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다정함 사이

폭우 속, 집으로 오는 길

by 실버버드

그날도,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졌다.

2층 진료실에서 내려다보는 윌셔 대로엔

차들이 평소보다 속도를 내지 못한 채

조심스레 달리고 있었다.

진료가 마무리되어 가고,

개를 데리러 갈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데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내가 가야 하는 곳은 토런스.

평소 같으면 30분이면 넉넉히 도착되는 거리였지만,

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다.


시속 30마일.

저속으로 달리는 차들 속에서 생각했다.

'이 빗속에서 개를 처음 만나러 가는구나.'


1시간 가까이 운전하여 도착한 곳은

한적하고 잘 정돈된 주거단지였다.

견주가 아이들을 키우며 살던 곳.

그리고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온 가족이 급하게 짐을 싸

떠나야만 했던 곳.

이제 모두가 떠난 자리에,

개만 홀로 남아 있었다.


견주 대신 임시보호를 하고 있던 이웃을 만났고,

잠시 뒤, 2층에서 개가 내려왔다.

숨을 헐떡거리며 계단을 내려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도 몸집이 제법 컸다.

나는 첫인사로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안녕? 같이 집에 가자.”


임시보호자에게 케이지에 넣어달라고 부탁하고

뒷좌석에 올리는 것을 도움받았다.

비가 어찌나 쏟아지는지

우산을 썼음에도,

임시보호자도 나도 어깨 한쪽이 금세 다 젖어버렸다.


집으로 오는 길,

비는 더 거세게 쏟아졌다.

케이지 안에서 가만히 웅크려 있던 개는

내가 가끔 브레이크를 밟을 때 “으응” 하는 소리를 냈다.

나는 “괜찮아. 조금만 더 가면 돼.”라고 안심시키며

차의 속도를 더 내보려 노력했다.


드디어 집주차장에 도착해

케이지를 차에서 내렸다.

순간, 몸이 휘청할 정도로 무게가 묵직했다.

케이지를 끌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동안에도

녀석은 안에서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들리는 소리는 오직 숨소리뿐이었다.

녀석이 숨죽인 채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몹시 두렵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잠시 스쳤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케이지 문을 열었다.

큰 덩치의 녀석이 어리둥절해하며 조심스럽게 나왔다.

바닥에 코를 바짝 대고 냄새를 깊게 들이마시더니,

이내 집안 곳곳을 이리저리 살피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견주가 들려보낸 작은 가방을 열어 보았다.

그동안 이 녀석의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소지품들.

사료 한 봉지, 배변용 패드,
겨울과 여름용 두 벌의 옷,
여분의 목줄, 발톱깎이, 치약과 칫솔,
털손질용 크고 작은 빗들,
발바닥 크림, 피부연고,
그리고 야외용 물통.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고른 물건들이 아니었다.

섬세하게 마련된 소지품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견주가 얼마나 이 녀석을 아끼고 사랑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밤, 퍼붓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였다.

“잘 자.”

나는 침대 위에서 인사를 건넸지만

녀석은 잠이 잘 오지 않는지

멀리서 나를 쳐다보며 가끔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으으응”

마치 아기가 칭얼대듯.

가느란 음색의 소리였지만

피곤이 몰려오면서

잠결 속에서 소리가 들리는 듯 마는 듯 흩어졌다.


녀석과의 첫날은 그렇게 세찬 빗소리 속에서 시작되었다.

빗소리만큼 마음도 왠지 구슬픈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