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지 않아요”라는 그 한마디
하늘로 날아가기 직전까지 갔다가,
끝내 비행기 문턱에서 쫓겨났다.
단두종이라는 이유로 탑승을 거부당했고,
가족과 생이별을 하며 혼자 미국에 남겨졌다.
그 사실이, 녀석을 볼 때마다
내 마음 한구석을 짠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약간만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도
“왜?” 하고 뭔 일 있는지 자꾸 묻게 되었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원래 표정이 좀 그런 녀석이었다. 속았다.)
처음 며칠은 깊은 잠을 잘 자지 못하고
계속 나를 바라보며 자주 깨어 있으려 했다.
시야 안에 누군가 있어야 비로소 안심하는 듯했다.
어쩌면, 어딘가에서 강제로 분리된 기억이
녀석의 마음속 깊이 남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녀석에게 제일 먼저 사준 건
큰 밥그릇과 2리터짜리 자동 급수기였다.
몸에 열이 많은지 물을 자주 마셨고,
물을 먹는 소리는 시원하게 쿨럭쿨럭,
사료 먹는 소리는 와글와글 요란했다.
머리도 크고, 발도 크고, 눈도 크고,
눈빛은 또렷했다.
몸 전체 윤곽이 동글동글해 귀엽기도 했지만,
불독 특유의 인상 탓에 얼핏 보면 조금은 싸나운 느낌도 있었다.
입술을 살짝 들춰보면 송곳니가 꽤 발달해 있었다.
“싸늘하다…”
이를 닦아줘야 하는데,
이 녀석이 양치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괜찮아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매일 침을 다뤄야 하는데,
송곳니 하나도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혹시라도 불편함을 괜히 건드렸다가
물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손으로 먹고사는데.
그래서 견주에게 한국에 잘 도착했는지 안부를 묻고,
궁금한 질문도 할 겸 해서 이메일을 보냈다.
질문 1. 밥은 자동급식을 했나요, 아니면 시간제로 주는 방식이었나요?
질문 2. 옷은 자주 입혔나요? 입는 걸 좋아하나요?
질문 3. 왼쪽 앞발과 뒷발가락이 붉고, 특히 앞발을 자주 핥는데, 원래 가려움증이 있었나요?
질문 4. 털은 매일 빗어주셨나요? 빗질을 좋아하나요?
질문 5. 발톱은 직접 잘라주셨나요? 거부감은 없었나요? 아니면 샵에 맡기셨나요?
질문 6. 양치는 얼마나 자주 해주셨고, 거부감은 어떤가요?
질문 7. 목욕은 어느 정도 주기로 했고, 선호하는 샴푸 브랜드가 있었나요?
질문 8. 현재 동봉된 브랜드의 사료만 먹였나요?
질문 9. 간식은 어떤 걸 주셨나요? 채소나 과일도 줬나요?
질문 10. 잘 수행하는 동작 명령이 있나요?
이메일을 보낸 지 하루 만에 회신이 왔다.
회신 상단에 이 말이 먼저 있었다.
“양치할 때도 물지 않아요.”
그 한마디를 보는 순간,
'다행이다.'
마음에 큰 안도가 왔다.
전견주는 척척박사였다.
굳이 직설적으로 묻지 않았는데도,
“물지 않아요.”
내가 뭘 걱정하는지 단번에 알아챘다.
오이, 양배추, 로메인, 양상추는
식구들 식사 준비할 때 간식처럼 줬어요.
제가 채소를 주는 걸 아니까
늘 옆에서 앉아 기다리곤 했죠.
과일은 체중 조절 때문에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아주 조금—
엄지손가락 길이만큼만 줬어요.
사과, 블루베리, 딸기요.
시중 간식은 최대한 자제했어요.
물을 자주 마셔서 소변도 많아요.
...
너무 착한 아이예요.
사랑으로 잘 보살펴 주세요.
그 마지막 문장까지 읽으며,
녀석이 어떻게 어울려 살아왔던 건지,
그들에게 정말 ‘참 착하고 사랑스러운 개’였구나 느껴졌다.
그래서 그날부터,
“착하고 사랑스러운 개.” 하며
녀석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어주었다.
녀석은 칭찬을 들으면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기분이 좋으면
집 안을 한두 바퀴씩 신나게 뛰어다니기도 했다.
생각보다 더, 영리한 녀석인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녀석을 쓰다듬으며
문득 생각했다.
"이제,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