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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Jul 11. 2022

독도 연설 / 노무현 / 2006

한일관계에 대한 특별 담화 (2006년 4월 25일, 청와대)

  역사상 수많은 리더들이 명언들을 쏟아내었고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그들의 어록은 활자화되고 학생들의 교과서에 실리며, 사람들의 일상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어떠한 국가의 경제적 지위라든지 군사적 우위에 따라서 형성되는 가치가 아니다. 인류를 감동시킨 위인들의 언어는 휴머니즘 자체에서 발원하여 오로지 인간의 가치 그 자체만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것이며 역사적인 사실과 진실만을 바탕으로 하여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인은 아프리카에서도 나올 수 있고, 아시아에서도 나올 수 있고, 유럽에서도 나올 수 있고 아메리카에서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금의 선진국이라고 일컫는 국가들은 그러한 인권에 대한 지고한 가치를 우선시하고 있으며, 역사적인 사실을 객관화하고 공공화하여 타자의 시선에 노출되는 상황을 일반화한다. 그것이 폐쇄적인 독재체재나 전체주의의 오류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며, 앞으로 펼쳐질 후세대의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대응임을 알기 때문이다. 근 예로, 독일의 경우에는 자신들이 저지른 홀로코스트의 만행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고해한다. 그들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선조가 저지른 참상을 교육하고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집단적 광신에 빠졌던 과거의 모습을 반성하고 피해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사죄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뛰어난 선진국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인권과 역사인식'에 대한 측면에서 볼 때, 지금 21세기에도 그러한 평화적이고 보편적인 인류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지리학적으로 볼 때, '섬나라'라는 폐쇄적인 특성을 지닌다. 또한 지질학적으로 볼 때 '지진'과 '화산'과 '해일'이 끊이지 않는 재해적인 특성을 지닌다. 그들은 '고립된'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최대한 경쟁하면서 살아야 했으며, 그렇게 닫힌 공간에서 일어나는 재해 앞에서 무력하게 '죽음'을 바라보는 문화를 키워야 했다. 그 나라에서는 잘못을 했으면 도망칠 공간이 없었다. 엎드려 사죄하든지, 무력으로 제압하든지, 아니면 죽음을 택하든지 해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의 일본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과도하도록 겸손한 그들만의 전통은, 미리 겸양을 내보임으로써 자신의 의도를 숨기고 상대방의 추가적인 도발을 제거하는 효과를 거둔다. 조용하게 방 안에 틀어박혀서 자신만의 실력을 연마하는 사무라이식 훈련은, 방심한 상대방을 칼로 제압함으로써 불필요한 논쟁을 종결하는 효과를 거둔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비참하게 생의 최후를 맞이하는 할복자살은, 자신의 존재를 피와 잔혹한 형상으로 물들임으로써 주변인으로 하여금 비탄과 동정을 얻어 어지러운 문제를 숙연하게 해결하는 효과를 거둔다. 즉, 일본은 힘과 무력의 논리가 지배하는 전형적인 군국주의, 혹은 제국주의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는 DNA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2006년 4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담담하게 선언한 '한일관계에 대한 특별 담화'는 우리와 일본, 그리고, 20세기에 깊은 과오를 저지른 일부 국가들과 전 인류에게 전하는 울림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이 짧은 담화의 소재는 우리나라의 '독도'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 주제는 전범국가가 가져야 할 올바른 인간적 가치관과 역사의식에 대한 진심 어린 충고였다. 그분은 중언부언하지 않았다. 그분은 횡설수설하지도 않았다. 떼를 쓰지도 않았으며, 구걸하지도 않았다. 그분은 이 연설을 하기 위해서 연설관이나 비서관에게 요청하여 글을 대신 쓰라고 하지도 않았으며, 형식적으로 글을 읽는 모습도 거부하였다. 그분은 그분의 삶에서 쌓인 고유의 가치관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하여 스스로 일필휘지 하여 언어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담담하게 마이크 앞에서, 나직하지만 단단한 어조로 중요 단어와 연결어에 힘을 주어 강약을 조절하며 언어를 완성시켰다. 그분은 한 나라의 리더였으며, 리더답게 정중하고 명확한 언어를 사용하여 현재 우리나라의 입장과 생각을 드러내 보였다.  


  나는 이 담화에서 인류가 가져야 할 보편적 인권의식과 올바른 역사관에 대한 매우 성숙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담화에서 말하는 이가 가져야 하는 진지한 자세와 차분한 어조에 대해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담화에서 길고 장황한 내용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함축하는 방법과, 서로 간에 발생한 상처와 문제의 원인을 냉정하고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나는 이 담화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우선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무게와, 듣는 이로 하여금 그것에 집중하게 하는 언어 효과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이 담화는 단지 독도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뛰어넘어서 정치, 철학, 윤리, 그리고 도덕과 보편성을 모두 함축적으로 포괄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고 듣는 이라면 반드시 여기에서 단순한 과거사에 대한 역사적 해법뿐만이 아닌, 인문학적 가치와 인류의 역사적 보편성에 대한 폭넓은 인식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와 일본의 관계라든지 혹은 대한민국의 근대역사에 대한 배경을 설명할 때 반드시 이 연설문을 정확하게 읽고 사색하라고 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문학이라는 거창한 분야에 대한 경험이라는 것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무거운 현상과 사실을 올바로 알고 인식한 후에서야 그 의미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는 본인이 스스로 앞에 나서는 사람이 아니다. 리더는 이끌어주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이용하여 타인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사람이다. 리더는 스스로를 숨기고 타인을 드러나게 하는 힘을 지닌 사람이다. 리더는 타인들의 생각을 보듬고 끌어안아 대신 표현해주고 소통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명문에서 한 나라 국민들의 역사의식이 함양되고 인권에 대한 기본적이고 보편적 가치관이 성숙해져 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선언이 있고 나서 불과 1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정확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으며, 민주시민으로서 얼마만큼 성숙해있는지 가늠해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한일관계에 대한 특별 담화문 발표 영상 (노무현 재단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C3rHbAhHNPA

한일관계에 대한 특별 담화문 (노무현 사료관)

http://archives.knowhow.or.kr/m/record/all/view/2046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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