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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Nov 01. 2022

시지프스의 풍선

나이가 들고

이해타산의 경험이 쌓여서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수치화, 계량화 된 상태라면

사람을 만나는 방법 또한 이전과는 다르게 된다


어려서 만난 사람들과

학생 때 만난 사람들과

직장인일 때 만난 사람들의 관계는

모두 다른 맥락에서 그룹화된다

그것은 질서정연하고도 냉혹하게

휴대폰 연락처에 카테고리화 되어있는 것이다


과연 사람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사람을 만나서 무엇을 얻게되는 것인가

그것이 내 평생의 집착이 될 지도 모르겠다


대가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람 가까이에 서는 것도 대가이고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자체도 대가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편향되어 굳어져가는 것이다

오로지,

대가(代價)라는 단어를 몰랐던 시절에 만난 사람만이

유일한 무대가(無代價)의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유년시절 만나고 싶은 친구의 붉은 별돌 집 나즈막한 창문 앞에서

까치발을 하고 선 나의 모습은

대체 불가능한 소망의 한 파편으로 남아있다


 것이 있기에 억지로 만나야 하는 사람들

줄 것이 있기에 억지로 만나야 하는 사람들

이제는 그런 사람들 밖에 없다

어려서 순수하게 사귄 친구라 할지라도

사회라는 시스템에 물든 이후라면

본능적으로 까치발을 들 수가 없게 된다

덫에 걸리지 않을 수가 없다


혐오와 환멸의 시대

증오와 부조리의 시대

익명과 정서폭력의 시대

무감각과 공감부족의 시대


어느 시절이건 약육강식의 역사가 없었겠느냐만

이렇게

멀쩡한 안면을 유지한 상태에서

익명의 가면을 쓰고 사람을 죽이려는 시대는 없었다

사람의 생명과 인권이

인터넷이라는 자그마한 화면 속에서

한줌 손바닥에 들어오는 계량적 크기로 치부되면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그 누구나

수백 수천의 이름 모르는 고귀한 생존을

맘대로 조물딱거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의 죽음이 언론의 멋잇감이 되면서

생명이라는 것도 상품화되어간다

사람이 많이 죽으면 언론은 돈을 많이 번다

언론은 사람이 죽는 것을 기다리는 하이애나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긴 언론도 독자들의 주머니를 털고 살아가는 것이니

결국 우리는 서로서로

익명의 죽음들을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은퇴하고 할일 없을 때

인적없는 산 속에 숨어들어가서 살면

해결이 되려나


노인은 늙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외로워서 죽는 것이라고 하니

어짜피 인생은 홀로 태어나서 홀로 가는 것이 아닌가

차라리 고독이 필연이라면

고독은 나쁘거나 슬픈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바삭 바삭 말라버린 인간관계의 척박함 속에서

과연

그 자그마한 틈바구니의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밀알 한 톨만큼의 순수와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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