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천상 수컷 고릴라와 동일하다고 느끼며 살았다. 가족을 염려하는 모습이라든지, 무언가 근처에 있는 간식거리를 집어먹는 게으른 모습이라든지 혹은 하품을 하거나, 머리나 등을 긁어대는 모습 혹은 낮잠 자는 모습이 서부 로랜드 수컷 고릴라와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내가 고릴라가 아니라 어쩌면 들개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지독한 역마살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역마살이라고 표현하기에도 약간 애매하고,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쓸데없이 배회하기'이다. 나는 어딘가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엉덩이가 가볍다. 아내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앉아있는 것을 잘한다. 하지만 나는 10분 앉아 있으면 들개의 본성이 발현되어, 어딘가 발걸음을 재촉하고 싶어 진다. 정 견디기 힘들면 화장실이라도 걸어갔다 와야 한다.
오늘 어느 일본 작가의 에세이를 읽던 도중, 나의 이러한 성질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작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선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유명한 작품인 '걷기 예찬'에서 묘사된 걷기가 일종의 건강하고 사색적이고, 원시적인 에너지의 자연스러운 흐름 같은 것이었다면,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가을과 만보'에서 표현된 걷기는 정말 별다른 목적 없이 되는대로 쓸데없이 이곳저곳 배회한다는 표현이 너무 잘 어울린다. 내가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집을 나와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모습을 너무도 정확하게 표현해놓은 것이다.
이내 내 성질을 아는 사람은 날마다 집에서 하는 일 없이 따분한 시간을 때우려 잡지나 읽으면서 빈둥거리는 모습을 상상할 텐데, 실상은 사뭇 다르다. 글 쓸 때가 아니면 대개 한나절도 집에 있지 않는다. 뭘 하냐 하면 들개처럼 온종일 밖을 싸돌아다닌다. 이것이 유일한 '오락'이자 '심심풀이'다. 요컨대 가을이란 계절을 좋아하는 이유는 거리에서 생활하는 부랑자들이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와 같다...... 에드거 앨런 포가 쓴 소설 가운데 종일 군중 속을 걸어 다니지 않으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불행한 남자가 나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는 그 심리가 너무나 잘 이해된다. (하기와라 사쿠타로 / 가을과 만보 中)
누군가 만나서, 서로의 취미나 습관을 이야기하는 경우에 무심코 그냥 '저는 역마살이 있습니다.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하고는 했는데, 이제부터는 '저는 들개처럼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라고 바꾸는 것이 훨씬 적절할 듯하다. 물론 이빨이 다 빠진 공격성 없는 떠돌이 개일 뿐이겠지만.
이제 곧 가을이다. 가을이 되어 점점 추워지면 들개들은 먹을 것을 찾아서 정말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나도 막연하게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