역 출판되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장독본도 어서 빨리 번역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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