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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Sep 21. 2022

황금 물고기 / 르 클레지오 / 1996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르 클레지오(Le Clezio)의 1996년도 소설이다. 원제는 Poisson d'or(프아종도르). 나는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지만, 번역기를 돌려보니 그냥 단순한 금붕어를 뜻하는 단어인 듯한데, 왜 찬란한 황금색이 연상되는 물고기로 제목을 정해놓았는지 궁금해진다. 뭐 최수철 교수야 워낙에 유명하신 분이니 어련히 알아서 번역을 잘했을까 보냐만, 작고 귀여우면서도 쉽게 다칠 수 있는 느낌의 '금붕어'라는 단어의 어감과, 신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신비한 존재감을 연상케 하는 '황금 물고기'라는 단어의 어감은 확연히 다르다. 이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내가 볼 때 주인공 라일라의 인생은 온갖 수난을 이겨내고 험한 물살과 거친 모래바닥을 스친 생채기가 낭자한 연약한 생명체, 바로 그 '금붕어'이다. 


  1940년생인 르 클레지오는 20대에 명작을 집필하여 젊은 나이에 거장의 자리에 오르지만, 이 작품은 50대 후반의 나이에 내놓은 작품이다. 젊은 시절에 내놓았던 작품들과는 다른 감수성을 가진 작품이라고 하는데, 내가 이 작품을 접하게 된 것은 완전한 우연이었다. 나탈리 사로트의 '황금열매'라는 책을 찾다가, 마침 제목을 헷갈려한 사이 눈앞에 보이는 비슷한 제목의 '황금물고기'라는 책을 냉큼 집어왔던 것. 하지만, 기쁨은 엉뚱한 곳에서 찾아오기도 하는 법. 이 책은 명작이었다. 유럽에서 살아가는 유색인들, 특히 흑인들의 역사와 문화의 연유를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작가의 짧고도 강렬한 문장력으로 인하여, 글이 단숨에 읽히고 독서는 달음박질한다. 그의 필치는 대단한 리듬감을 가졌다. 마치 수십 년의 인생을 돌아보는 것 같은 서사의 흐름이 젊디 젊은 주인공의 아픔을 응축해서 드러내는 요소로 작용한다. 앉은자리에서 책을 펴서, 뒤편 해설을 읽을 때까지 멈출 수 없었다. 대단한 흡인력이다.


  아주 어린 흑인 여자의 기구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는 강하다. 그래서 살아남는다. 어찌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슬픈 초상일지도 모른다. 금붕어는 그렇게 살아간다. 열심히. 쉽게 읽히는 책이니, 그 누구에게라도 강추한다. 끝.


수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나는 내가 듣고 싶었던 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끊임없이 막막하고 낮고 깊은 울림. 파도가 육지에 부딪쳐 부서지는 소리, 한 없이 이어지는 철로 위에서 열차가 달리는 소리, 수평선 너머에서 들려오는 뇌우의 간단없는 우르릉 소리였다. 또한 그것은 모르는 사람의 한숨 소리, 혹은 낯선 이가 웅얼거리는 소리, 밤중에 깨어나 혼자임을 절감할 때 동맥 속으로 피가 흐르는 소리이기도 하였다.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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