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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Sep 18. 2022

나를 흔든 시 한줄 / 2015

중앙일보 논설위원실 엮음

  문학에 문외한으로 자란 천상 공돌이인 '나'라는 생명체는, 여러 유명 작가들의 단편소설이나 명시 등이 선별되어 간행된 책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 마치 천재지변 때 마트에서 사재기하는 싹쓸러처럼 - 허겁지겁 집어 들고 오게 된다.


  그러한 충동 대여로 득을 본 몇 번의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시(詩)라는 것이 응축된 언어로 세상을 그려내는 일종의 액기스(?) 문학일진대,  누군가를 흔들었다는 문구의 근사한 제목처럼,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시인들과 또 그 시를 추천한 유명인들의 이야기 또한 흥미진진하다.


  여기에 소개된 시들은 국내외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며, 정치, 사회, 문화, 예술 계를 총망라한 여러 유명인사들이 각 시들을 추천하며 그와 얽힌 에피소드나 감상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또한 시인 스스로도 다른 시인의 시를 추천하기도 하고, 꼭 시가 아니더라도 훌륭한 글귀를 언급하기도 한다.


  이 책은 거장들의 유명한 시와 더불어, 여러 유명인사들의 감상들이 실려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2배의 기쁨을 선사한다. 평소 잘 알지 못했던 유명인들의 고민과 속마음들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흥미롭기도 하고, 또한 무심코 흘려듣거나 읽었던 시의 의미가 색다르게 다가온다는 점에서 감동적이기도 하다. 특히 김훈 선생이 추천한 김소월의 산유화는 내가 그동안 글을 얼마나 피상적으로 접해왔는지를 깨닫게 해주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 가수 김창완과 인순이, 시인 문정희, 산악인 엄홍길이 추천한 각 시들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기에 짧게나마 인용해본다.




새가 새장에 들어가기를 기다릴 것

그가 새장에 들어가거든

살며시 붓으로 새장을 닫을 것.

그리고

차례로 모든 창살을 지우되

새의 깃털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할 것

(자크 프레베르,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새를 잡으려고 걸어놓았던 새장을 지우는 일, 즉 자신의 지금까지의 노력과 헌신을 모두 무위로 돌리는 일이야말로 온전하고 아름다운 새의 그림을 완성하는 마지막 붓놀림이다. (가수 김창완)




나이 든 나무는

바람에 너무 많이 흔들려보아서

덜 흔들린다

(장태평, '나이 든 나무')


사는 건 마치 바람을 맞는 것과 같아요. 바람은 늘 나를 향해 불지만 곧 내 뒤로 사라지거든요. 사연도, 세월도, 아픔도 다 그렇게 사라져요. 곧 새로운 바람이 불어닥칠 텐데 지나간 바람을 붙잡을 시간이 어디 있나요. 남들과 다르게 태어나 남들 앞에 서는 게 두려웠던 소녀는 노래를 하며 그 아픔을 잊을 수 있었어요. 가수가 돼 팬들의 애정을 듬뿍 받으며 우뚝 설 수 있었죠. 그때까지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어린 시절부터 엄청나게 불어온 바람을 거스르지 않고 잘 보내버린 덕이죠. 이제는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전처럼 그렇게 죽을 만큼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가수 인순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아버지가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마당 한가운데 키 큰 감나무를 돌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가는 아버지의 관을 향해 나는 열네 살의 어린 손을 흔들어야 했다. 시가 나에게 다가든 것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단 한 밖에 살지 못하는 존재! 사라지므로 아름다운 투명한 물방울! 그 후 내가 읽은 모든 시는 그 범주 안에 있다. 내가 쓴 모든 시도 아버지의 관 앞에서 울던 어린 딸의 노래다. (시인 문정희)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내 인생의 요원한 꿈인 히말라야 8,000미터... 나는 이 꿈을 위해 22년 동안 서른여덟 번을 도전했다. 매 순간 사선을 넘나들었다. 나는 살아남아 있지만 열 명의 동료들을 히말라야에서 잃었다... 산은 인간의 의지만으로 정복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산이 허락해야만 한다. 내가 히말라야 등정에 성공한 것은 함께한 동료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잊지 못한다... 나는 지금도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이름들을 주문처럼 외우고 다닌다. (산악인 엄홍길)




    자체가 여러 유명인사들을 너무 많이 개입시키다 보니, 개중에는 이미 범죄자도 되어버린 사람도 여럿 있고, 편향된 가치관으로 사람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사람도 있고, 표리부동한 행태로 낙인찍힌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장을 담그면 구더기도 생기는 법이고, 연탄을 나르면 검댕이도 묻을  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참으로 우스운 것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아름답고 훌륭한 시들도 각각 그것을 읽는 사람에 따라서,  사람 자체의 인생과 가치관에 맞도록 해석되고 소비된다는 점이다. 똑같은 시를 범죄자가 읽어도 그에게 도움이  것이고,  성인군자가 읽어도 그에게 도움이  것이다. 혹은 시를 짓는 시인 자체도 자신이 만든 시가 어디로 흘러가서 누군가의 책상 위에서 요리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니 '()'라는 것은  자체로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저 나무처럼  자리에  있는 '()' 체를 음미하는 마음으로,  좀먹은 보물 같은 책의 애증스런 리뷰를 끝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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