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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탕

식인주의

by 은림



보글보글 렌지대 위에 커다란 냄비 속에 맛있는 것이 끓고 있다. 냄비 안에 절반쯤 차지한 불그스름한 덩어리에 파와 마늘, 양파와 생강을 듬뿍 넣고 비장의 무기로 로즈마리 약간 통후추 세알, 된장, 고춧가루, 맛간장 아주 약간 참기름 두 방울을 세심하게 떨어트린다. 뼈와 살점이 둥글게 골고루 붙은 등뼈는 근육막이 퍼렇게 싱싱했다. 나는 오래된 부엌에서 뼈처럼 단단한 콜라비를 숭덩숭덩 잘라낼 큰 칼과 찌르면 심장까지 찢어낼 날카로운 작은 칼로 등골의 뼈와 살을 저미고 다듬어 하룻밤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냄비에 갖은양념을 넣고 끓였다.


고기가 적당히 익으면 골수까지 양념이 배도록 약불에 천천히 졸이며 시래기와 부추를 듬뿍 넣는다. 감자탕이지만, 감자는 한 개도 넣지 않았다. 감자를 넣어서 감자탕이라는 설, 돼지의 등뼈 이름을 감자라고 불러서 감자탕이라는 설 두 가지가 있지만 우리 집 감자탕에는 감자가 없다.


한 달에 한번 월급날, 남편은 자기 등골을 빼준다. 나는 두 손으로 정결히 그 뼈를 받아 싱크대에 넣고 다듬고 냄비에 넣어 졸인다. 등골이 한 개 더 사라진 남편은 가족들의 입속으로 사라지는 살점을 묵묵히 바라보다 자기 입에도 넣는다.


“맛이 어때?”


나는 남편이 소주 한 병에 맥주 한 병을 능숙하게 큰 컵에 마는 걸 못 본 척한다. 평소에는 술 좀 줄이라고, 너무 많이 마신다고, 그러다 죽는다고, 잔소리하지만 오늘만은 억지로 입을 꾹 다문다. 어차피 이번 달에도 등골 하나 빼놓고도 무사했으니 내일도, 모레도, 아무튼 다음 한 달 등골을 또 빼놓기 전까지는 대충 무사할 것이다. 아니래도 어쩔 수 없고.


나는 남편의 등골을 빼 바꾼 돈의 일부로 월세와 아이 학원비를 내고, 한 달 식비와 시부모님의 병원비, 내 병원비와 아이 용돈을 쓴다. 저축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하루 아껴 하루 살기가 벅차다.


“괜찮네.”


남편은 자기 등살 한입에 소맥 한 모금을 억지로 넘기고서야 대답한다. 식탁 앞에 옹송그린 남편은 등골 하나를 빼 등이 더 굽어 보였다.

아이는 한 달에 한번 있는 만찬에 기분이 한 껏 좋아서 연신 떠들어댔다.


“너무 맛있다.”


아이의 행복한 얼굴을 보며 나도 입에 고소한 냄새가 나는 살 한 점을 넣었다. 씹을 때마다 새록새록 커지는 비린 내가 역겹지만 뱉을 수도 없다. 고기 한 점을 억지로 씹어 삼킨 다음엔 부추와 시래기만 건져 먹었다. 마지막 남은 양념엔 밥을 눌러 볶아 기름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았다.


“내일 또 먹고 싶어.”


우리는 아이의 말을 못 들은 척한다.

남편은 밥을 먹다 말고 식탁에서 졸기 시작했다. 술병은 이미 비어 있고 그릇에는 살점이 남아 있다. 나는 남은 고기를 아이의 입에 넣어주었다. 눈치만 보던 아이는 냉큼 받아먹었다


남편은 예전만큼 고기를 먹지 못했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사람이라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나는 몰래 남편의 등뼈를 세었다. 남편이 얼마나 버틸까, 우리는 얼마나 버틸까. 그의 등뼈가 전부 사라지기 전에 내가 뭘 준비해야 할까. 오랫동안 집안 갇히다시피 집안일과 아이 양육가 시가와 친정 양가의 대소사만 도맡아 했던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딱히 닦아놓은 재주도 자격증도 없는데.

나는 장을 보고 길을 가는 틈틈이 사람 구하는 전단을 보고 지역 온라인 카페에 인력란을 살핀다. 자격증이 필요 없고 깨끗한 편인 포장 알바는 인기가 많아 차례가 오지도 않는다. 젊은 사람을 선호하는 편의점이나 서빙등 얼굴 보이는 직종도 어렵다. 주방보조, 청소부, 가정부, 장판꾼, 신호수.... 얼굴 없는 사람들이 하는 일만 남는데 병원에 신세를 많이 진 몸이 감당하기가 어렵다.

자격증이 필요한 깔끔한 전문직은 바리스타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인데 당장 급한 마음에 자격증의 문턱은 높아 보였다. 이전에 가졌던 시시한 전문 직업을 하려니 희망하는 젊은 애들만으로 차고 넘쳐서 빈자리가 없었다.


이 참에 사업을 시작해? 조금이라도 여유돈이 있을 때? 하는 생각에 동대문 시장과 남대문 시장의 옷장사와 원단 가게, 비즈가게의 좁은 통로와 유통과정을 지켜보았다. 고속버스 터미널 지하의 음식점과 옷장사들을 하루 종일 유심히 구경하며 드나드는 손님과 물건구매 횟수를 헤아렸다. 그곳의 프랜차이즈 가맹 요금과 가게 임대료, 인테리어, 제품 구입비, 인건비 유지비 등등을 계산하건대 어떻게 버텨내는지 신묘할 뿐이었다. 집안일은 완전히 놓고 몰두해도 유지가 될락 말락에 성공은 어림도 없었다.


결국. 아무리 생각해도 몸 밖에 갈아먹을 것이 없었다.

나는 당장 나오라는 전통 찻집에 겉옷을 맡기고 바로 서빙을 시작했다. 사수도 차근차근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부드러웠지만 진상 손님들의 성희롱과 엄청난 회전율에 손목이 너덜거렸다. 석 달 버티고 한 달 병원 신세를 졌다. 다음엔 작은 가방공장에 자재 납품을 하는 공장에 나갔다. 두 달 버티고 무릎이 펴지지 않아서 보름 병원에 다녔다.


식탁에는 간간이 남편의 묵은 등뼈와 함께 내 무릎과 손목을 고은 도가니 탕이 올랐다

.

“맛이 어떠니?”


내가 물었다. 아이는 말없이 드물게 수저질을 했다. 남편은 묵묵히 작은 컵에 술을 채웠다. 나는 끝내 수저를 뜨지 못하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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