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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Oct 02. 2022

걸리버 여행기 / 조너선 스위프트 / 1726

  이 발칙하고 재미있으면서도 흥미롭고 도발적인 작품을 이제야 정식으로 접해본다. 프랑켄 슈타인과 지킬과 하이드, 돈키호테 같은 작품들의 본모습을 나이들어 목격한 이후로, 흔히 오래전부터 접해오던 유명한 동화작품의 원작들이 얼마나 심오하고 기상천외한 것인지 항상 의심의 마음을 갖는 버릇을 나 스스로 만들어버린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걸리버 여행기 또한 돈키호테를 능가하는 위트와 유머, 풍자와 해학, 조롱과 염세의 종합 선물세트였던 것.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는 아일랜드 출신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 트리니티 칼리지와 옥스퍼드를 졸업한 그는 오랜 기간 동안 정치, 종교와 관련된 여러 권력기관에 몸담고 있으면서 인간의 이기심과 사악함을 풍자하는 작품들을 다수 출간한다. 조너선 스위프트를 설명하는 여러 출판사나 포탈에서는 한결같이 영국의 토리당이니 휘그당이니 하는 말들을 천편일률적으로 사용하면서 복붙하고 있으나 작품을 그냥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그런 것은 세세하게 알 필요는 없고 다만, 이 문제적 작가가 젊었을 때부터 고발과 풍자, 도발과 비유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 작품은 레뮤얼 걸리버가 소인국(릴리풋) 여행을 하는 이야기(1편), 거인국(브롭딩낵) 여행을 하는 이야기(2편), 천공의 성 라퓨타 및 그 하부대륙과 네덜란드 일본 등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이야기(3편),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들의 나라인 후이넘을 여행하고 영국으로 귀환하는 이야기(4편)로 펼쳐진다. 우리나라에서는 70-80년대까지 동화작품이라는 틀에 맞추기 위하여 소인국과 거인국을 여행하는 1, 2편의 아기자기하고 환상적으로 보이는 부분만 수록 편찬하였다고 하니, 가뜩이나 풍자와 염세의 향기가 가득한 3, 4부의 성향상 군사독재 시절의 눈치를 꺼렸을 것이다. 국내에 완역된 것은 1997년이 되어서야 가능했다고 전해진다.


  각종 인터넷의 리뷰 사이트나 유튜브 등에서는 하나같이 이 작품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하여, 당시의 영국 정치판을 끌어들여 이것은 이러한 의미이고 저것은 저러한 의미라는 클리쉐로 모두 동일한 해석을 내리고 있는데, 나는 그러한 교과서적인 해석보다는 이 작가의 대담함과 천진난만함에 미소를 지어보이고 싶다. 


  그의 필체는 다소 절제되어 있다. 실제로 본인이 목격하고 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정중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부담스러운 감탄사도 별로 없고, 자신의 의견이나 가치관보다는 주로 등장인물들과의 대화를 인용하여 여행기라는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듯하다. 해괴망측한 환상소설이기는 하지만, 글을 읽다 보면 마치 어린 시절 호기심 어린 정서로 돌아가 실제로 그러한 나라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독자가 머릿속으로 원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려볼 수 있는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선장에게 왕비 시녀의 발가락에서 내 손으로 직접 잘라낸 티눈을 보여주었다. 그 크기는 켄트 지역에서 나는 사과만한데 아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영국으로 돌아오자 그 속을 파내어 컵으로 만들어 은제 받침대에 꽂아 놓았다. 


  그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여행지 여러 군데에서 권위주위와 혈연 지연의 폐해를 비유하고 고발한다. 토리당인지 휘그당인 뭔지 모르겠지만, 당시 영국을 분열시켰던 당파들의 권리 싸움에도 환멸을 드러내는 비유적 묘사를 많이 하였다. 인간 자체에 대한 염증도 가득하여, 끝내 작품의 4부에서는 인간을 구역질 나고 저열한 생명체로 등장시켜 그가 원하는 만큼의 도발을 성공시킨다. 정말 화끈하고 귀엽고 막무가내 기질을 느낄 수 있는 정의로운 작가의 문체이다. 


  작은 소인들이, 누워있는 걸리버를 꽁꽁 묶고 포박하는 장면만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당장 이 작품을 제대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지금의 중고등학생들에게도 죄다 고정적인 사진이나 이미지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원작과 너무 다르게 각인된 동화작품들을 솔직하게 까발려 온전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다. 걸리버 여행기를 제대로 읽었다면 머릿속에는 포박당해 누워있는 걸리버가 아니라, 혐오스럽고 비위생적인 모습을 한 인간이 게걸스럽게 달려드는 삽화가 떠올라야 하는 것이 맞다. 



  정의로운 도발자, 조너선 스위프트의 가치관이 한 문단으로 집약된 작품 속 일부를 발췌하며 이 사랑스럽고 자극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작품의 리뷰를 마친다.


젊은 귀족들은 어릴 때부터 나태하고 사치스럽게 삽니다. 성인이 되면 음탕한 여자들과 어울리며 기력을 소모하고 끔찍한 병에 걸리죠. 재산이 거의 바닥나면 그들은 오로지 돈 때문에 천한 태생의 못생기고 건강하지 못한 여자와 결혼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아내를 싫어하고 멸시하죠. 그런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보통 연주창에 걸리고 관절이 약하며 몸의 형태도 기형적입니다. 그래서 그런 가문은 3대를 넘어 유지되는 일이 좀처럼 없습니다. 부인이 대를 이을 건강한 아이를 얻고자 이웃이나 하인 중에 건강한 아버지를 찾아내지 않는 한 말입니다. 나약하고 병든 몸, 야윈 얼굴, 누렇게 뜬 안색이야말로 진정한 귀족 혈통이라는 표시입니다. 건강하고 원기 왕성한 외양은 귀족에겐 무척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를 보고 진짜 아버지는 마부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체가 불완전하니 이들은 정신마저 불완전합니다. 이들은 심술, 둔감, 무지, 변덕, 호색, 오만의 혼합물입니다. 이런 걸출한 집단의 동의 없이는 어떤 법도 제정되거나 폐지되거나 변경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귀족들은 우리의 모든 재산을 결정할 권리를 지니며, 이는 항소 대상도 아닙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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