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헨젤과 그레텔

식인주의

by 은림



불 꺼진 벽난로는 캄캄했어. 회색 잿더미에서 남은 온기를 긁어모았지만 이미 식어버린 지 오래고, 움직인 탓에 잠깐 더워진 몸은 더 빨리 식었어. 죽음으로 통하는 시커먼 입 같은 난로 앞에서 내가 말했어.

“뭐.. 좀 재밌는... 얘기.. 좀 해봐.”


혀가 뻣뻣하게 굳어서 움직이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어. 너무 춥고 추워서 더 이상 추울 수는 없을 거 같았어. 배가 고프고 고파서 더 고프지 않은 거처럼.


“불 꺼진 난로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는 거 아니야.”


뒤집어쓴 빛바랜 분홍 담요 속에서 꺼질 것 같은 목소리로 네가 말했어.


“왜?”

“난로 괴물이 잡아간대.”


네 작은 몸은 담요 속에서 계속 작아져서 완전히 사라져 버릴 거 같았어. 나는 손에 땀이 배이게 쥐고 있던 빵 껍질 조각을 찢어 내밀었어. 담요 속에서 손이 나오지 않았어. 손가락을 움직이기도 힘들어진 걸까. 나는 마른 입을 억지로 적시며 빵 껍질을 빨았어.


“옛날에는 크리스마스라는 게 있었대.”


담요 속에 목소리가 흘러나왔어. 나는 차가운 난로에 속에서 시커멓게 그을음 쌓인 플라스틱 조각들의 잔해를 골라냈어. 글씨와 별 눈사람 모양.... 아무것도 온전한 게 없었어.


“나도 알아. 케이크.”


끝이 눌어붙은 삼각 트리 장식은 녹다만 딸기 케이크 조각처럼 보였어. 뒤집어 보니 나무에 색칠을 한 거였어. 나는 벽에 남은 황을 그어 불꽃을 튀기게 했어. 남은 트리 조각들이 역한 냄새를 풍기며 타 녹아들어 갔어.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어.

꽁꽁 얼어있던 몸 안의 세포가 작은 온기에 녹아 부서지며 뾰족뾰족 서로 찔러댔어. 그 온기 한 줌을 더 갖겠다고 나는 네가 덮고 있던 담요를 뺏아 난로에 넣었어.

담요를 뺏기지 않으려고 꽁꽁 말고 있던 네가 함께 굴러들어간 건 사고야. 내가 민 게 아니야. 하지만 불붙은 네 몸의 열기는 따뜻했고 그슬린 가죽은 질기고 고소했어. 살점은 거의 없었지만 내장의 모든 부분은 먹을 수 있었어.

네 비명소리는 아주 작고 짧았어. 쩝쩝대는 내 입소리 때문에 내 귀에는 거의 들리지도 않았어. 나는 네 뼈의 골수까지 빨아먹고 남은 것을 난로의 잿 속에 숨겼어.



몇 년 뒤 나는 그 집에 다시 가게 되었어. 내가 기억하는 그 빛바랜 먼지투성이 모습이 아니고 산뜻하게 벽을 새로 칠하고 가구를 넣은 모습이지만, 굴뚝이랑 난로가 똑같았어. 그건 좀, 바꾸기 어렵잖아.


“나를 사랑해?”


그 오래된 난로 앞에서 분홍색 옷을 입은 그가 물었어. 나는 오래 침묵했어.


“그렇구나.”


그는 옷과 가방을 챙겨 들었어. 그가 가 버릴까 봐 나는 억지로 말했어.


“사랑해.”


그가 돌아보았어.


“불 꺼진 난로 앞에서는 아무 말도 안 하는 거랬잖아.”


그는 웃으면서 말했고 난로에 장작을 던져 넣었어. 불길에 하얗게 드러난 뼈들처럼 그의 치아가 빛났어. 너도 내 치아를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보았을까?


그는 내 생명을 꺼트리고 내 몸을 태우고 내 고기를 먹었어. 그리고 남은 뼈를 벽난로에 던졌어.



나중에 그는 뱃속의 아이들에게 말하겠지.


“절대로 난로 불을 꺼트리면 안 돼.”


누가 그를 난로에 밀어 넣을지 등 뒤를 조심하면서.


“그리고 불 꺼진 난로 앞에서는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아이들이 그의 등을 떠밀어 난로에 넣는 것에 성공하길 바라.


keyword
이전 10화감자탕