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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Jul 19. 2020

김치 컴플렉스

  우리나라에서 김치라는 것은 마치 숨 쉴 때의 공기와도 같은 존재이다. 한국인은 누구나 김치를 먹고 즐기고 좋아한다. 역사와 전통, 문화와 기록이 모든 것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나는 한국인이다. 그러므로 나도 김치를 좋아해야 할 텐데, 나는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한국인이 아닌가? 


  물론 나는 한국인이다. 내가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은 흑백논리이다. 하지만 내가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을 싫어하여 일부러 멀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처럼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을 정도로 매 끼니마다 김치를 먹어야 할 정도로 찾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왜 남들처럼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일까. 혹시 나의 유전자는 한국이 아니었을까. 아닌데... 우리 집은 정말 손으로 꼽을 정도의 음식 달인이 우리나라의 반찬을 만들던 집안이었는데... 나는 그러한 장인의 손길 아래에서 자랐고 그분의 음식을 먹으면서 자랐으니, 김치를 좋아할 만한 완벽한 성장환경에 있었는데 말이다. 참으로 의문이다.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불혹을 넘길 정도의 인생을 살면서 발견하고 정리해보면, 김치라기보다는 맵고 짜고 시고 뜨거우면서도 붉은 음식을 싫어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고추와 소금으로 절여져 발효가 되어 시큼한데 그것을 뜨겁게 만든 음식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것에 가장 들어맞는 우리나라의 음식은 김치찌개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고추장을 넣고 볶고 조린 음식, 그리고 온갖 매운탕이다. 나는 어쩌다가 이런 돌연변이가 되었는가. 아니, 내가 정말 돌연변이인가.


  우리나라에서 김치를 좋아하지 않으면 일상생활하기에 번거로움이 많다. 그렇다고 사회생활을 못한다거나, 불이익이 있는 정도는 아니다. 공통적인 성향에서 삐져나온 모습을 보이게 되니, 다만 성가신 상황이 발생할 뿐이다. 예를 들어, 사내 회식 등을 통하여 아귀찜이나 대구매운탕을 먹는다고 하면,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반찬으로 나온 콘 옥수수 라든지 작은 조각의 부침개, 검은콩조림, 어묵무침, 삶은 콩나물, 그리고 잘 발린 생선 속살 정도일 것이다. 산채비빔밥이라도 먹는 기회가 생긴다면, 비빔밥에 고추장을 넣지 않고 비벼먹는 쓸쓸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어떠한 음식에 기호가 있다는 말인가.


  유난히 희고 차가운 음식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사실 위에서 언급한 것들만 아니면 음식을 가리지 않는 편이다. 즉, 고추장이 들어가지 않는 음식이라면 먹는 것 자체를 매우 좋아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그러한 음식이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만 해도 답답한 노릇이다.


  냉면은 나를 위해 만들어진 최고의 음식이라는 것을 느낀다. 물론 식초 향 때문에 시큼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오래되어 발효된 신맛이라기보다는 신선한 방향으로 정제된 신맛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또한 차가운 까르보나라와 햄버거 같은 것은 없어서 못 먹을 정도이다. 어김없는 서구식의 초딩입맛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의외로 된장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서구식이라도 단정할 수도 없다. 한겨울에 펄펄 끓는 배추 된장국을 한술 뜨면 온몸에 생기가 돌고, 삶의 보람이 느껴질 정도로 기분이 좋다. 향을 가득 품은 재첩국이나 매생이국, 싱싱한 굴이나 해삼, 멍게 등을 씹고 있노라면 신선놀음을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어디로 보나 토종 한국인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TV를 보면서 우연히 우리나라 김치의 유래와 역사, 종류에 대하여 이것저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 우리 민족이 먹던 김치는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 색이 허여멀겠다고 한다. 그것도 조선시대 이전에는 고춧가루도 들어가지 않은 김치의 종류가 많았다고 하니, 동치미나 백김치 같은 백색의 김치류가 당시에 존재했던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백김치 매니아가 아니었던가. 아차차.... 내가 백김치에는 환장을 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아삭하며 자극적이지 않고 마치 지친 위장을 청소해주듯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백김치는 반찬의 백미요, 식감의 선봉장이다. 여름에 무덥고 목이 마를 때, 동치미에 담긴 백김치를 한 움큼을 씹고, 국물까지 마시면 기분도 좋고 갈증도 사라진다. 그뿐인가, 이 백김치라는 녀석은 포만감도 적어, 한번 먹게 되면 쉽게 젓가락을 놓기 힘들다. 오호라, 그렇다면 내가 김치를 싫어하는 종자는 아니었던 것. 어찌 보면 우리 순수 김치를 알아챈 토종 오리지널 한국인이 바로 내가 아니었을까. 더욱이, 요즘 김치는 일제시대역사와 미디어의 발달로 더욱 붉은색을 띠며 자극적으로 변했다고 하니, 백김치를 좋아하는 내가 오히려 혼탁해진 우리 음식문화에 대하여 한마디 해야 하는 것이 아닐는지...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이 -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극적이고 달고 짠 음식을 점점 좋아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이나 일본의 음식들에 설탕과 소금이 많이 들어가 있으니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우리 민족 고유의 음식이라고 하는 김치찌개나 매운탕, 혹은 각종 고추 관련 음식들도 지금보다 훨씬 덜 자극적이고 심심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것으로 결론을 내려보면, 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입맛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나는 김치를 못 먹는 외톨이도 아니요, 한국인들이라면 다 좋아한다는 고추장 요리를 못 먹는 별종도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지금 시중에 돌아다니는 음식은 우리 고유의 음식이라기보다는 경제논리에 들씌워지고 변형된 인스턴트 급이다. 


  김치여, 설탕과 소금과 고춧가루와 각종 양념과 장식이 제거된 순수한 우리 음식으로 돌아오라. 그리하여 내가 유별난 놈이 아니라, 이 시대가 맛을 잃어버렸다고 변호할지어다.



- 김치컴플렉스를 가진 아재의 2020여름 망상잡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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